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촛불 원탁 토론회'가 열렸다.
비 때문에 당초 주최 측이 계획한 1000인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괜한 우려였다. 테이블을 추가로 설치해야할 정도로 '천막 아고라'는 등록금 토론을 위해 모인 대학생들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주최 측 추산 2000명). 각각의 테이블에는 같은 테이블 번호를 받아든 8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둘러앉았다.
"등록금 계속 오르면 반값등록금 돼봤자 소용없어" 7번 테이블에 함께 앉은 박석운(57)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서울대학교 1학년 전영준씨(19)의 나이차는 무려 38세. 박 대표는 73학번, 전씨는 11학번이다. 이 테이블에는 전씨 비롯해 김선혜(20, 이화여대 11), 김승준 (23, 연세대 09), 임영민(23, 경희대 08)씨 등 대학생 4명이 앉았다. '선배'로는 박석운 공동대표를 비롯해 오옥만(50), 이명옥(54)씨 등 학부모 그리고 직장인인 김도일(31)씨가 자리를 잡았다.
토론회는 크게 1부와 2부로 진행되었다. 1부는 등록금을 어느 정도로 인하해야 할 것인가, 2부는 등록금을 낮춘다면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임영민 학생처럼 "무조건 반값, 일단 반값"을 시행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동안 대학이 부정하게 사용한 재원이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전영준)는 의견도 있었다. "반값등록금 먼저 시행한 후, 점차적으로 무상교육으로 가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들이 사립대의 반값정도 되는 등록금을 내는 대학을 가기 위해 삼수를 했다는 이명옥씨는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이 되면 좋겠지만, 한 학기 등록금이 100만 원 정도만 돼도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무엇이 반값이냐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등록금이 인상되면 반값이 돼봤자 소용없다는 것.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표는 "표준등록금 상한제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록금을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대학을 기준으로 표준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하는 거다.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서. 거기서 반값만 내는 거다. 그런데 이것도 많다. 2~3년 내에는 연간 등록금이 최저임금 한 달 치 월급 정도로 인하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무상으로 가야한다."대부분 박 대표의 '표준등록금 상한제'에 대해 동의했지만 반론도 있었다. 전영준 학생은 표준등록금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 물었고, 임영민 학생은 대학의 자율성 침해를 우려했다.
73학번과 11학번, 40년 나이차 뛰어넘어 열띤 토론
그렇다면 반값등록금을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가장 '인생선배'인 박석운 공동대표가 "금융소득, 부동산 소득 등 불로소득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적세를 신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김도일씨가 "목적세는 생각을 못했는데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이명옥씨는 "국가에서 키워준 재벌들이 반값등록금을 처음 시행할 때 일정정도의 재원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면서 "부자감세 철회해서 교육예산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세제도 개편보다 시급한 것이 대학 내 개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임영민 학생은 "인터넷 여론을 보면 사학재단이 계속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왜 반값등록금 재원을 세금으로 마련해야하나라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김선혜 학생 역시 "대학이 쌓아두고 있는 적립금만으로도 반값등록금을 시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시간여 동안 8명의 참가자들은 40년 가까이 되는 나이차를 뛰어넘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승준 학생은 "학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김선혜 학생 역시 "사실 오기 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 몰랐던 사실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촛불에서 보자"면서 자리를 떴다. 오후 9시경부터 청계광장에서는 가수 박혜경 등이 참가하는 '제 3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다른 일정 때문에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손 대표는 등록금 인하 방안과 관련, '5+5 정책'을 제시했다. "추경을 통해서 저소득층 지원, ICL 이자 감면은 물론, 등록금 상한제를 법 제도화 하고, 내년부터는 반값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번 정치국회에서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것.
손 대표는 이를 오는 27일 예정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