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태풍의 진로가 중부지방으로 향하고 있다. 충주체육관 앞뜰에 천막이 쳐지고 간이 공연장이 만들어졌다. 커다란 음향기기가 들어왔다. 이런 상태로 예술제 행사를 치를 수 있을까, 의심이 가는 날씨였다. 이미 대기실에는 출연자들이 전국에서 속속 모여들었다.
이윽고 공연시간 오후 7시 30분, 초조하기는 진행자도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없는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위기였다. 날씨는 점점 더 거세게 비를 쏟아 붓는다. 우중 속임에도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의자가 놓였다. 관람객은 손으로 꼽을 정도, 이윽고 무불 장성훈(시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공연은 관람객과의 약속입니다. 단 한 분이라도 관람객이 있으면 공연을 하겠습니다.'
박수소리가 빗속에 묻힌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식순에 따라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양우(문예춘추 발행인) 시인의 인사말과 추모시 낭송, 송형익(한국기타문화예술원 원장, 삼육대 강사)에 기타 연주에 맞추어 황 철(서울 예대 실용음악과 교수)의 '비목'이 충주의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잠시 숨을 죽인 듯 분위기가 숙연해 진다. 우중에도 관람객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공연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흥이 나는 모양이었다. 송마루(행위예술가)와 장성훈(시인)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쏟아지는 빗소리와 음악과 퍼포먼스가 하나가 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혜정의 아르떼플라멩코 무용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침통했던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그러나 비는 점점 더 가세게 내리고 공연하는 천막 사이로 물줄기가 간간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연기자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춤은 계속 이어진다.
한승엽의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의 가락이 이어지고 박일화(선무가)의 선무가 시작되자 다시 분위기가 침통하게 바뀐다. 우리 가락이 흐느끼는 듯 비오는 밤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박일화는 관람객을 행해 천천히 걸어간다. 관람객에게 향을 나누어 준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님들에게 영면을 비는 향이 피워진다.
7080락밴드에 맞추어 한소리의 희망의 노래가 분위기를 다시 바뀐다. 시간은 밤 아홉시를 향해 가고 있다. 비는 아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댄다. 천막 사이로 빗줄기가 계속 쏟아진다. 대중음악으로 분위기를 바뀐다. 한소리의 '고래사냥'이 이어지자 관중석에서 재창이 쏟아진다. 어느새 관중들도 손뼉을 치며 가수와 하나가 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노래가 계속 되자 쏟아지는 빗줄기를 잠시 잊는다.
이 행사는 충주시에 자리 잡고 있는 중앙예술원이 주최했다. 회원 수가 교수를 비롯해 240여명. 음악, 문학, 사진 등 모든 예술 분야가 참가하고 있는 단체라고 한다. 무불 장성훈 시인은 앞으로 노래와 춤으로 시를 쓰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예술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각 지역의 문화공간을 확보하고 문화예술의 씨앗에 거름을 주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