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이 어느새 절반 가까이 지났다.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사건들이 올해도 연이어 터졌다. 그에 관한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지만,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며칠 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잊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1년 상반기 세계를 숫자로 돌아봤다.
6 : 1월 8일 미국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제러드 리 러프너라는 22세 청년이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노리고 저지른 이 사건으로 6명이 사망했다. 머리에 총탄이 박히며 중태에 빠졌던 기퍼즈 의원은 극적으로 회복해 6월 15일 퇴원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총기 규제 움직임은 답보 상태다.
7 : 행운의 수로 여겨지던 7. 그러나 올해 7은 공포의 수로 다가왔다. 3월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 및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에서 가장 심각한 7등급으로 분류됐다. 이전까지 7등급은 역대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뿐이었다. 후쿠시마발 방사능 공포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고,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후쿠시마 원전 상황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줄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8 :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 작전 8주년.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숨겨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연합군은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의 말과 달리, 초토화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검은 황금' 석유를 노린 침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후 이라크에서는 사회 불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의 자유' 작전이 펼쳐진 지 8년이 지났지만 이라크인들에게 평화와 자유는 여전히 멀다.
25 :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가 25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86년 문을 연 '오프라 윈프리 쇼'는 매주 평균 4000만 명의 미국인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비롯해 150개 국가에서 방송됐다.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역경을 딛고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신화는 오프라이즘(Oprahism, '개인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눈감는다는 비판도 받음)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90 : 공산당 창건 90주년 기념일(7.1)을 앞두고 중국에 '홍색 바람'이 불었다. 마오쩌둥 생가를 비롯한 '혁명 성지'를 돌아보는 '홍색 관광' 인원이 대폭 늘고, 중국 당국은 첩보·애정 드라마 대신 혁명을 다룬 '홍색 드라마'를 방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마오쩌둥을 비판한 이들을 "기소하라"는 서명 운동도 벌어졌다.
846 : 호스니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1월 25일부터 2월 11일까지 계속된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집트 시민. 이집트 진상규명위원회는 이 기간 중 무바라크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846명이 죽고 64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0000000 : 미국의 팝 가수 레이디 가가의 트위터 팔로어가 5월 15일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팔로어가 1000만 명을 넘은 것은 세계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