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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홈페이지
 해병대 홈페이지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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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ROK Marine Corps)는 한 마디로 '튀는' 군대다. 세무 군화, 빨간 명찰, 팔각모자, 머리의 좌우를 바싹 깎은 '닭벼슬 머리'로 통하는 모히칸(Mohican) 헤어스타일 같은 외모에서부터 사용하는 단어와 말씨에 이르기까지 다른 군대와 구별된다.

부대가 창설된 지 1년여만에 발발한 6·25 전쟁에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신화를 얻은 이 튀는 군대가 올해처럼 자주 화제가 된 적은 없다. 평가도 극과 극이다. 군가 혹은 싸가(사가)를 부를 때면 반복하는 구령처럼 '천당에서 지옥까지'다.

반동 군가 준비! 반동 시작, 반동은 천당에서 지옥까지, 반동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해병대 곤조가. 요령은 악으로 깡으로! '브라보 해병'을 개작해서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는 '해병대 곤조가'는 이렇게 흐른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춤을 춥니다/처녀 열아홉살 아름다운 꿈속에 아이 러브 유/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당신만이 그리워서 키스를 하고요/당신만이 그리워서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어디 가서 뗑깡을 놓고/내일은 어디 가서 신세를 지나/우리는 해병대 ROKMC/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때리고 부수고 마시고 조져라/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해병대 기수가 1000기수를 훌쩍 넘어선 지금, 일제의 잔재가 물씬 풍기는 이런 '곤조가'는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내려올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때리고 부수고 마시고 조져라"는 노랫말과 '뗑깡'을 장려(?)하는 듯한 해병대 병영문화 탓 때문인지, 과거에 일부 군에서는 해병대를 '개병대'라고 비하해 불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톱스타 현빈(본명 김태평)이 해병대에, 그것도 연예사병이 아닌 전투사병으로 지원했다. 해병대로는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부 가수와 연예인들이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가운데, 대중의 관심은 현빈이 입대한 지난 3월에 극에 달했다. 포항에 교육훈련단을 둔 해병대는 물론, 포항시와 포항이 고향인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빈씨가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서 '현빈 활용'에 가세했다.

'강인한 이미지, 자부심, 결속력' 상징하는 해병대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의 모습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의 모습
ⓒ 날아라 마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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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병대가 세간의 화제가 되거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열광한 까닭이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톱스타의 입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또 젊은이들의 해병대 입대를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것으로 미화한 대통령의 예찬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해병대는 오래 전부터 일종의 '특이한 사회 현상'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대 교우회, 해병 전우회, 호남 향우회를 이른바 '대한민국 3대 사조직'으로 불러왔다. 세 조직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모임이 결성돼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만큼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그 결속력을 떠받치는 계급과 서열은 호남향우회에서는 '나이'이고, 고대 마피아에서는 '학번'이고, 해병전우회에서는 '기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3대 사조직'은 연고주의(緣故主義)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 집단주의의 한 원형을 보여준다.

물론, 태어난 고향(지연)과 졸업한 대학(학연), 그리고 복무한 군대(군연)가 같다는 동질감만으로 세 조직을 동렬 비교할 수는 없다. 뿌리깊은 지역차별에 대한 방어본능에서 뭉친 호남향우회와 명문대 출신들이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뭉친 고대 교우회는 사뭇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병대의 동질감은 그 중간쯤에 있다. 일반 군 생활과는 달리, 해병대에선 고된 훈련의 '아픔'과 함께, 소수 정예라는 '자부심' 또한 공유하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서울의 서측방과 서북쪽 섬들에 대한 방어 임무와 함께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상륙작전 하면 함정에 태운 병력을 적 해안에 전개시키는 것만 떠올리지만, 해병대 상륙작전에는 함정뿐만 아니라 장갑차와 항공기 등 모둔 운송수단이 다 동원된다. 따라서 해병대는 다목적 신속대응군으로서 유사시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작전 수행능력을 구비하기 위해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받는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실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전쟁 격언은 적진에 침투해 적을 교란하고 아군이 진격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해병대에게 제격이다. 특히 6주간의 신병 기본훈련은 '지옥훈련'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혹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6주차에 받는 신병훈련의 마지막 관문인 '천자봉 행군'을 마치면 비로소 노란색 훈련병 명찰을 떼고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달게 된다.

지난 2005년 8월 해병대는 병(兵) 제1000기 수료생을 배출해 해병대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지난 3월 7일 입소한 이른바 '현빈 기수'는 1137기이다). 해병대전략연구소는 당시 제1000기 및 1001기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해병대 지원동기를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해병대의 강인함(61%)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은 ▲학업주기 고려(19%) ▲외형적인 모습(14%) ▲주변의 권유(6%) 순이었다. 결국 해병대에 입대한 젊은이 4명 중 3명은 해병대의 '강인함'과 '외형적인 모습'(이미지)에 끌려서 지원한 것이다.

해병대의 '강인한 이미지'는 지난 2003년 한 시장조사기관이 국산 브랜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획조사에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인 삼성전자 휴대폰과 LPGA 프로골퍼 박세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과 함께 해병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 브랜드 중의 하나로 선정된 것에서도 엿보인다. 해병대에 대한 인기는 IMF 긴급구제금융을 수혈받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사회공익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병영체험훈련 프로그램인 '청소년 해병대캠프'에서도 확인된다.

해병대캠프는 4박5일간 해병대 출신 베테랑 교관의 지도 아래 유격훈련, 산악행군, 공동묘지 공포체험, IBS(고무보트) 수상훈련 등 실제 해병대 훈련을 방불케 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포항과 김포(해병2사단)에서 진행하는 캠프는 해마다 여름-겨울방학 때에 남녀 중고생들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데 지원자가 쇄도해 이를 다 수용할 수가 없어 사설업체에서 운영하는 유사 캠프만도 15곳에 이른다. 한 기수마다 150~300명씩, 한 해에 3~4기수를 받는 해병대캠프는 2010년까지 95기를 배출, 이미 청소년 3만여 명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포섭한 셈이다.

해병대의 인기는 '국민 모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국민개병제(皆兵制)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호전적인 병영국가'로 분류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은 핸디캡을 갖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병역을 기피하려는 풍조도 있지만, 병역의무를 할 바에는 수동적으로 군대에 끌려가느니 강인한 이미지와 자부심이 강한 해병대에 자원하려는 기풍 또한 강한 것이다. 

'귀신 잡는 전통'이 아닌 소통과 상호존중 문화 필요

강화군 길상면 해병대 2사단 해안초소에서 4일 오전 11시 50분경 김아무개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김아무개 상병 포함)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시신 운구에 나선 병사들이 사망자들을 태운 구급차로 걸어가고 있다.
 강화군 길상면 해병대 2사단 해안초소에서 4일 오전 11시 50분경 김아무개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김아무개 상병 포함)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시신 운구에 나선 병사들이 사망자들을 태운 구급차로 걸어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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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정서적 동질감은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구호와 '소수정예(A Few Good Men)'라는 모토에서 확인되는 선민의식과 자부심이다. <201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국군 65만 명 가운데 해병대(2개 사단과 1개 여단) 병력은 2만7000명(4.2%)이니 말 그대로 'A Few Good Men'이다. 병력은 적지만, 아니 적은 만큼 오히려 더욱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발군의 전투력을 과시해왔다는 자부심이 젊은이들을 해병대로 이끄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난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공격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해병대 지원율이 상승한 것을 예로 들며,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형 안보사건과 그에 대한 해병대의 대처방식이 해병대의 인기를 더 높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한군의 기습포격으로 연평도에 주둔한 해병대 장병 2명이 숨졌지만, 포가 진지에 떨어지고 철모가 불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사격을 하는 강인하고 믿음직스런 모습은 동시대의 청년들을 감동시켰다. 이와 관련, 한 은행은 이미 '불타는 철모'의 주인공 사병에게 제대후 취업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해병대의 강인한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 광고에 활용하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대한민국 20대를 'S세대'라는 키워드로 규정한 여론조사결과다. 올해 한 경제신문이 20대의 사회의식과 가치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양극화와 무한경쟁, 취업난과 고용불안에 괴로워하는 한국의 20대에게 닥친 제1 명제는 생존(Survival)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펙(Specification) 쌓기에 몰두하고, 힘겨운 싸움(Struggle)을 벌이고 조직이나 사회보다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우선(Selfish)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인맥'을 중요시하는 고려대 2학년생 권승호(가명)씨가 해병대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고려대 교우회, 해병대 전우회, 호남 향우회 다 들어가면 '대한민국 인맥 종결자'라고 하잖아요."

'종결자'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만큼 월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유행어다. 요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열광한다기보다는 'S세대'에게는 해병대도 일종의 '스펙'인 셈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언론은 여전히 이런 젊은이들을 애국심(Patriot)이니 개척자(Pioneer)니 하면서 '천안함 P세대'라는 상징조작의 울타리에 가두려 한다.

상징조작으로 가둔 해병대의 강인함은 판타지일 뿐이다. 지난 3월 현빈이 그 힘든 해병대 6주 '지옥훈련'을 받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병대 소속 모 연대 내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선임병들이 '군기 유지' 등의 이유로 후임병들을 폭행하거나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를 상습적으로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후임병은 갈비뼈와 가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곤조가'는 사라졌지만 일본군대의 '곤조 문화'는 남아있는 셈이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중대 총기 난사사건 현장. 시신 운구를 위해 구급차가 대기중이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중대 총기 난사사건 현장. 시신 운구를 위해 구급차가 대기중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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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구타 등에 관대한 이른바 '해병대 병영문화'다. 인권위에 따르면, 가해자 대부분이 후임병 시절 유사한 행위를 당했고, 이를 견디는 것을 '해병대 전통'으로 알고 있었다. 또 내부적으로 똘똘 뭉친 '폐쇄적 조직 문화'로 인해 후임병이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기라도 하면 재차 폭행하거나 따돌렸다. 지휘-감독자들은 부대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은폐와 축소에 급급했다. 영화 <어 퓨 굿 맨>에 나온 그대로다.

당시 해병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처음 실시한 인권위는 "구타를 묵인하는 병영문화 변화와 지휘감독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세 달여만에 해병 2사단의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총기난사로 4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6월 17일에는 교동도 대공감시초소에서 초병 2명이 아시아나 민항기를 미확인 비행체로 오인해 99발이나 쏘아댄 어이없는 사고도 있었다. 부대내 성추행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해병은 자원입대자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여서 어느 군보다 기강이 세고 일체감도 강하다. 그런데 강화 해병은 내무반에서 평화롭게 자는 동료들에게 소총을 난사했다. 가족 같은 동료애와 무적해병의 신화를 금가게 한 최악의 총기사건이다. 아직 발생 초기 단계여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동료들과 불화를 겪었거나 아니면 고된 훈련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

동료에게 총을 겨냥한 김 상병(19)은 부대원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관심사병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가족같은 동료애를 강조해온 해병의 직무유기다. 지금 해병대에 필요한 것은 '귀신 잡는 전통'이 아니라 동료 간의 상호존중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통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잡는 해병'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도 1980년대 초반 해안초소에서 근무할 때 인근 소초에서 유사한 사건을 겪었다. 계급은 낮지만 군대 '짬밥' 수가 더 많은 병장들한테 따돌림을 당한 하사(분대장)가 불만을 품고 소초 내무반에 M16 소총을 난사해 대원들을 모두 죽이고 본인은 자살했다. 언론에는 한 줄도 보도되지 않던 암흑의 시대였다.



태그:#해병대, #강화 총기난사, #국가인권위, #귀신 잡는 해병, #어 퓨 굿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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