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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평가하는 수많은 잣대가 있겠지만 두 대통령이 임명했던 고위 공직자가 퇴임 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 중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정동기 변호사이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정동기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후 지난 1월 감사원장에 내정됐다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정동기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로 거센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제67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에서 "최근 서민들을 분노케 한 저축은행 사태만 해도 그렇다"며 "그 근본 원인은 물론 대주주와 경영진의 범죄적 비리입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배후에는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한지 열흘만에 정동기 전 민정수석과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이 부산저축은행 임원들의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23일 "부산저축은행 수사가 용두사미가 됐는데, 그렇게 된 사연이 있다"며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이인규 변호사 등이 중수부를 상대로 부산저축은행의 변호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정동기는 법무부 차관과 대검찰청 차장를 지낸 후 민정수석을 거쳤고, 이인규는 부산저축은행을 수사 중인 대검중수부장을 지냈으니 '전관예우'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니다. 착수금은 3억원이고 성공보수 9억9000만원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중앙일보>가 사설까지 동원해 이들 행보를 비판했겠는가?

이들이 대검 중수부가 수사하는 사건에 전직 중수부장과 민정수석을 변호사로 선임한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전관예우 관행의 이득을 노린 것이다. 이를 빤히 헤아릴 수 있으면서도 덜컥 수임(受任)한 것은 공인의식이 없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중앙일보>정동기·이인규 변호사의 공인 의식-2011.06.25)

이 대통령(가운데)은 "전관예우 근절"강조했지만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대통령 왼쪽)은 부산저축은행 변호를 맡아 전관예우가 무엇인지 증명했다.
 이 대통령(가운데)은 "전관예우 근절"강조했지만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대통령 왼쪽)은 부산저축은행 변호를 맡아 전관예우가 무엇인지 증명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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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법무법인 '바른'소속 변호사라는 점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이명박 정부들어 승승장구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맡은 굵직굵지 수임사건은 ▲ 2007년 BBK 사건 이명박 후보측 변호 ▲ 2009년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 대리인 ▲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정부측 변호를 했다. 이 정도면 이명박 정권을 위한 변호였다고 할 수 있다.

정동기 변호사가 법무법인 바른에 들어가는 배경이 눈길을 끈다. 2007년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유는 도곡동 땅과 BBK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살려낸 인물이 있었는 데 정동기였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막바지를 치닫던 2007년 8월 14일 이명박 후보는 대구실내체욱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오늘 정동기 대검 차장이 직접 그 땅은 이명박과 관계 없음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며 도곡동 땅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열번을 토했다. 박근혜 후보가 아무리 "도곡땅이 누구 것이냐"고 따져봤자 이미 지나간 버스였고, 결국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었지만 BBK에 대해 검찰이 "이 후보가 실소유자라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자 정동영 민주당 후보 역시 제대로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530여만 표차로 패배했다. 정동기는 검찰 수사 발표 직전인 2007년 11월 23일 검찰 옷을 벗고, 26일 법무법인 바른으로 출근했고,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인수위원회 들어가 한 달에 1억원을 벌었고,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다. 자기를 구해준 정동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보은이었다. 

하지만 보은도 어느 정도지 박정희 이후 아니 독재자 전두환도 하지 않았던 측근 참모를 감사원장에 내정했다. <조선일보>같은 친이명박 언론까지 질타했고, 급기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마자 "정동기는 안 된다"고 반격하는 바람에 정동기는 결국 낙마했다. 그렇게 낙마했으면 자중해야지만 낙마 변은 국민들을 더 분노하게 했다.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말은 들어보는 것이 도리이고 이치임에도 대통령께서 지명한 헌법기관인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법이 예정하고 있는 청문회에 설 기회조차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입니다.(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문' 중 일부-2011.01.12)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말은 들어보는 것이 도리…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말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자신이 민정수석을 지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민정수석은 검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던가. 이명박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대하였는지 다 안다. 검찰이 모욕주기 '달인'을 자처한 것은 그 중심에 청와대가 있었음을 다 안다. 사형선고는 이명박 정부가 먼저 내렸는 데도 자신이 억울하다가 강변하는 모습에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부산저축은행 고객들이 눈물을 딱아주지는 못할 망정 경영진을 변호하다니.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을 위해 진실 외면하고 권력을 힘입어 서민들 피눈물 빨아 먹은 자들을 변호한 정동기였다. 여기서 정동기와 같은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 이사장과 비교가 된다. 문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사람이 곧바로 변호사 개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사람이 곧바로 변호사 개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사람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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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나 검찰 고위직에 있다가 전관예우를 받는 것과 차원이 다르지만, 그래도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사람이 곧바로 변호사 개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문재인의 운명> 386쪽)

"참여정부 기간 동안은 변호사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맡았던 역할 때문에 적어도 나는 변호사도, 다른 돈 버는 일도 하지 않아아여 한다고 생각했다. 네팔 트레킹을 떠났던 이유였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엔 '노 대통령 탄핵사건' 딱 한 것만 맡았다."(<문재인의 운명> 444쪽)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니 변호사 개업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지킨 문 이사장과 민정수석을 지낸 사람이 중수부장을 지낸 사람과 손잡고 대검중수부가 수사 중인 사건 변호를 맡은 정동기. 누가 고위공직자 자질을 가졌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했다고 당당히 국민 앞에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공정사회를 이루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결정적 차이는 전관예우 거부한 문재인vs 전관예우 자청한 정동기. 두 민정수석 행보가 증명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 실렸습니다



태그:#문재인, #정동기, #노무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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