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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리' 농성 현장 명동 3구역 '카페 마리' 농성 현장
'카페 마리' 농성 현장명동 3구역 '카페 마리' 농성 현장 ⓒ 이여진

분당, 용인 등 경기 외곽 지역 주민들이 서울 도심으로 나갈 때 이용하게 되는 명동 중앙극장 버스정류장. 버스 정류장 앞에는 '모퉁이 식당', '한잔 하자', '낙원 화랑' 등 조그만 가게들이 상권을 이루고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곳에서 장사하는 70세 할머니가 어렸을 때도 이곳이 먹자골목이었다고 하니 그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지난 22일 만난 배재훈(44, 명동3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씨 또한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해 온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액자를 사러 놀러 온 것이 계기가 되어 23년째 명동에서 액자 장사를 해왔다.

"전에는 여기가 아주 유명한 액자골목이었어요. 이 옆에는 먹자골목이어서 이웃들끼리 놀러오곤 했었죠."

그에게 명동은 단순히 장사하는 곳이라기에는 의미가 크다. 보통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밤 9시까지 근무를 하니 하루의 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 온 셈이다.

하지만 배씨가 낙원 액자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인 '명동 재개발 계획'이 2009년부터 추진된 것. 이 사업에 의하면 지금의 명동 3구역 자리에 지상 25층, 지하 6층짜리 금융센터가 건립될 예정이다.

지난 4월 중 명동 2구역~4구역 상가의 90%가 강제 명도집행이 되었다. '카페 마리'를 비롯해 명동 3구역 11개 상가들은 철거에 불응한 채 용역업체와 싸움을 시작했다. 강제철거 통보를 받은 4월 26일 오전 5시경 용역업체와 마찰이 있었고, 그때부터 카페마리를 점거해 농성을 시작했다.

배씨는 "법이라는 것이 참, 웃겨요"라고 말문을 뗐다. 현행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건물주가 건물을 처분하는 것을 세입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 건물주들은 이를 악용해 2009년 이전부터 상가건물을 조금씩 팔아왔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입자와 주민과의 공청회 등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없었다. 지난 4월 초에야 시행사로부터 4월 26일까지 명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기분에 대해 세입자들은 "황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철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구청에서 파견된 감리사가 방문해 400~1300만원의 보상금을 책정했다. 가게를 개업하는 데 드는 권리금이 보통 1억 원이 넘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세입자와의 협상 과정에서 시행사는 "나중에 이사를 하면 이 돈마저 못 받을 수도 있다"며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 강제 철거 예정일인 4월 26일에는 창신개발에서 고용한 용역이 와서 가구와 집기를 가져가고 사람들을 끌어내기도 했다.

시행사가 계획하고 있는 금융센터가 건립되면 주주들이 배당금과 건축수익을 나눠 갖게 된다. 상가의 건물주들이 모여 '명동도시환경개발주식회사'라는 가공의 회사를 구성했고 이것이 곧 시행사가 되었다.

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KTB펀드가 이 회사의 지분 중 49%를, 대우건설이 44%를 소유하고 있다. 주요 언론들은 이 금융센터의 건축수익만 몇 백억 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배씨는 "상권이 형성되어야 땅값이 올라갈 것 아닌가. 명동이 잘되는 데는 상인들도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재성(46, 명동 3구역 세입자)씨는 "그 돈을 받고 먼저 나간 사람들, 지금은 빈둥빈둥 놀고 있어요. 보상금 산정이 법에 의한 것이라지만 법을 지키면 우리는 죽어야 하는 걸요"라고 말했다. 중구청은 주민과의 13차례 협상 중 기존의 금액을 보상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책위원회는 두리반의 사례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홍대 인근의 조그만 칼국수집이었던 두리반 역시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강제 철거되었다. 인근 주민들이 실질적인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1년여 간 투쟁을 하였고, 결국 지난 8일 영업 손실 배상금 명목으로 2억 5000만원을 지급받았다.

"농성이 장기화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정의가 실현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배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르포#명동 3구역#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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