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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잎 속에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기형도 <잎 속의 검은 잎> 中

유월의 광화문 광장에서 기형도 시인이 말하는 거리에 흘러넘치는 '망자의 혀'들을 봅니다. 단아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그 광장은 과거에 독재와 싸우던 시민의 광장이 아니었습니다. 광장이라는 열린 공간의 의미는 이제 예쁘게 정돈된 '침묵의 감옥'으로 퇴색되어버렸습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감시하는 장치를 해놓은 그 공간에서 누가 자신의 생각을 떠들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광장이 아닙니다.

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이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투입되고 있다.
 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이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투입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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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0시 30분, 지난 2009년 8월 광화문 광장 기자회견에 대한 집시법 위반 정식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날은 약간의 질문만 하고 오는 8월 11일 오후 5시 다시 재판을 연다고 하네요. 그 재판 결과에 대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을 100만 원을 내도 나는 전과자가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 광장 조례입법예고 기간에 적극적으로 이와 관련한 의사표명을 한 일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은 실내에서 할 수도 있고 실외에서 할 수도 있지만, 사회 단체들은 적극적인 의사개진을 하려고 광장을 택한 것입니다. 무릇 광장은 시민들에게 소통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 의사표명을 위해 기자회견을 한 사람이 왜 전과자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납득이 안 갑니다.

소란도 폭력도 없었는데, 손팻말 들면 집회?

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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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09년 8월 3일, 광화문 광장이 개장한 직후였습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사용조례를 만든다며 입법예고를 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문화연대를 비롯한 참여연대, 민주당 진보신당, 민노당 등 야4당은 광화문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은 늘 그렇듯, 시민단체 대표 중 한 명이 발언하는 순서가 있었고, 참여연대 쪽에서 대표가 오지 못하는 이유로 문화연대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실무자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해달라고 해서 저는 예정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기자회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광화문 광장 개장 직후라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도 가족 관람객들이 많더군요.

기자회견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소란도 없었고, 폭력도 없는 여느 기자회견과 똑같은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예 다른 방향으로 일이 틀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갑자기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첫 순서 여는 말을 하는데 경찰들이 점점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기자 회견문을 다 낭독하기도 전에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 간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기자회견을 해봤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경찰들의 참가자 연행은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유독 남자들만 광화문에서 멀리 떨어진 수서경찰서로 연행해갔습니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 플래카드와 손팻말이 있어서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로 규정지었다는데, 플래카드와 손팻말이 없는 기자회견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잣대로라면 지난 20년간 내가 했던 모든 기자회견은 낱낱이 다 집회였을 겁니다. 그리고 매번 100만원 벌금을 내야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수천만원을 벌금으로 냈어야 했을 겁니다.

그날 연행자들은 24시간에서 48시간 만에 나왔고 그 후로 벌금형을 받아 다들 대법원에 상고 중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겪는 고통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이어지는 경찰서 출석요구와 등기우편으로 아파트 문에 메모를 써서 붙이고 가기도 했고, 강제소환에 따른 지난해 12월 출석까지 이 상황이 10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의회 개근상 못 받는 건, 제 탓이 아닙니다

그러던 사이에 서울시의원이 되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할 일이 그리 없는지 신원과 주소지 확실한 서울시민을 잡겠다고 10개월간 숨바꼭질을 한 것 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스트레스와 업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이 약식기소하여 벌금 100만 원을 물렸더군요.

이에 동의하지 못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회기중 임에도 재판정에 나가게 됩니다. 주민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시의원이어서 지난 1년 동안 거의 개근하고자 노력했지만 재판정에 서야하므로 이날은 서울시민들께서 양해를 바랍니다. 저뿐 아니라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원 관계자까지 이러한 웃긴 일에 동원 되는 상황도 세금과 국력의 낭비이지요.

1990년 이후로 시민단체운동에 참여한 저로서는 지난 20년 동안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 어느 정부에서도 이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1990년 초 형사가 제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며 협박 비슷하게 한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시민단체 활동은 점차 발전해나갔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역행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 자주 일어납니다.

경찰과 검찰의 이러한 행위는 민주사회를 염원하고자 의사를 표시하는 민주시민들을 옭아매는 사슬이면서, 위법이라는 스트레스를 주어 사고를 위축시키는 반민주적인 강압입니다. 크고 작게 한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갈망의 주체들을 과하게 단속하여 연행하고, 연행했으니 수사해야 하고, 수사했으니 죄를 씌워야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 이는 누구입니까?

독재와 불의와 싸워서 국민의 권리를 지켜내 온 대한민국 광장의 역사를 거부하는 흐름에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지난 2010년 희망과 대안이 만들어질 때 OOO연합이라는 보수 단체가 난입해 실내행사를 방해해 행사가 무산되었어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찰이 이런 일엔 어이 이리도 집요한 것일까요? 그동안 어용단체, 관변단체가 벌이던 수많은 기자회견을 빙자한 시위와 폭력사태를 대하는 경찰과 검찰의 방임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만 듭니다.

광장은 또다른 형태의 신문고, 시민에게 돌려줘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못하게 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될까요? 사실 광화문 광장은 주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주민들은 거기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신문고'입니다. 정부의 소유가 아닙니다. 얼마전, 서울시 의원들이 민주당 국회의원들과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경찰의 제지는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단체들에 따라 억압의 수위가 다른 겁니다. 즉 형평성을 잃은 것입니다. 지난 봄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광장에 대한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광장사용의 허가를 손쉽게 해서 광장을 서울시민에게 돌려주는 것 입니다. 폭력 시위 등 우려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시민의 힘입니다. 서울시의회는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까지 사용 허가를 완화하여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데까지 나아갈 예정입니다. 이 조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각성된 민주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때입니다.

아름다운 광장은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언제고 우리는 억울한 목소리를 외칠 공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휴식 공간의 쉬운 필요성으로 우리의 권리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장소에서 우울한 시절에 목숨을 걸고 소리쳤던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태그:#집시법, #광화문광장,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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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ngo에서 일합니다 교육현안에대해 대중적 글쓰기를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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