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조난당해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무인도에 상륙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처음에는 일단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상륙한 섬이 무인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기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섬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오직 사방으로 수평선만 보이는 무인도.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쁨은 절망으로 바뀐다.
자신이 언제 구조될지도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21세기가 되도록 무인도로 남아있는 섬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던가, 아니면 주변의 대륙이나 다른 섬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거나 등.
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무인도에서 잠시나마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절망은 강인한 삶의 의지로 바뀐다.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인도에 표류하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자신의 2008년 작품 <도쿄 섬>에서 무인도에 표류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특한 무인도 표류기그 무인도는 태평양 어딘가에 떠있는 외딴 섬이다. 울창한 녹지로 둘러 싸여 있고 찌그러진 콩팥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면적은 가로 4km, 세로 7km 정도로 그리 넓지 않다. 독사나 산고양이처럼 위험한 동물은 살고 있지 않다. 야생종 바나나와 야자열매가 풍부해서 끼니를 때우는 것도 별문제가 없다.
이 무인도에 조난당한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오게 된다. 처음에 도착한 사람은 40대인 다카시와 기요코 부부다. 이들은 크루즈 여행을 하던 도중에 배가 파손되면서 가까스로 이 섬에 상륙한다.
그리고 세 달 뒤에, 23명이나 되는 일본인 젊은이들도 표류 끝에 섬에 도달한다. 이들은 일본의 가장 서쪽에 있는 섬에서 야생마를 조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된 노동을 못이겨서 어선을 타고 도망쳤다. 그러다가 태풍 때문에 조난을 당했고 몸뚱이만 건져서 섬에 도착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먹을거리가 지천인데다가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라서 밖에서 잠을 자도 별지장이 없다. 하지만 섬에 있는 유일한 여성인 기요코에게 눈독을 들이는 남자들이 생겨난다. 기요코는 기요코대로 그들과 바람을 피우고 남편인 다카시는 충격으로 몸져 눕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인처럼 보이는 사고사가 이어지고 서서히 미쳐가는 사람도 나타난다. 기요코 부부가 처음에 상륙한지 5년이 지나도록 주변을 지나는 배 한 척 없다. 이런 상황이니 미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들의 운명은 전부 어떻게 될까?
무인도에 갇힌채 점점 변해가는 사람들'무인도에 표류한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이나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 전부 그런 이야기다. <신비의 섬>에서는 무인도가 점점 낙원으로 변해갔지만, <파리 대왕>에서는 악몽이 구현되는 장소로 바뀌어 버린다.
<도쿄 섬>에서 무인도는 낙원도 악몽도 아니다. 다만 그 안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의 무대일 뿐이다. 섬 안에서 남자들은 동성애자로 바뀌어가고 기요코는 차가운 콜라와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카시도 식빵에 딸기잼을 수북이 얹어서 먹고 싶다고 일기에 적을 정도다.
실제로 무인도에 고립된다면, 구조되고 싶다는 희망도 희망이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사소한 바램들이 더욱 커질 것 같다. 아니 이런 사소한 욕망 때문에 구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무인도 이야기'가 계속 발표되는 이유도 고립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본성과 심리변화에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동안 묵직한 범죄소설을 주로 발표해왔던 기리노 나쓰오가 무인도 이야기를 쓴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외딴 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더해서 서로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면 더욱 끔찍해진다.
덧붙이는 글 | <도쿄 섬> 기리노 나쓰오 지음 / 김수영 옮김.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