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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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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5년 9월 14일 오후 2시 57분]

"엄정한 법집행과 함께 소외계층을 따스히 감싸는 사회안전망 구축도 병행해야 진정한 선진 법치체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예산 집행 파급효과가 바닥민심까지 가도록 감사원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소득뿐만 아니라 법치주의가 국민생활에 뿌리내려야 한다. 피감기관들이 감사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절도 있는 감사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따스한 정을 나누는 직장을 만드는 데 다같이 노력하자. 내 방문을 항상 열어두겠다."

유난히 법치주의와 소외 계층의 따뜻한 배려를 강조했던 이 말은 2009년 2월 12일 쌀 직불금 문제로 감사원 감사위원 10명 중 6명이 사퇴하자, 새로 내정된 은진수씨가 취임 자리에서 일갈했던 취임사 일부분이다.

한나라당 대변인 등을 지낸 은진수씨는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BBK팀장을 지냈다. 당시 야당에서는 정치적 중립에 맞지 않는 보은인사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청와대는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했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내세워 이런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정치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남을 정도로 능력이 있어 감사위원으로 제청한다'며 야당의 공세를 일축했다. 이 당시 감사원장이 김황식 현 국무총리였다. 

서민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비리, 또 비리

이런 내력을 지닌 은진수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으로부터 1억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5월 31일 검찰에 구속됐다. 서민들을 발가벗겨 거리에 내몬 부산저축은행 사태. 은진수 감사위원 구속 사유 하나만 보더라도 이 정권은 '남탓'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은진수 감사위원의 불법과 비리는 저축은행 사태의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업정지 전날인 2월 16일 영업이 끝난 시간,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입수한 고위직, 정치인, 은행관계자들이 100억 원대 돈을 무단 인출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당시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해당 지점에서 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정보를 미리 알고 영업시간도 끝난 시간에 예금을 무단 인출한 소위 VIP 고객들이나, 이들에 적극 동조해서 사돈의 팔촌까지 야밤에 불러내어 돈을 내어준 은행 직원들이나, 그 시간에 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금융당국 관계자 모두, 서민의 고혈을 훔쳐낸 도둑이라는 세간이 비난이 딱 들어맞아 보인다. 수많은 '은진수의 얼굴'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이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회사에 관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정계의 막강한 권력자들이 삼화저축은행·부산저축은행의 사외이사를 역임하면서 한달에 수백만원씩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리의 사슬.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리의 사슬이 서민의 고혈을 빨기 위해 난마처럼 얽혀져 있는 것일까? 수사결과가 알려질 때마다 서민의 추리력과 상상력은 가진 자의 탐욕에는 감히 대적할 수 없음을 처절하게 느낀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5월 17일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 감독 규탄’과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5월 17일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 감독 규탄’과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부산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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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이라도 없어지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밥 굶는 날이 먹는 날보다 많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을 해 몸무게가 46~47㎏밖에 나가지 않았다. 장애인 남편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 모은 돈인데 이렇게 됐다."

"35년을 넘게 식당에서 그릇을 씻고 음식을 나르며 하루에 3천 원, 4천 원씩 모은 돈이다. 아들이 장가가면 작은 전세방이라도 하나 얻어 주려고 모은 돈인데 한 푼이라도 없어지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언어장애 2급 남편과 단둘이 산다는 65세의 박아무개씨. 지금도 파출부 일을 한다는 그는 1억원의 돈을 이자 한 푼 받지 않고 예치해놓고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맞았다. 67세 강아무개씨는 지난 1월 아들 결혼비용으로 2년간 모은 적금 8천만 원이 만기가 돼 찾으러 갔다가 이자를 많이 준다는 상담 직원의 말에 재예치했다가 영업정지라는 날벼락을 맞았다고 한다(<연합뉴스> 2011. 5. 2.).

밥을 굶어가며 남에게 업신여김 받지 않기 위해 모았다는 1억 원. 자식 전세방 얻어주려고 식당 그릇을 씻어가면서 모았다는 8천만 원. 이들의 돈은 은진수씨가 받았다는 뇌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이름만 올려놓고 매달 수천만 원을 챙긴 저축은행의 사외이사들. 이들 대부분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 사외이사가 되었고 실질적으로 은행업무나 로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한 일도 없이 수천만 원을 챙겼다는 소리이고, 받은 만큼 일을 했다면 그 일 또한 이름과 지위를 등에 업고 불법과 탈법의 저축은행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것. 일을 하고 받은 돈이든, 일을 하지 않고 받은 돈이든 서민들의 피눈물을 쥐어짜낸 돈일뿐 그들의 뒷주머니에서 어떤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우선 그 책임은 박연호 회장과 경영진에게 물어야 한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흑자분식회계를 통해 329억 원의 배당금을 챙겨, 골프장 짓고 운전학원 차리고 아파트 건설현장에 뛰어들고 이런 행위는 단순히 경영상의 실수로 보기 힘들다.

국내에 진귀한 보물급 문화재 수백 점을 소유하고 재산을 불려나간 행위는 저축은행이라는 합법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행위라고는 하지만 악행을 일삼아온 불법 사채업자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아니, 법의 안전망을 이용해 서민의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이용해 또 다시 권력을 사서 안전을 구가한 행위는 어떤 중범죄와도 경중을 따질 수 없다.

그리고 저축은행이 썩어서 서민들의 등허리에 내려앉기까지 방임하고 방조한 기관이나 사람들은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은행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 감사원, 검찰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로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정치인들도 마땅히 책임이 있다.

단지 도의적인 책임이 아니라 사법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른 부당한 수임료를 챙기고 저축은행을 위한 불편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밝혀진다면 다시는 국민을 위한 공복을 자처하지 못하도록 일벌백계의 조처가 필요하다.

제 살을 도려내는 반성이 먼저다

야당이라도, 그리고 과거의 정권이라도 부산저축은행 불법에 관여하고 비호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것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 가려지고 단죄되어야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과거 정권 탓이고 이 정권과는 관계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어떤 주장을 하든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발생한 일이고,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들이 이들과 부화뇌동하여 60, 70대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다. 정치적 공방보다는 제대로 된 반성과 책임지는 자세가 먼저이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서민들의 비애는 폭발 직전이다. 일찍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 있는 자와 서민들의 현대판 수탈구조가 이렇게 여과 없이 드러난 것도 본 적이 없다.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천만 원 이상 예금자 후순위 채권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의 손해배상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다른 파산한 은행의 후순위 채권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그리고 왜 은행과 권력기관의 비리로 저질러진 일을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하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어떤 선택도 속 시원한 해결법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구속된 은진수 감사위원의 말처럼 "엄정한 법집행과 함께 소외계층을 따스히 감싸는 사회안전망 구축도 병행해야 진정한 선진 법치체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시지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서민들의 비애감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자기 살 도려내는 반성과 소외계층을 따스히 감싸는 사회안전망 구축. 차선이라도 선택하려면 이 두 가지가 먼저라 할 것이다.


태그:#부산저축은행, #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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