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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선과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한 게 뭔가 있나요? 이렇게 계속 간다면 지지를 철회할 생각입니다."

11일 반값 등록금 집회, 오후7시 청계광장 
11일에도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관계자는 "다소 유동적이지만,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라며 "집회는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때까지 중단없이 같은 장소에서 매일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있는 아들이 하나 있는 조아무개(58)씨는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서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부족한 생활비로 인해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는 자식의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아버지로써 자괴감을 토로했다. 

조씨는 "우리 아이 학자금 대출이 이미 800만 원을 넘었다"며 "아버지가 돼서 너무 미안하고,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 같은 공사에 투자할 게 아니라, 사람뿐인 나라에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하지 않냐"며 "아이들에게 동등하게 부여돼야 할 기회가 박탈되는 느낌이다, 이게 부의 세습이 아니고 뭐냐"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10일 청계광장에는 3년 만에 촛불이 타올랐다.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의 도심 집회다. 이날 광장을 가득 매운 5만여 대학생과 시민들은 반값등록금 이외에도 4대강 사업이나 교육예산문제, 노동정책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6월항쟁 24주년을 맞아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빛을 안고 입학해서 빚을 지고 졸업한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6월항쟁 24주년을 맞아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빛을 안고 입학해서 빚을 지고 졸업한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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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 과외 못하고 EBS로..." 여고생들의 등록금 걱정

박정길(48, 한식요리사)씨 역시 조씨와 나누는 인터뷰 내용을 듣더니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와 등록금 문제를 같이 따지러 왔다"는 박씨는 "둘째가 대학교 3학년이다. 학생들이 걱정 되서 나왔다"고 말했다.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무대 맞은편에서 함성소리가 점점 크게 밀려왔다. 경희대, 한양대 등 가두행진을 하던 대학교 학생들이 속속 청계광장으로 집결하면서 지르는 함성소리였다. 집회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박씨의 목소리 역시 한층 격앙됐다.

박씨는 "정부가 공약을 번복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며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은데, 4대강 예산 중에 일부만이라도 등록금에 투자해도 되지 않느냐, 이 상태로 가면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뽑지 않을 것"라고 언성을 높였다.

시위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당시처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여고생들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대학생들의 집회 행렬 뒤를 따라갔다. 대열 속에 이미 자리를 잡은 여고생들도 있었다.

대학생들의 가두행진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고등학생 정다미(18)양은 "평소에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오늘 시위가 있다 해서 왔다"며 "부모님도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걸 알고 계신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더불어 부모님과 같이 집회에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오히려 저희에게 잘 다녀오라 적극 지지해주셨다"고 말했다.

함께 온 친구 정보성(18)양도 옆에서 거들었다. 정양은 "지금 친구랑 나는 과외를 받지 않고 EBS 교육방송으로 공부를 한다"며 "집안이 학원비를 충당할 만큼 여유가 있지가 않아서 그런데, 지금도 이런데 대학교 가서 등록금 낼 생각하면 벌써부터 답답해진다"며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중고등학교 교육비도 부담, 대학등록금은 '끝판왕'

자신을 주부라 밝힌 김혜영(46, 학습지 교사)씨는 사립 재단의 적립금 이야기가 화제로 나오자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제발 대학 재단은 그 수준에 맞는 돈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엄청난 돈 받아놓고 지금 우리나라 대학 중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이 있나 묻고 싶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무대와 인접한 자리에서 '우~'하는 야유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화제의 사회자가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등록금을 공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발언이 나오자마자 들린 소리였다.

부부가 함께 집회장소를 찾은 이상철(45, 회사원)씨는 "큰 아들과 작은 딸이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데, 아이들 중학교 진학하면 교육비가 더 뛸 테고, 고등학교가면 교육비가 더 뛸 테고, 그러다 대학교 가면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생후 7개월 된 아이와 함께 나온 고준식(39, 회사원)씨 역시 미래의 아이가 컸을 때 교육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고씨는 "아직 아이가 많이 어려서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걱정은 걱정이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과 복지예산이 삭감됐는데, 우리가 너무 경제성장이라는 환상만 품어 온 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서지 않게 하는 게 정부의 진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가자(32, 직장인)는 "처음부터 반값등록금 공약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라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를 더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라며 "이런 시위가 꾸준히 되지 않으면 단기간에 무언가 바뀌기라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조건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한 여고생이 비싼등록금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조건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한 여고생이 비싼등록금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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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등록금, '588만 2910원'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대학생들 가운데는 무대에서 진행되는 행사만 따라가기보다 자신들만의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다섯 명이 촛불을 주위에 둘러앉아 배가 고픈지 단팥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먹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연세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연세대는 서울에 있는 주요 사립대학 가운데 등록금이 가장 비싼 학교로 꼽힌다. 1학년 1학기 때 받은 등록금 고지서가 너무 어이가 없어, 10단위 숫자까지 전부 외우고 있다는 도시공학과 10학번 김민석(21)씨는 "처음에 등록금 고지서 받았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 아직도 그 금액이 기억난다"며 "588만2910원"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갑자기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잠깐 하늘을 보면서 머리를 감싸다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등록금 정책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했다.

같은 학교 신문방송학과 2학년 박준혁(21)씨는 "단순히 정치인 한두 명 바뀌는 것으로는 이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생각한다"며 "이건 단순히 정권교체의 문제만으로는 보기 어렵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무리 가운데 가장 막내인 대학 새내기 김진웅(20, 사회학과)씨는 "이제 입학한 지 석 달밖에 안 돼 뭐가 특별히 문제인지 알진 못한다, 다만 다음 학기 등록금은 걱정"이라며 "그나마 작년에 입학한 선배들은 입학금이 90만 원이었는데 우리 때는 50만 원으로 인하된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는 3학기 동안 1200만 원가량의 학자금을 대출을 받고 과외 같은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하는 학생도 둘이나 있었다. 그들은 언제 끊길지 모르는 과외를 걱정하며 집회를 마치고 거리 행진에 나서는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


태그:#등록금, #반값등록금, #황우여, #한나라당,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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