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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교과부 정책의 가장 큰 핵심은 사교육비 경감이다. 대선공약 자체가 "사교육비 절반, 공교육만족도 2배"이고, 모든 정책마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한다고 하였다. 5월에는 제목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교육비 경감, 공교육 강화 선순환 방안"이라는 발표를 하여, 여하튼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교과부가 창의적체험활동을 신설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자기 활동을 올릴 수 있게 만든 에듀팟 사이트입니다. 그런데 벌써 독서활동기록 때문에 잡음이 생기고 과열현상으로 규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과부가 창의적체험활동을 신설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자기 활동을 올릴 수 있게 만든 에듀팟 사이트입니다. 그런데 벌써 독서활동기록 때문에 잡음이 생기고 과열현상으로 규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 교과부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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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한자, 영어 가르쳐

그런데, 올해 들어 영어 사교육비에 이어 한자 사교육비까지 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 불씨는 바로 교과부가 학기당 이수하는 교과목 수를 줄이고 창의적체험활동을 늘리겠다고 마련한 2009개정교육과정 때문이다.

⑹ 정보통신활용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

창의적체험활동은 교과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선전할 때 가장 자랑하는 대목이다. 창의적체험활동은 7차교육과정이나 2007개정교육과정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합쳐서 만든 새 이름이다.

교과부는 그동안 교과중심 수업을 벗어나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위 항목 때문에 안 하던 한자교육까지 생겨났다. 한 술 더 떠서 영어까지 가르치는 학교가 생겨서 초등학생 1, 2학년에게는 2개 교과가 더 추가된 학교도 있다.

대체 왜 한자교육이 갑자기 초등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2009년 당시 미래형교육과정(현재 2009개정교육과정)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한자교육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009개정교육과정 시안 마지막 공청회에서 갑자기 한자교육이 추가되었다. 일각에서는 교장단의 압력에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언론 보도에는 전직 국무총리들의 요구가 강했다고도 한다. 교과부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찬성도가 높게 나왔다고 해명하였다.

맨입으로 한자교육, 결국 사교육시장 열어줘

그런데 2009개정교육과정의 요지가 무엇인가? 학생 부담 줄인다며 집중이수제로 억지로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줄여 체육, 음악, 미술도 못하게 하면서, 초등학교만 과목을 늘려놓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관련 교과군과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하라는데, 초등에서는 관련교과가 전혀 없기 때문에 창의적체험활동 시간만 활용해야 한다. 또 "체계적인 지도"라는 말 외에 교과부가 한자 교육과정을 만든 것도 없고, 교사연수를 따로 한 것도 없다.

교육대학 양성과정에서 한자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한자교육 단계가 어떻게 되고, 초등학생 발달 수준이나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관련해 어떤 수준으로 가르쳐야 할지 사전 연구나 참고할 자료도 전혀 없다. 이는 정보 과목은 시도교육청에서 학년별로 교재를 마련하고, 보건 과목은 보건교육과정까지 만들었던 사례에 비해 준비가 너무 부실하다.

충분히 가르칠 시간도 부족하다.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다양한 활동을 하라고 하니 주당 1시간을 꾸준하게 가르칠 수도 없어 형식적으로 시간을 배치하여 적은 곳은 10시간도 안 되는 학교가 많다. 결국 제대로 가르칠 내용도 시간도 준비 안 해놓고 이름만 걸어놓은 것은 사교육시장에서 알아서 하라고 내주는 것과 똑같다.

이런 상황이니 사교육 업체나 한자자격시험 업체들이 자랑스럽게 한자교육을 홍보하고 유치원생부터 한자급수시험을 보느라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것이다. 일부 학교는 학교에서 급수시험 보라고 안내장도 내준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간다(한국어문회-한국한자능력검정회 주최 한자능력검정시험의 경우 검정료는 급수에 따라 2만~4만 원).

"써" 하면 되는 한자... 결국 학생들 학습 부담만 키워

이 때문에 학교에서 우후죽순으로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그 전에는 교육과정에 없기 때문에 안 가르치던 교사들도 이제 교육과정에 들어갔으니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과정도 없고 교수법도 따로 없기 때문에 그냥 "써" 하면 된다. 교사조차 사교육 업체에서 나온 교재를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1학년 아이의 공책입니다. 왼쪽은 한자공책, 오른족은 국어시간에 쓰는 10칸 공책입니다. 쓰는 한자도 어려운데다 아래에 쓴 힘력 등 훈과 음은 깨알같이 작게 써야 합니다. 발달단계도 교육과정도 다 무시하고 무책임하게 들어온 한자교육으로 애매한 초등학생들만 고생이 많습니다.
 1학년 아이의 공책입니다. 왼쪽은 한자공책, 오른족은 국어시간에 쓰는 10칸 공책입니다. 쓰는 한자도 어려운데다 아래에 쓴 힘력 등 훈과 음은 깨알같이 작게 써야 합니다. 발달단계도 교육과정도 다 무시하고 무책임하게 들어온 한자교육으로 애매한 초등학생들만 고생이 많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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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0칸 큰 칸에 한글쓰기를 배우던 1학년에게조차 부수도 어렵고 획수도 많은 한자를 무분별하게 쓰게 한다. 훈과 음을 쓰는 칸은 너무 작아서 글씨를 쓸 수도 없는데 그것까지 쓰고 있어야 한다. 힘없는 손으로 한자도 '그려야' 하니 이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게다가 학교에서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안 되니 집으로 숙제를 내줄 때도 많다. 

결국 이 때문에 학교에 항의전화를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한 학부모는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배운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왜 한자를 가르치는지,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꼭 가르쳐야 하는지, 또 원래 한자를 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내친 김에 교육청에도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다고 한다. 잘 모르거나 바빠서 말은 못하지만 한자교육에 불만이 가진 학부모들이 많다.

한자 교육 중단하고, 2009개정교육과정 폐기해야

한자교육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한자교육 찬성론자는 우리나라 말에 한자말이 많아서 어휘교육에 도움이 되고, 중국의 성장세가 빠르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면 중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도 한다. 반대론자들은 어휘교육은 문맥 안에서 획득해야 하고, 지금 우리가 배우는 한자는 중국에서도 많이 안 쓰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급수시험도 너무 다양하고 공인이 안 된 것도 많아 사교육비만 늘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교육과정에 하나의 과목이나 영역이 들어올 때에는 합리적 논의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것이 학생 발달 수준이나 기존 교과들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 입장에서는 영어든 한자든 다 배워두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지금 배우는 교과만도 양이 많고 숫자가 많다고 교육과정을 바꾸면서 한자는 왜 특별대우하는가?

한자를 넣고 싶으면 뭔가를 빼고 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설문조사를 할 때 솔직하게 이런 상황을 다 공개하고 그래도 한자를 가르치는 게 좋겠는지 물어본 것인가? 아니면 늘 하던 식으로 막연하게 "한자를 배우는 것이 좋을까요?" 물어보고 "네"라고 대답하면 이걸 찬성의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또 국가교육과정에서 한글도 제대로 안 가르쳐서 사교육으로 배우게 하는데 이제 한자까지 사교육으로 배워오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일까? 또 한자교육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교과부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게다가 특정 교과가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을 장려한다는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이 결국 특정 교과가 들어오는 통로로 전락한 상황이다. 영어도 처음에 6차교육과정 학교재량시간에 들어왔다가 정식교과가 되었다. 그 뒤 엄청난 영어 사교육비 증가로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할 정도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과부는 당장 현재 1, 2학년에 적용되는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을 빼야 한다. 나아가 연구도 부족하고 학교 현장을 잘 모르고 만든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계획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신은희 기자는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연구원입니다.



태그:#2009개정교육과정, #한자교육, #창의적체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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