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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관이 '반값 등록금 집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현직 경찰관이 '반값 등록금 집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 죽림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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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찰관과 누리꾼 사이에서 '글쟁이'로 소문나 있다. 2005년부터 운영해온 블로그 '죽림누필의 잠복근무'에 논리적인 주장글과 체험적 경찰 소설 등을 올려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논리적인 치밀함 덕분에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 때에는 김 회장의 구속영장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블로거명인 '죽림누필'은 '대나무 숲에서 쓰는 보잘 것 없는 글'이라는 뜻이다. 지난 8일 그 '대나무 숲'에서 '반값 등록금 집회를 보는 경찰관의 심정'이라는 글이 나왔다. '등록금 촛불집회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 글은 자신의 블로그뿐만 아니라 경찰 내부통신망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도 올려져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글 때문에 감찰조사? 세상 많이 변해서 그런 것 없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이 글은 현재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에 근무하는 황정인(경찰대 7기) 경정이 썼다. 21년차 경찰관인 황 경정은 이 글에서 "지금 대학등록금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은 등록금 인하를 요구할 자유, 항의할 권리를 한층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황 경정은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제 글이 (모든) 집회나 시위를 옹호한다거나 경찰의 진압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고 다뤄지지 않았으면 한다"며 "현직 경찰로서 제가 경찰의 진압행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글을 쓴 게 아니다"라고 단선적 해독을 경계했다.

황 경정은 "경찰과 시위자가 모두 건강한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시위문화를 고민하자는 취지였다"며 "시위자도 바뀌어야 하고, 경찰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경정은 "(언론 등이) 클릭수만 높이기 위해 몸싸움하는 것만 부각시키다 보면 정작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없어지고 만다"며 "시위가 얼마나 극렬하냐 보다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는) 그 사람들의 주장이 중요한가, 절박한가, 대안이 있는가에 (관심이) 집중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대부분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충돌을 일으켜 상태가 악화된 채 끝나는데 그렇게 끝나는 것보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의) 좀더 생산적 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글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취지를 바탕에 두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주제로 한 집회나 시위는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황 경정은 "모든 권리는 권리끼리 충돌할 수 있고 절대적인 권리란 없다"고 강조한 뒤, "노래를 부를 권리가 있지만 그로 인해 잠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며 "결국 어떤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것과 관련해 (사안에 따라) 권리간의 가치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경정은 "권리간에 충돌할 때 어느 권리가 우월한지 평가되어야 제대로 정책이 나온다"며 "집회나 시위가 옳으면 경찰이 가만 있고, 그르면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그 사람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냐, 사회적으로 꼭 해결되어야 하냐 등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경정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비슷한 글을 써서 <한겨레>에 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감찰조사를 받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해서 이런 것 가지고 감찰조사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고 전했다.

다음은 9일 황 경정과 40여 분간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원론적인 얘기를 쓴 것인데 왜 언론에서 주목하는지 모르겠다"

경찰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에워싸인 채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경찰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에워싸인 채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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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 등록금 집회 보는 경찰관의 심정'이라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뭔가.
"그 글에 이유가 나타나 있다. 집회에는 다 목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충돌을 일으켜 상태가 악화된 채 끝난다. 그렇게 끝나는 것보다 좀더 생산적인 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 경찰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집회 참가자들도 조심하고. 사실 원론적인 얘기인데 언론에서 주목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 아닌가?"

- 경찰관 중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긴 하다."

- 그런 생각을 가진 경찰이 많은가?
"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경찰관은 직업이다. 저는 시위진압하는 업무를 안하니까 좀 천천히 냉철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시위진압하는 경찰관들은 냉철하게 보기 어렵다. 당장 시위대가 싫고 미울 수 있다. 그래서 동료들 중에 '참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분들도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충돌보다는 서로 윈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 글이 상당히 논리적이어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 그런 내용의 글을 쓰기 부담스럽지 않았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비슷한 글을 써서 <한겨레>에 난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감찰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지금은 감찰조사 같은 게 없다. 사회가 변하기도 했지만 경찰 내부에도 변화가 있다. 제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개인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이런 것 가지고 감찰조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 경찰청장이 바뀌어서 그런가?
"그것과는 무관하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경찰 내부망에 비판글 올렸다가 직위해제 당한 경찰관들도 있지 않았나?
"예전에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 언론에 글이 보도된 이후 윗선에서 전화온 것은 없었나? 
"없다. 아는 사람들이 '네가 쓴 거지? 근데 괜찮냐?'라고 물어본 경우는 있다. 저는 감찰조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재까지는 전혀 없다."

"집회나 시위가 극한으로 치달아야 보도되는 행태는 잘못된 것"

- 하지만 경찰 지도부와는 의견을 달리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글쎄…. 전체적으로 글을 쓴 취지에는 공감할 것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우 수인한도(수용하는 정도)가 높아진다'는 등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권리는 권리끼리 충돌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를 권리가 있지만 그로 인해 잠잘 권리가 침해될 수도 있다. 권리 중에서 어떤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가? 결국 권리 간의 가치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권리란 없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그것이 프라이버시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 대통령이나 장관을 악평하는 기사를 쓰는 것과 평범한 사람을 악평하는 경우는 다르지 않겠나? 권리간에 충돌할 때 어느 권리가 우월한지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평가를 안 하면 제대로 된 정책이 안 나온다.

집회나 시위가 옳으면 경찰이 가만 있고, 그르면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이 사람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냐, 사회적으로 꼭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냐 등을 판단해야 한다."

-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 판단해야 하나?
"한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다.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 시급한 문제인가 등이 그 기준이 될 수 있다. 등록금의 경우 정치권에서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중요한 문제 아닌가?"

- 6·10 등록금 촛불집회 등이 있는데 경찰이나 집회 참가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미 글에 다 썼다. 다만 제 글이 (모든) 집회나 시위를 옹호한다거나 경찰의 진압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고 다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가려지거나 훼손될 수 있다. 현직 경찰로서 제가 경찰의 진압행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글을 쓴 게 아니다. 그런 점들을 경계하고 싶다."

- 그렇다면 핵심적으로 전달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나?
"경찰과 시위자가 모두 건강한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시위문화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시위자도 바뀌어야 하고, 경찰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 <오마이뉴스>도 근본적 대책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클릭수만 높이기 위해서 몸싸움하는 것만 부각시키다 보면 정작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없어지고 만다. 결국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폭력장면, 경찰의 진압장면만 남는다.

우리나라 언론은 집회나 시위가 극한으로 치달아야 다룬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보도되기 위해 극렬하게 시위하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 행태다. 시위의 극렬 정도에 따라 보도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그 사람들의 주장이 중요한가, 절박한가, 대안이 있는가에 (관심이) 집중됐으면 한다. 경찰도 그런 판단을 해줘야 한다."


태그:#죽림누필, #등록금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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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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