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죽은 줄 알았던 나뭇등걸이 새 순들을 거느렸습니다.
▲ 다치지 말고 쑥쑥 자라거라 쑥쑥 죽은 줄 알았던 나뭇등걸이 새 순들을 거느렸습니다.
ⓒ 김관숙

관련사진보기


"이리와서 요 새 순들 좀 보라구우."

잔디밭길을 지나가는데 동갑내기 이웃이 나를 부릅니다. 나는 건너편에 있는 제과점에서 식빵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작은 식빵봉지를 덜렁거리며 잔디밭으로 들어가 이웃이 가리키는 바싹 마른 작은 나뭇등걸을 내려다 봅니다.

"어쩜 이리 예쁠까---"

나는 감탄을 하면서 그냥 쭈구리고 앉아버렸습니다. 바싹 마른 나뭇등걸 밑으로 새순들이 예쁘게 돋아났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수수꽃다리의 나뭇등걸이 멀쩡하게 살아서 새 순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수꽃다리나무는 오래된 나무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무성한 가지마다 탐스러운 보라색 꽃송이들을 피우고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9월 초에 태풍 곤파스가 지나가면서 처참하게 쓰러뜨리고는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때 쓰러진 나무기둥과 가지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고 볼품없이 나뭇등걸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제 생각을 해보니 나뭇등걸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그때 우리동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무려 사백 여 그루가 곤파스에 부러지고 뽑혀지기도 하였는데 나중에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아주 부러진 나무는 뿌리까지 뽑아버린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얘는 꽃나무라서 나뭇등걸을 뽑아버리지 않고 그냥 두었나 보네."
"다행이지 뭐야. 니들 다치지 말고 이대로 쑥 쑥 자라거라, 쑥쑥"

나뭇등걸도 땅위로 드러난 뿌리들도 마른 장작만 같습니다. 며칠 전에 비가 조금 오기는 했지만, 간에 기별도 안했는지 흙이 푸석거릴 정도로 마르고 물끼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불을 붙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랑 타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나뭇등걸 밑에도 드러난 뿌리에도 새 순들이 돋아났습니다. 방금 물기를 먹음기라도 한 듯이 청초하고 예쁩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비가 좀 오면 좋겠네." 
"비가 와도 어미나무였던 나뭇등걸은 자라지 않아. 속이 썩어만 가지. 요 새 순들이 썩어가는 나뭇등걸 속을 먹고 이리 튼튼하게 자라는 거라구. 요기 좀 봐, 마른 뿌리 위로 기어 올라가며 새 순들이 나왔잖아. 마치 가난한 어머니의 가슴을 파고 들듯이 말야. 내가 어릴적에 그랬지이, 어머니 치마꼬릴 잡고 밥 더 달라고 징징댔었지." 

나는 이웃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죽어가는 나뭇등걸이 있는 힘을 다 해 밀어올린 새 순들이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을 하였는데 이웃은 나뭇등걸과 마른 뿌리에서 그 옛날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웃과 나는 6,25전쟁 세대입니다. 비로소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거의가 매 끼니를 명아주나 담배나물로 배를 채우다싶이 해서 얼굴이 점점 누렇게 떠갔지만 어린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마련을 했는지 꽁보리밥 아니면 밀가루 수제비라도 먹이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철이 없는 자식들은 배가 덜 찼다고 어머니의 무명치마꼬리를 잡고 징징거리고는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어머니의 가슴 속은 깊은 숲속에서 만난, 방치된 아름드리 고목나무의 나뭇등걸 속보다 더 시꺼멓게 썩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웃도 나도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웃이 문득 말했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속을 많이 썩였다구." 
"어렸으니까---" 

"그때 말구 말야. 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구 했잖아. 어머니는 그 좋은 나이에도 재혼을 안하고 달랑 하나뿐인 나를 애지중지 키웠다구.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야. 근데 내가 여고 졸업반 때 연애를 했지 뭐야. 어머니가 사 온 사범대학 입학원서가 눈에 안 들어왔지. 우리 영감이 내 첫사랑이라구. 첫사랑이랑 도망쳤다가 배가 불러오자 집으로 돌아와서 결혼시켜 달라구 하니까 어머니가 날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시는 거야. 내가 자라서는 또 그렇게 어머니의 속을 썩였다구 " 

딸에게 걸었던 꿈이, 희망이 물거품이 되자 어머니는 무섭게 변했습니다. 딸이 결혼을 하면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집과 작은 텃밭만을 남기고 적지않은 논밭을 야금야금 팔아서, 딸에게는 한 푼도 안 주고 은행에 예금을 해두고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썼습니다.

농삿일로 그을린 얼굴에 맛사지도 자주 받았고 안하던 화장도 매일했고 택시를 불러타고 시내에 있는 백화점을 드나들면서 예쁘고 근사한 옷들을 철따라서 사 입고, 사군자도 배우고 발길을 끊었던 초등학교 동창회는 물론이고 이런 저런 모임에도 나가고, 또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노후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가슴속 역시 편치가 않았을 것입니다. 숲속에 방치된 아름드리 고목나무의 나뭇등걸 속처럼 시꺼멓게 썩었을 것 같습니다.      

"왜 내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지를 못했는지를 몰라. 후회막급이야."

이웃의 눈에 회한에 눈물이 비쳤습니다. 나도 부모의 바람대로 세상을 살아오지를 못했습니다. 내 자식들 역시 내 바람대로 전공을 살린 전문직을 가지고 살고 있지를 않습니다. 부모의 바람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효도하는 일입니다.
  
나는 말을 돌려봅니다.

"몇 년 후면 새 순들이 높은 나무가 되겠지. 꽃도 어미나무보다 더 탐스럽게 더 아름답게 피구말야."
"그렇게 자라도록 내가 오며가며 요 새 순들을 지켜줘야지. 누구든 손을 대면 가만 안 둔다구."

이웃은 지킴이 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일부러 히이 웃고 말했습니다. 

"복 받을 거야---"
"무슨 복을 받으려나아아, 로또 일등 복이며는 좋겄구머언---" 

이웃은 어깨까지 흔들면서 노래 조로 말을 하더니 히히히 하고 요란하게 웃습니다. 그만 나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한참을 크게 웃고는 햇볕이 들기 시작하는 잔디밭을 나왔습니다.   


태그:#새 순 , #나뭇등걸, #어머니의 바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