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 : 5일 오후 3시 30분]
해병대 '기수열외' 조직문화 작용했나
해병대 총기 사고의 배경에는 '기수열외'라는 해병대 특유의 조직문화가 작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오후 국방부 관계자는 "범행을 저지른 김아무개 상병이 쓴 자술서에서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고 썼다"고 밝혔다.
기수열외란 군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병사를 찍어놓고 괴롭히는 악습으로, 일단 기수열외자가 되면 후임병들도 선임병 대접을 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하 기수가 엄격한 해병대에서 당사자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상병은 또 "OOO 주도로 (후임병들이) 선임 대우를 안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포항 해병 제 1사단에 대한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폭행사건을 상급자에게 발설한 병사가 '기수열외'를 당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후임병이 선임인 이 사병을 반말과 함께 폭행하도록 시켜 인격적 수치심을 주었다"고 밝힌바 있다.
[2신 보강 : 5일 오후 1시]
"범행 저지른 김 상병 입에서 술냄새"
5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해병대 총기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해군본부 중앙수사대장 권영재 해군 대령은 "수사결과 (김 상병이) 발사한 실탄수는 모두 12~13발로 확인 됐다"며 "현장에서 확인한 총기는 단발 상태여서 연속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권 대령은 "사망자의 신체 부위를 검시한 결과 난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권 대령은 총기사고 진행 결과를 설명하면서 사고 직전에 김 상병과 대화했던 한 생존 장병이 "김 상병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몸이 비틀거렸으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권 대령은 또 부대 내에서 "원칙적으로 음주가 금지되어 있지만, 사고 정황상 김 상병이 범행 전 음주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소초에서는 소주병 2개가 발견되었으며, 군 당국은 김 상병의 사고와 연관 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지문 감식 등을 벌이고 있다.
군 당국은 "김 상병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3페이지짜리 편지형식의 글과 유서 형태의 메모지가 발견했지만 김 상병의 필적인지, 또 담겨 있는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김 상병의 것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또한 김아무개 상병은 상황 부사관과 상황병이 동시에 상황실을 비운 사이 열려 있던 총기보관함에서 소총을 절취했다고 밝혔다. 또 사고소초는 총기를 잠궈 놓은 보관함의 시건(안전)장치의 상하 열쇠를 따로 보관하게끔 되어 있는 규정을 위반하고 한명이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김 상병은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입어 현재까지 정상적인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령은 "수류탄 폭발로 인해 부상을 입었던 김 상병의 의식이 일부 돌아와서 수사관계자가 필담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대령은 사고원인에 대해 "김 상병의 개인·심리적 문제에 비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부대와 관련이 있는지도 함께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권 대령과의 일문일답.
- 김 상병이 사고 당일 아침 소초장과 면담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현재까지 확인한 결과 소초장과의 면담은 당일에는 없었다. 소초장에게 확인한 결과 약 2주 이상 전에 면담이 있었고 그 이후 직접적인 면담 사실은 없었다."
- 김 상병이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나.
"소속 부대에서 사고자인 김 상병에 대해 평소 행동에 약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내부적으로 관심사병으로 분류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 김 상병이 소총을 절취했다고 하는데 부대에서 평소 총기 관리는 어떻게 했나.
"열쇠 관리가 사고 당시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했다. 두 명이 상하 자물쇠 열쇠를 분리해서 보관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 명이 관리한 것이 식별됐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조사 중이다."
- 김 상병의 평소 행동에서 문제가 발견된 적이 있었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고 평소 언행이나 근무 자세 등이 상급자가 봤을 때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수준이다. 특별하게 식별됐다면 더 적극적인 조치가 있었을 것이다."
- 신병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정신분열 등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나.
"병원에서 진단받은 기록이 있다든지 과거 병력이 있다든지 하는 사안은 없었다. 군내에서 시행하는 인성검사에서 일부 그런 소견이 있어 관심을 둬야 한다는 점은 부대에서 식별했다."
- 실탄 75발과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을 절취했는데 그 중 몇 발을 사용했나.
"발사한 실탄 수는 12~13발로 추정된다. 현재 현장감식이 끝나지 않아 숫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 김 상병이 조준사격을 했나.
"현장에서 확인한 총기는 단발로 조정되어 있었다. 연속 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망자의 신체부위를 확인한 결과 난사는 없었다."
- 사건 원인에 대한 판단은.
"수사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원인을 규명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짧은 시간 수사를 했다. 만 24시간이 경과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사고 원인은 사고자의 개인적, 심리적인 문제가 좀 더 비중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부대와 관련된 부분도 확인하지 못한다. 이 부분도 같이 조사하고 있다."
- 김 상병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는데.
"현재 사고자가 수류탄을 터트리면서 신체적인 손상을 많이 입은 상태다. 그래서 정상적인 혈액 감정을 하지 않았지만, 가용한 수단을 이용해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원칙적으로 (부대내에서)음주가 금주되어 있지만 현재 정황으로 봐서 음주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부대 전반에 대해 수색 중에 있고, 일부 술병을 발견했지만 그 술병이 사고자가 마신 것인지에 대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문체취 등 감식 중에 있다."
- 실탄, 공포탄, 수류탄 절취 과정은.
"당시 상황부사관과 상황병의 진술에 의하면 2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 시간이 예상되는 오전 10시에서 오전 10시20분 사이였고 그 사이 상황부사관이 병기고를 개방한 상태라고 진술했다. 그래서 그 시간대에 절취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사고자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 상병의 개인적인 메모나 유서가 발견됐나.
"개인적 메모는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놓은 3페이지에 이르는 편지 형태의 글이다. 그 내용에는 자기 자신을 비관하는 언급이 일부 포함돼 있다. 개인의 신체와 사물함에 대해 검색한 결과 유서형태의 메모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메모가 사고자의 필적인지, 내용이 진실인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특정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 사고 당시 생활관에 정확히 몇 명이 있었나.
"해당 소초에는 소초장 중위 1명, 하사 3명, 병 27명 등 총 31명이 근무하고 있다. 내무반에는 기본적으로 8명이 한 내무반을 쓰게 돼 있다. 근무자에 따라 6~7명이 있는 내무반도 있기도 하다. 사고 당시 2생활관에는 6명이 있었다."
- 김 상병은 총기를 어느 시점에 내려놓았나.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2내무반에서 사격하는 것을 권혁 이병이 잠에서 깨어나서 목격했다. 자기 쪽으로 총구를 겨누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총구를 잡고 문을 밀쳐 열면서 내무반 밖으로 밀쳐냈다. 권 이병은 당시 강하게 밀쳐냈고 본인이 총기를 한 발 맞았다고 진술했으며 관통상을 당했다. 그 직후 내무반 문을 닫고 침대를 밀쳐서 내무반에 사고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한 상태였다. 시간상으로 볼 때 사고자가 총기를 놓쳤는지, 본인이 버리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직후 내무반을 이탈해서 뛰어나가는 시간이 소초장과 마주친 시간과 일치한다. 제2내무반 바깥 통로에서 총기를 발견했다. 본인 스스로 총기를 버리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
[1신 : 5일 오전 8시 30분]
강화도 해안소초 총기난사 사건을 조사 중인 해병대는 김 상병이 4일 오전 10시경 주간 근무자 교대 시 상황실 총기 거치대에서 총기와 탄약을 훔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상병은 1시간 50분 뒤 훔친 K-2소총으로 소초 생활관에서 야간 근무 후 취침 중인 동료들에게 실탄을 발사했다.
김 상병이 미리 총기와 실탄을 훔쳤다는 점으로 보아 사전에 계획된 범행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김 상병이 K-2 소총을 발사할 당시 내무반에는 8명이 있었고 이 가운데 권승혁 일병과 박치현 상병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부상한 권혁 이병이 김 상병을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이승훈 하사는 부소초장실에서, 이승렬 상병(20)은 내무반 밖 전화 부스 인근에서 뛰어나오다 총에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 상병은 입대 전 인성검사에서 위험도가 높게 나오거나 부대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일반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범행 당일에도 소대장과 상담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상병, 입대 전 인성검사 위험도↑... 사건 당일에도 소대장과 면담
군 관계자는 5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 상병이 부대에서 일반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사건 당일 아침에도 소대장과 면담을 했다"면서 "부대원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상병은 가장 먼저 총에 맞은 권승혁 일병(20)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잦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의 개인사물함에서 발견된 메모장에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면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 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라는 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김 상병이 병원으로 후송 도중 심하게 난동을 부려 진정제를 투여했다"며 "의식은 있지만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고 툭하면 난동을 부리려는 자세로 조사에 비협조적"이라고 밝혔다.
해병대는 김 상병이 수류탄 폭발로 안면을 다쳐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 정확한 범행동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는 5일 오전 중 전날 이뤄진 조사 내용을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부에서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해 전방부대의 훈련 강도가 강해지고 오랜 기간 높은 긴장도가 유지되면서 일선 부대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된 것도 사고발생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해병대 제 2사단에서는 지난 17일에는 초병들이 아시아나 민항기를 북한 전투기로 오인해 경고사격을 하는 일도 발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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