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난 5월 말! 대전 서구 복수동에 자리잡은 대전대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체육교사이자 사격부 감독인 윤승호(55) 교사에게 고교 1학년 두 명이 찾아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어! 뭔데??"두 학생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보고합니다.
"선생님께선 군대 장교 출신이시니까 잘 아실 텐데 말씀 드려도 됩니까?""뭐야! 어서 말해 봐!!""선생님! 폭발물 처리도 가능하세요?""그건 도대체 무슨 말이냐?""저희들이 산 속에서 수류탄을 한 개 발견해서 선생님께 긴급 보고하려고 뛰어왔습니다!""뭐? 수류탄? 니들이 수류탄이 뭔지나 알어?""영화 속에서 많이 봤습니다!""그 수류탄이 어디에 있느냐?""저 산 속에 있습니다!""그래? 가 보자!"오량산이라 하여 산자락에 위치한 학교인 데다, 윤 교사가 주로 머무는 사격장이 산 초입에 위치한 터라 학생들은 우선 먼저 군 장교 출신인 체육 선생님을 찾은 것입니다. 윤 교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학생과 수류탄을 찾아 나섰습니다. 몇 백 미터 정도 산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두 학생이 발길을 멈춘 채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기요… 저기 나무 밑에 있습니다.""야, 이 녀석들아! 니들은 왜 안 따라와!""선생님… 저희들은 무서워서 못 갑니다. 선생님이 먼저 가 보세요.""뭐?!!!"두 학생이 발길을 멈춘 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자 윤 교사도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정말 수류탄이라도 있는 거야? 이 근처에 군부대도 없는데 설마 수류탄이 있을라고?'
그리고 두 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나무 아래를 보니 정말 수류탄 몸통의 일부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 수류탄 주변의 흙을 제거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가짜 모형 수류탄이었습니다.
윤 교사는 살며시 웃음을 짓고 나서 수류탄을 손에 들고 두 학생에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여기 수류탄이다! 받아라!!""으악!! 선생님!!!! 터지면 어떡해요!!" 두 학생은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습니다. 윤 교사는 더 큰 웃음을 지으며 사격장에 들어와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그거 진짜 수류탄 아니에요???"윤 교사는 너털웃음을 짓고 모형 수류탄의 유래를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교생들조차 수업 시간에 군사 훈련을 받아야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대학에 입학할 때 체력장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때 모형 수류탄을 멀리 던지면 좋은 점수를 받았던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윤 교사는 수돗가에서 찌든 흙을 닦아내고 장식장 한 켠에 가짜 수류탄을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고교 1학년 두 명이 산자락에서 유기견을 발견하고, 너무 불쌍하여 빵과 우유를 주려고 산 속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수류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순수에 찬사를 보냅니다.
윤 교사는 비록 가짜 수류탄일망정 두 학생이 함부로 건들지 않고 우선 신고해 주어서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30년 전, 교련 시간과 체육 시간에 어지간히 투척을 해봤던 저 가짜 수류탄!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분단 이념을 교육 현장에 접목한 군사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옛날 운동장에서 구르고 굴러 산자락에 박혀 있던 구 시대의 유물이 다시는 부활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