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은 희망을 갈구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가 역사의 반면교사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누군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누군가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노무현 대통령의 30년 지기이자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맡았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증언록 <문재인의 운명(가교출판)>을 펴냈다. 총 4부로 구성된 468쪽 분량의 이 책에서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당시 비화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전후, 검찰수사, 개인스토리와 2012년 정국전망 등에 대해 쏟아냈다.
무엇보다 문 이사장은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향후 한국정치의 전망에 대해서도 노정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는 이제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노무현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시대의 짐'으로부터 그를 놓아주는 방법이며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 칭했다.
책의 발간에 앞서 미리 배포한 26쪽 분량의 보도 자료에서 문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이명박 정권의 심각한 퇴행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며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분분하지만 이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문 이사장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날 때 무엇이 부족한 것이었나 회한이 들었다"며 "휩쓸림이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냉정한 마음으로 성공과 좌절의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작은 정부가 선이고 큰 정부는 악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굳건한 현실 속에서 복지정책을 펴는데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며 "다 합쳐도 소수를 넘지 못하는 진보개혁진영조차 힘을 모으지 못하고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분열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진보진영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는 우회적 비판이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통합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 문 이사장은 "통합이 민주당에 의한 흡수소멸이라는 의구심을 해소해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권 후에도 함께 힘을 모아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려면 더 높은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다"며 "적어도 우리 사회 정치지형에서 진보적 성향이 다수를 이뤄 진보개혁진영 안에서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도 대세를 그르치지 않게 될 때까지는 통합된 정당의 틀 안에서 정파간의 연립정부를 운영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망했다.
참여정부 민노당 출신 노동부장관 탐색했으나무엇보다 문 이사장은 이 책에서 노무현정부 당시 진보진영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상당 부분 토로했다. 참여정부 때 민주노동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노동부 장관에 입각시키려고 했지만 당시 정치문화에서 민주노동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민노당 지도부가 긍정적으로 이 문제를 받아들이더라도 당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며 "정치공작이나 야합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실명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중수부장은 "대통령을 맞이할 때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있었다"며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고 지적했다.
여성 몫으로 환경부나 보건복지부, 여성부, 교육부를 벗어나지 못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법무부 장관에 여성을 발탁해야 한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었다며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앉힌 건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썼다. 김명자 환경부 장관도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하려고 했었다고 서술했다.
문 이사장은 또 '박연차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을 때 "결국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며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해 아무런 믿음을 못 주니 결국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냐"고 자책했었다고 전했다. 자신은 정치를 오래 하면서 단련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 이사장은 "검찰이 아무 증거 없이 박연차 회장의 진술만 갖고 밀어붙였을 때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나 조작은 한계가 있어 재판으로 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며 "대통령이나 변호사 모두 검찰이 기소해도 무죄받는 것엔 문제 없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대통령이 스스로 모두 던져버릴 결심을 하고 계신 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 문성근씨 노무현 친서 들고 2003년 방북했었다"남북정상회담 성사과정에서의 비사도 전했다. 이 책에 따르면, 2003년 가을쯤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노 전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북한에 다녀왔으며 당시 그가 북한에 갔었던 것은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남북관계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접촉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충격적인 상황을 한 장면으로 정리해 담았다. 서거 직후 병원에서 목격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고 술회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본 것은 경호관과 문용옥 비서관, 그리고 문 이사장 셋뿐이라고 전했다. 행여 권양숙씨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의료진이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을 모두 봉합하고 피도 깨끗이 닦아냈지만 결국 실신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부엉이 바위에 스스로 몸을 던지기 직전까지 노 전 대통령은 유서를 손질했고,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던 <진보의 미래> 책 저술도 포기한 채 2009년 5월 19일 함께 저술작업에 참여했던 윤태영, 양정철 비서관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모든 일을 놓았다고 밝혔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21일 저녁 동네친구인 이재우 조합장을 만난 걸 제외하면, 19일 오후부터 23일 새벽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전날 사저 안에 비서관들이 있는 공간으로 직접 담배를 가지러 잠시 들렀을 땐 마치 마지막 작별이라도 하듯 한동안 그들을 물끄러미 보곤 아무 말 없이 나갔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나서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난 것이라고 술회했다.
이 책의 말미에서 문 이사장은 "노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또 노 대통령은 이제 그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이제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새로운 출발을 암시했다.
문 이사장의 새로운 출발의 신호가 무엇이 될지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