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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시민, 야당인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시민, 야당인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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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적정한 등록금은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학생 : "글쎄요…. 무조건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의 질에 비해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들이 어떤 곳에 얼마의 돈을 썼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게 먼저라고 봐요."
기자 : "이미 국회에서는 교육 원가라 할 수 있는 등록금과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를 공개하도록 하는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교육 정보 공개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2년 됐어요. 2009년 5월의 일입니다."
학생 : "그런가요? 대학들도 떳떳하다면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텐데…."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난 단국대생 이한준(24)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씨를 비롯해 이날 반값 등록금 요구 집회에 참석한 다른 대학생들과의 대화 내용도 비슷했다. 대학이 법에 따라 교육 원가를 공개해, 객관적인 잣대로 현재의 등록금 수준이 적절한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기대와는 달리, 법에 따라 공개된 내용은 세부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의 반발과 업무량 과다를 이유로 들며 개선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육 원가 공개하랬더니, 등록금 인상 요인만 공개

김유정 민주당 제6정조위원장은 지난 9일 열린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대학들이 명백하고 떳떳한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등록금 원가 공개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에 따라 등록금 및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에 관한 것을 공시하고 교과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교과부는 대학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관련 지표조차 개발하지 않고 있다"며 "교과부의 직무태만이다, 정부 여당이 반값 등록금을 하겠다고 하면서 선행되어야할 원인에 대한 분석조차 할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교육 정보 공개법에 따라 대학 정보 공개사이트인 '대학 알리미'에 공시되는 교육 원가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감시를 할 수 있을 만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다"며 "등록금 인상을 위한 자료만 제공된다"고 지적했다.

2011년 서울 시내 종합대학 중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책정한 연세대학교(평균 869만2300원)를 살펴보자.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 자료에는 2009년 총 교육비가 산학협력단 회계를 포함해 7770억 원으로, 3만7959명인 재학생의 1인당 교육비는 2047만 원이라는 내용뿐이다. 1인당 교육비 수준이 적정한지 판단할 근거가 전혀 없다.

연세대(의료원 제외)는 또한 '등록금 산정 근거' 자료에서 2011년 인건비·관리운영비·연구학생경비 등의 세출 예산은 지난해(4195억 원)보다 1.71% 증가한 4267억 원에 달한 반면, 등록금·전입금 등의 수입 예산은 지난해(3615억 원)보다 0.9% 늘어나는 데 그친 3647억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연세대가 '대학 알리미' 사이트에 공개한 2011년 '공개한 등록금 책정 고려 요소' 항목이다.
 연세대가 '대학 알리미' 사이트에 공개한 2011년 '공개한 등록금 책정 고려 요소' 항목이다.
ⓒ 대학 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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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자료가 말하는 것은 620억 원의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뿐이다. 연세대는 이 자료에서 물가인상률, 전년도 등록금 수준, 각종 지출 및 수입 규모 등을 고려했다며 2011년 학부 등록금은 동결하더라도 전문·특수 대학원은 3% 인상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10일 반값등록금 요구 집회에서 만난 한 연세대 학생은 "대한민국 명문 사학이라면서 솔선수범을 못할망정, 최고 수준인 등록금의 산정 근거도 밝히지 않은 점에 대해 매우 부끄럽다"고 전했다. 다른 대학의 공개 자료 역시 연세대 자료처럼 등록금과 교육비 산정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교과부 "업무량 과중과 대학 반발 탓" ...대학 "교과부 지침대로"

그렇다면 내용이 부실한 자료만 공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유정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교과부의 의지 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교육 정보 공개법에 6조3항에 따르면, 공시정보의 구체적인 범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교육 원가의 세부적인 내용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세부적인 자료를 공개할 수 있도록 과거 정보 공개를 개선하고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최근 '반값등록금' 정책 등 업무량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했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교과부에는 등록금 부담 완화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사무관 1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학의 반발도 지적했다. 그는 "1989년 이후 20년 넘게 등록금 자율화가 이뤄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이 다시 등록금 산정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에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는 말했다.

반면, '대학 알리미'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는 그 책임을 교과부로 돌렸다. 공시센터 관계자는 "현재도 관련 실무자가 대학들이 제출한 자료가 정확한지 살피고 있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대학들은 교과부의 지침에 따라 자료를 공개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교육 원가 자체를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기름 값처럼 원가를 무 자르듯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교수들의 많은 강의에 대한 원가를 어떻게 산정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 원가를 산정하는 일은 일부 국가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교육 원가 자료를 기준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임희성 연구원은 "교육 원가를 계산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교육 원가 개념을 도입해 합리적인 예산 편성을 유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산출된 비용에 대한 합리적인 배분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태그:#교육 원가, #등록금, #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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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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