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陽畵)사진은 필름에 피사체의 색채나 톤이 실제의 피사체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어로는 'positive film' 이라 표기하지요. 글 써 먹고 사는 '쓰새' 언니 변지혜와 사진으로 먹고 살길 소망하는 사진학과 '찍새' 변지윤은 자매애로 뭉쳐, [변자매의 양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순간이! 자칫하면 지나치고 말았을 아름다운 무언가를, 선명하고 긍정적인 느낌의 사진으로 담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기자말프리랜서로 일하며 365일 중 300여일을 집에서만 운신하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신문 배달 오는 소리 듣고 잠자리로 향해 일어나보면 한낮이었습니다. 온종일 '좀비' 모드로 글 쓰고 책 읽으며 DVD 보다보면 또 하루가 지나있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르자 나 자신이 고인 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즈음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고, 전철 타고 출퇴근 하며 새 나라의 어른으로 살다보니 또 다시 1년이 훌쩍 지나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덕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감사하지만, 애로 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만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에 부대낄 때면 집에서 내 생체시계에 맞춰 일하던 과거가 참으로 그리워졌습니다.
옆 사람은 아랑곳 않고 통화에 열 올리는 사람, 10m 밖에서도 들릴 만큼 볼륨을 키운 채 음악 감상에 여념 없는 사람, 부스러기 흘려가며 무언가를 먹는 사람 등. 집에만 있었으면 마주치지 않았을, 좁은 공간에서 피할 수도 없는 불청객들에 예민해져 옆 칸으로 옮겨가기를 수차례. 미운 이들에게 독하게 한 마디 던지는 상상씬을 혼자 찍다, 고개 숙이고 책 읽으며 내릴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곤 했죠.
시간이 흘러 불편한 타인에게 신경 쓰지 않게 되고, 더 이상 책 읽기도 재미없어질 때 즈음 저도 모르는 새 사람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교복 입은 커플부터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법한 부부, 영어책을 보는 아저씨, 노약자석에서 살아온 얘기를 나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꿉꿉하고 후덥지근한 공간에서 얼른 집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 타인의 얼굴에 쓰인 삶의 흔적을 읽으며, 그렇게 저는 '엿보는 이'의 심정으로 관찰하고, 사색하며 출퇴근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요.
'앉순이'라 불릴 만큼 어디가든 일단 앉고 보는 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빨리 내릴 사람 알아보는 법'도 터득했답니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있는 사람, 두리번두리번 하다 스마트 폰으로 전철 노선도를 찾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경직된 채 앉아있는 사람, 자다가 눈을 번쩍 뜨는 사람까지. 적중률 80% 이상의 놀라운 확률로 저는 앉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1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이제 다시 프리랜서로 살게 되어 출퇴근 지하철과는 굿바이입니다. 쥐포 되기 딱 좋은 2호선에서 벗어나 아침잠도 실컷 잘 수 있게 되어 행복하고 새로운 기분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키운 관찰력과 인내심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요.
불특정다수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 지하철.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남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들이 늘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레이더망에 들어, 상상 속 악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