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과 구제역 매몰지에 '재앙'이라는 장마철이 시작됐다. '구제역 첫 발생지' 안동으로 떠나는 지난 23일, 날씨는 그야말로 '국지적' 상태를 선보였다. 서울에서 조금씩 내리던 비는 경기도 기흥 근처에서 갑자기 '호우'로 변했다. 마침 트위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장마로 구제역 매립지가 난리다. 옹벽공사 부실로 침출수가 흐르는 매립지가 전국적으로 400군데가 넘는단다. 올여름 휴가지 선정에 중요한 변수가 될 듯하다."('ewoom')지금처럼 쏟아지는 호우라면 부실한 구제역 매몰지에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경상도 땅에 접어들자 비는 사라졌다. 5시간 만에 도착한 경북 안동에는 먹구름만 잔뜩 끼여 있었다. 기자의 취재 목적이 보기 좋게 빗나갈 걸 예고라도 하듯이.
"돼지 사체가 하천에 둥둥 떠다닌다는 것은 '공상'"이날 구제역 매몰지 답사에 동행한 구본훈 구제역·AI 범국민대책위 간사는 기자에게 "안동지역에서는 매몰지 문제를 잘 얘기 안 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해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기자가 안동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구제역 매몰지가 아니라 정부의 보상금 지급에 뿔난 농심이었다.
오후 2시 30분께 들어선 '안동시 농업인단체 협의회' 사무실은 진작부터 축산농가들의 '성토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들은 지자체 등이 구제역 매몰지 관리에만 관심을 쏟은 나머지 정작 구제역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의 보상금 문제는 소홀히 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2500여 마리의 돼지를 묻었다는 유동락씨. 그는 "안동시가 구제역 사후 처리에 들인 총비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한 매몰지에 1억에서 3억까지의 비용을 들였다고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침출수 문제 등) 보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언론이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양 보도하는 바람에 (매몰지) 사후처리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그렇게 세금을 쓰다 보니 재정부담이 커져서 피해농가에게는 적게 보상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 유씨는 특히 매몰지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에 불만이 많았다. 그가 보기에 언론에서 보도한 매몰지 문제는 "돼지사체가 하천에 둥둥 떠다닌다는 공상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매몰지 문제를 부각하는 것은 축산농가들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매몰지 문제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말고 축산농가 가슴이나 한번 만져 달라"고 당부했다.
한우 92마리를 묻었다는 조정석씨. 조씨는 "초기에 침출수가 나온 것은 매몰지에 생석회를 넣었기 때문"이라며 "생석회 때문에 열이 나서 7-10일간 침출수가 나왔지만 그 이후에는 침출수가 안 나온다"고 주장했다.
"침출수 때문에 물을 못 먹는 동네는 없다. 그런데도 수도사업을 하느라 온동네를 파헤치고 있다. 이것은 1000만원-2000만원짜리 공사가 아니라 1000억원짜리 공사라고 한다. 이런 데 돈 쓰느라 구제역 피해농가들에 보상금 줄 생각을 안 하고 있다."특히 유씨는 "지자체 등은 매몰지에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보상금 지급에서 양돈농가에게 칼과 매를 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가 이렇게 거친 표현을 쓴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1차 보상금 지급(50%) 때와는 다른 기준을 세워 나머지 보상금(50%)을 양돈농가들에게 정산하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돼지의 사육두수와 체중 등을 평가해 보상금을 산정했다. 당시 평가단에는 공무원, 수의사, 축협 임직원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산정기준을 무시하고 ▲농가별 배합사료 매입량 ▲살처분 전 1년간 농가별 출하두수 등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하겠다는 지침을 지자체에 하달했다.
피해농가들은 이러한 획일적인 산정기준 때문에 보상금이 줄어든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씨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암소 한 마리당 500만 원을 보상해준다는 방침을 세우고 먼저 그것의 50%에 해당하는 250만 원을 피해농가에 지급했는데, 지금은 새로운 기준을 통해 한 마리당 보상금을 400만 원으로 낮춘 다음 나머지 150만 원만 정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탁호균 안동시 농업인단체 협의회 사무국장도 "안동시는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곳이라 구제역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전시상태'에 준해 소·돼지를 처리했다"며 "그렇게 1000마리를 묻었는데 800마리만 보상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은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진다는 뜻에서) '배상'이 훨씬 더 정확한 말"이라고 강조했다.
피해농가들은 "살처분할 때 평가한 두수를 적용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살처분한 농가의 농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입게 될 영업손실도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매몰지처럼 잘해놓은 공원묘지도 없을 것"사무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보상금 문제에 열변을 토했다. 정작 기자의 취재대상인 매몰지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탁호균 안동시 농업인단체 협의회 회장을 지낸 우남식씨는 "지금 안동의 매몰지에는 침출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보상금 문제 때문에 장마철을 앞둔 매몰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우 92마리를 삼촌 소유의 땅에 묻었다는 조정석씨를 설득해 매몰지로 향했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372번지에 한우 92마리를 묻었다. 그의 매몰지는 그동안 기자가 방문했던 매몰지 중에서 가장 잘 조성돼 있었다. 매몰지 전체는 비닐로 덮여 있었고, 특히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매몰지 주변에 잔디까지 심어놓았다. 매몰지 아래쪽은 단단한 돌로 옹벽을 쌓았고, 콘크리트 구조물로 배수로도 만들어놓았다.
피해농가들이 단언한 대로 침출수도 없었고, 악취도 거의 나지 않았다. 특히 경북도청과 안동시 소속 공무원은 물론이고 인근주민까지 '감독관'으로 지정해 매몰지를 관리하고 있었다. 조씨가 "공원묘지 중에 이 매몰지처럼 잘해놓은 곳도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902번지에 조성된 한우 집단 매몰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1328마리의 한우 등이 묻혀 있다. 5단의 계단식으로 쌓은 매몰지는 왕릉을 연상시켰다. 이렇게 대형 매몰지임에도 악취는 나지 않았고, 침출수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농민들이 기자에게 "매몰지 문제는 그만 신경쓰라"고 소리칠 만했다. 다만 집중호우 등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해농가들은 여전히 보상금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조씨는 "구제역으로 인해 안동 경제를 쥐고 있던 한우의 95%가 땅에 묻혔다"며 "정부는 보상금을 좀 여유있게 줘서 한우 등 축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도 "세무서에서는 보상금에 종합소득세를 붙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일하지 못한 몇 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제 매몰지 사후관리는 그만하고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구제역 매몰지 답사에 동행한 김현호 민주노동당 농민국장은 "그동안 당에서도 구제역 문제를 막연하게 환경문제 등으로 많이 접근해왔는데 피해농민들에게 급박한 것은 보상금 지급이었다"며 "그분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