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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전문점의 직원들은 단순히 커피만 만들지 않는다. 좋은 서비스를 위해 감정노동을 하고있다.
커피전문점의 직원들은 단순히 커피만 만들지 않는다. 좋은 서비스를 위해 감정노동을 하고있다. ⓒ 윤성원

푸르스름한 고요가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박아무개씨의 눈이 번쩍 뜨인다. 서울 돈암동에 사는 그녀는 아침 6시 30분까지 광화문의 커피전문점으로 출근해야 한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 새벽에 화장하는 것처럼 귀찮은 일이 없지만 꾸역꾸역 화장품을 바른다. 박씨는 커피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이다.

6시 15분, 광화문의 커피전문점에 인기척이 들린다. 막 출근한 박씨는 근무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씽긋 웃는다. 오늘도 잘 해보자는 의미이다. 근무시작 시간인 6시 30분이 되자 박씨는 바쁘게 움직인다. 7시가 되면 출근길의 손님들이 아침잠을 좇기 위해 밀려들기 때문이다.

커피를 만들 재료와 아침대용의 샌드위치를 진열하는데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6시 50분이지만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다.

"언니, 죄송한데 제가 좀 급해서요. 아메리카노 작은 거 한잔만 주세요."

박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문을 받는다.

"며칠에 한 번씩은 이렇게 급한 손님이 계세요. 당장 준비가 안 됐더라도 손님을 먼저 응대해야 해요. 안 그랬다가는 컴플레인이 올라올 수 있으니까."

'컴플레인'은 고객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서비스 업체 홈페이지에 제기하는 고객의 소리를 의미한다. 한 번 컴플레인이 올라오면 해당 매장은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사과를 해서 서비스 회복 노력을 한다. 그리고 해당 직원들은 서비스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서비스직 등 감정 노동을 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컴플레인은 공포의 대상이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출근손님과의 전쟁은 9시까지 계속된다. 박씨가 단골로 보이는 손님과 인사를 하고 순조로운 아침을 보내던 찰나 주문을 받는 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시간은 8시 58분. 30대 오피스 족으로 보이는 남자손님이 주문을 한다.

"오늘의 커피 바로 돼요? 작은 거 주시구요. 제휴카드 없고, 소득공제 필요 없으니까 빨리빨리 주세요."

박씨가 커피를 픽업 데스크에 올려놓기 무섭게 손님은 커피를 낚아채간다.

"출근시간이 9시까진데 커피는 마셔야겠고... 그러니까 저렇게 재촉하는 거예요. 저희도 늦게 드리고 싶은 건 아닌데 저렇게 본인 말만 하면서 재촉하면 아무래도 기분이 조금 상해요."

그러면서도 박씨는 무던하게 손님들을 받았다. 겨우 출근시간이 지나고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박씨는 한숨 돌린다.

"이제 금방 12시예요. 그럼 점심 손님들 몰려와요. 얼른 준비해야 돼요."

박씨는 분주히 움직인다. 지켜보는 나는 아까 아침 손님들 때문에 상한 감정이 걱정되는데 당사자는 오히려 더 웃으며 감정을 억누른다.

금방 12시가 되었다. 박씨의 말대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줄이 어느덧 매장 입구까지 길어졌고 자연히 주문 대기시간도, 음료 대기시간도 길어졌다. 기다리는 손님이 슬슬 많아지니 손님들의 목소리도 높아져간다.

"언니! 저희 것 언제 나와요? 빨리빨리 주셔야죠. 저희 지금 들어가야 되는데!"

박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연신 죄송하다고 말한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박씨는 잘못한 것이 없다. 박씨는 쉴 틈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었다. 손님들이 한 번에 많이 유입됐기 때문에 대기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본인의 커피를 빨리 달라고 박씨를 다그쳤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박씨에게 이렇게 잘못 없이 사과하는 일이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이런 것까지 힘들어하면 서비스직에서는 일 못해요. 저희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다려주신 손님들에게 일단은 죄송하다고 하는 거죠."

박씨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감정을 누르며 말한다.

"일하다 보면 정말 힘들 때도 많아요. 할아버지들이 옆에 와서 앉으라고 말한 적도 많고, 다 드신 샌드위치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불합리한 요구를 해올 때에도 저희는 항상 죄송하다고 말해야 해요. 손님은 저희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원하니까요. 이렇게 친절한 게 저희 직업이니까요."

박씨는 아침 6시 30분 출근해 오후 3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근무시간 내내 수많은 사과를 했고 셀 수없이 미소를 보였다.

박씨의 하루를 지켜본 결과 감정노동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나조차도 생활 속에서 많은 감정노동자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점점 서비스업의 업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박씨와 같이 본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함에 따라 인간의 특성인 감정이 시장의 상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의 연구가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라는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감정노동자에게 대하는 불합리한 행동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감정노동자가 내일 나에게 감정고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감정노동#감정노동자#커피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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