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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지음.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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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자유론>을 꿰뚫는 밀의 자유 원칙(피해의 원칙)이다. 시종일관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밀은 자유가 인간 행복의 근본적인 요소라는 것을,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여론과 같은 '다수의 폭정'으로부터 소수의 견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런데 밀의 자유 원칙은 오늘날 자칫 무력한 문구가 되지는 않을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과 크고 작은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우리의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가령 촛불시위는 휴일에 광장으로 놀러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은 기업 이익에 피해를 준다는 말,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만약 타인에게 미칠 '피해'를 엄격히 피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자유는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하라고 광야에서 외칠 자유 밖엔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의 체제는 모순적이게도 자유를 질서의 하위 변수로 놓는다. 툭하면 자유에 따르는 방종을 경계하라고 지적하는 것이 보수 언론의 레퍼토리이다. 그러나 밀이 이 저작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자유의 한계를 명확히 그어야 한다는 것일까?

"인간은 모형대로 찍어내고 모형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는 나무와 같다."

밀은 인간은 모두 그 자신의 주권자이며, 생명원리에 따라 자신의 개성을 펼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 자유는 다른 더 큰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근본적 요소이며 인간의 본질이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받아선 안 된다.

이처럼 자유의 가치를 확신한 밀의 입장에서, '피해의 원칙'이란 자유의 한계를 엄격하게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즉 '타인에 대한 피해'가 얼마나 명백하고 심각한지 증명하지 못하는 한 자유는 제한받아선 안 된다.

파업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파업으로 인해 기업이 얻은 피해가 수백 명 노동자들이 해고당해 겪게 될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정리해고를 통보한 후 170억원이나 주식 배당금을 챙긴 총수 일가가 도대체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것인지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나아가 밀은 '피해의 원칙'이 '생각의 자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밀은 자유를 생각의 자유·동의 자유·단결의 자유로 나누는데, 이 가운데 출발점은 생각의 자유이다. 이 생각의 자유에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모두 포함된다. 이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밀의 아래 문장은 너무나 유명하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다."

밀은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진리일 수 있는 소수의 의견이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으며, 혹 다수의 의견이 진리라고 해도 그 진리를 명증하게 드러내려면 '열린 마음'으로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절대적인 생각의 자유로부터 행동의 자유가 나오고 행동의 자유에서 단결의 자유가 나온다. 따라서 남과 다르게 생각할 자유는 물론, 그 다름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고 연대할 자유도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자유론>은 국가 권력이나 '여론'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소극적으로 지키는 수준을 뛰어 넘는다. '피해의 원칙'은 다른 시민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이지, 그 누구든 이를 내세워 자유의 본질까지 원천적으로 제약하려는 행위를 결코 정당화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약은 자칫 '노예의 자유'를 낳기 쉽다. 노예는 주인이 멀리 떠나 있을 때 간섭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누린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족쇄를 깨고 스스로 주인됨을 선언하는 것이다. 참된 자유는 노예 주인의 피해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밀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전제한 것, 즉 "인간의 삶에서 각자 최대한 다양하게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것"과 합치하는 자유다. 밀의 자유는 이처럼 방향성을 가진 자유이며, 개성을 억누르는 일체의 도그마를 '비판과 토론'으로 헤쳐 가는 이성적 자유이다. 우리는 권력과 자본의 자유는 무제한으로 보장하면서 시민과 노동자에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니 자유를 자제하라'고 말하는 희한한 사회에 살고 있다. <자유론>을 곱씹게 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http://interojh.blog.me에도 게재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2005)


태그:#자유론, #존스튜어트밀,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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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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