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우리가 꿈꾸던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우리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사들이 함께 세운 원칙 첫 번째는, '학교운영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전체 교사의 충분한 논의와 협의로 진행하기'이고 두 번째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전에 아닌 것부터 없애기'입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원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학교마다 하는 '학부모 총회'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부모 총회'가 아니어서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로 이름을 바꾸어서 진행했습니다.
▲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 모습 학교마다 하는 '학부모 총회'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부모 총회'가 아니어서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로 이름을 바꾸어서 진행했습니다.
ⓒ 이부영

관련사진보기


혁신학교가 연구시범학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육'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교육이 아닌 '비교육적'인 일들이 참 많습니다. 화려한 구호와 이름 속에 알맹이 없이 빈 껍데기만 있는 교육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일들에 얽매여 지내느라 정작 '진정한 교육의 길'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무리 이것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고, 없애야 한다고, 바꿔야 한다고 무수히 외쳐보고 따져봤지만, 어쩐 일인지 학교에서 하는 교육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닌' 모습이 점점 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혁신학교를 준비하면서 우리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내세우기 전에 그동안 학교에서 해 오고 봐 왔던 '비교육적인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먼저 싹 없애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비교육적'인 것도 문제지만, 예전의 연구시범학교들이 화려한 특색교육을 새로 많이 만들어내다가 교사들의 업무과중으로 교육과정이 파행운영되는 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연구시범학교는 1년 동안 각종 실적용 행사로 학교를 정신 없게 만들고, 천편일률적으로 '성공했다'는 결과보고서를 내고 끝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성공했다'는 모델은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한 해당 학교조차 연구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비효율적인,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승진점수를 보태기 위한 연구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혁신학교 지원금을 쓰기 위한 행사만 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일반 연구시범학교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지원금이 없어도 운영되는 학교, 혁신학교 지정기간이 끝나도, 혁신학교를 만든 우리들이 다른 학교를 떠나도, 다른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혁신학교를 만들자는 데 동의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전에 '아닌 것'부터 없애기

그 방법이 처음부터 새로운 것부터 만들려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전에 그동안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비교육적인 것'을 먼저 과감히 없애고 바꾸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학교에는 다른 일반학교와 달리 교사들과 협의를 통해 없앤 것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가 없앤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고 효과도 없는 '애국조회', 교사의 또 다른 업무가 되는 '친목회', 지시전달로 끝나는 '직원종례', 아이들을 옥죄기만하고 근본적인 내적동기를 상실하게 하는 '스티커 제도'와 이유 없이 많이 주는 상, 뽑을 때만 요란하고 뽑고 나서 하는 일이 없는 전교어린이회 임원과 학급 임원, 부모를 행사 때마다 동원하는 데 이용하고 부담만 많이 주고 자녀가 전교어린이회와 학급 임원이 되면 으레 맡게 되는 '학부모회 임원', 아이들의 학습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아침자습시간', 특수부장 아래 계원을 두는 일, 교사의 업무과중과 들이는 비용에 비해 아이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적은 청소년 단체, 문제 많은 일제고사, 별 효과 없이 실적용으로 진행하는 독서장, 생활본, 전시성 행사, 실적용 보고성 대회….

위에 늘어놓은 것 말고도 우리 학교에는 없는 것이 또 많습니다.
 
체벌, 차별, 촌지, 침묵, 지시와 전달, 강제, 고정관념, 획일화, 등수, 교훈, 결과에 매몰되는 각종 인증제, 일방적인 훈화…. 

습관처럼 늘 쓰던 것 새로 바꾸기

그동안 학교에서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없앴지만, 또 변한 시대에 맞게 새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은 새로 바꾸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새로 바꾼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무실 → 교육지원실, 교무부장 → 교육지원부장, 교육과정부장 → 혁신부장, 학부모총회 →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 부장회의 → 기획회의, 남자 번호는 1번부터 여자 번호는 51번부터 매기던 것을 → 남녀 통틀어서 가나다순서로 매기기,  1반 2반 3반 4반 5반 6반 → 산반 들반 강반 해반 달반 별반…. 

 차례를 나타내는 숫자에서 차례가 없는 한글로 나타내었습니다.
▲ 우리 학교 학급 표시 차례를 나타내는 숫자에서 차례가 없는 한글로 나타내었습니다.
ⓒ 이부영

관련사진보기


없애고 나니 저절로 생겨난 것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동안 어린이들의 진정한 교육을 방해하고 수업을 못하게 하던 '아닌 것(비교육적인 것)'을 많이 없애고 나니, 대신에 우리 학교에 저절로 새로 생긴 것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에 저절로 생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주의, 교사회, 어린이회, 존중, 관심과 배려, 소통, 회의와 토론, 함께, 웃음, 행복, 솔선수범, 다양함, 기다림, 주인의식, 자존감, 자긍심, 자발성….

그리고 비교육적인 것을 없애고 나니까 비교육적인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던 힘을 모아서 그동안에는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던 진짜 소중한 교육을 스스로 새로 만들어서 착착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4개월을 지나고 보니 우리 학교가 처음부터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고, 특별한 일을 먼저 벌이지 않고 '아닌 것', '비교육적인 것'부터 없앤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어린이 교육을 왜곡하고 방해하는 비교육적인 일을 너무나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교육적인 일'을 없애는 것은 혁신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반학교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없앨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당장 없애야 할 것이 많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혁신학교 만들기 세번째 원칙인 '어린이의 삶에 중심을 두고, 교육의 공공성과 가치 있는 교육을 지향하기'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비교육적인일, #연구시범학교, #초등교육, #서울시교육청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