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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초 간밤에 비를 흠씬 맞고도 어여쁘게 피었어라...
백련초간밤에 비를 흠씬 맞고도 어여쁘게 피었어라... ⓒ 이명화

며칠 전, 새 친구 백련초꽃을 만났습니다. 저녁이 되고 어둠이 짙어지면서 다음 날 새벽 늦도록 비가 쏟아졌던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밤을 타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 소리 들으며 새벽녘까지 깨어 있다가 늦은 새벽에야 잠이 들었던 날입니다. 이른 아침, 비가 얼마나 왔는지 산책로 옆 개울은 범람하였고 경사진 곳엔 폭포와 소를 이룬 곳도 있어 산책길에 환한 물소리가 듣기 좋았습니다.

벚나무와 나란히 서있는 자귀나무는 이제 꽃도 절정이라 멀리서 바라보아도 연분홍빛 꽃구름이 환합니다. 자귀꽃 아래 지나자 꽃향기 짙어 발길이 저절로 멈추었습니다. 새벽 늦게까지 내린 비로 참빛처럼 가지런하던 자귀꽃잎이 조금 흐트러진 채로 빗방울을 달고 있었답니다. 길은 축축하고 밤새 엎드려 있던 뻑국이, 참새, 까치 등 새들의 노래가 귓전에 정겹게 와 닿았습니다. 요즘 늘 만나는 새들입니다.

백련초... 꽃...
백련초...꽃... ⓒ 이명화

밤새 어둠 속에서 피워낸 꽃일까요? 아니면 제 눈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요. 산책길 옆 주택의 작은 뜨락이 환했습니다. 백합꽃, 원추리꽃, 은초롱꽃, 봉숭아꽃이 영롱한 아침이슬인양 빗방울을 송글송글 매달고서 청초한 얼굴로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붉게 핀 봉숭아꽃 옆에 백련초 꽃도 피었습니다. 제 몸도 맘도 노랗게 물이 들듯 황홀하도록 노란빛깔로 유혹하고 있는 백련초 꽃. 백련초꽃이 이토록 어여뻤나요?! 어린 시절 우리 집엔 마당이 없어서 옥상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었는데 그땐 백련초는 흔한 것이었지요. 백련초꽃이 저토록 어여쁜 꽃을 피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손바닥 같기도 하고 커다란 나무주걱의 뺨을 닮기도 한 밋밋하게 생긴 백련초. 모양새 없는 백련초에서 저토록 요염한 꽃을 피울 수 있는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보았습니다. 흐린 아침에 황홀하리만치 노란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 피어난 백련초 꽃은 태양을 대신하고 있는 듯했지요.

백련초꽃 옆에는 흰 백합도, 봉숭아꽃도, 은초롱꽃도 빗방울을 머금고 이웃해 있었습니다. 백련초꽃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황홀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백련초... 비에 젖어...
백련초...비에 젖어... ⓒ 이명화

길을 걷다 문득, 집에 있는 백련초가 생각났습니다. 늘상 보면서도 잊고 있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네요. 매일 보는 얼굴, 자주 보면서도 무관심하고 무신경할 수 있듯이. 옆에 있어 귀중한 줄 모르고 그림자대하듯 할 때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집에 있는 백련초가 자꾸만 제 모양대로 자라지 않고 키만 키우고 있길래 아무 생각없이 기댈 수 있는 막대기 하나 세워주었고 또 잊고 있었습니다.

어린 백련초는 언젠가 섬 속의 섬 마라도에 갔을 때 바다 끝 바위 위에서 해풍을 맞으면서 자라고 있던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때 내 마음의 기념으로 가져 온 것이랍니다. 기특하게도 한 손에 쏙 들어왔던 어린 백련초는 제 화분에서 아직도 죽지 않고 자라고 있습니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화분에 심은 백련초를 늘상 보면서도 그동안 잊고 있었나봅니다. 산책길에서 만난 백련초꽃 때문에 다시 떠올린 나의 백련초. 주인 잘못 만나 불쌍하네요.

백련초 비에 젖은 백련초꽃...
백련초비에 젖은 백련초꽃... ⓒ 이명화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백련초에게 다가갔습니다. 해풍을 맞고 자란 백련초라 살아 낼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까닭일까요. 그냥 내키는 대로 손바닥보다 더 작은 모종 화분에 심은 뒤로 한 번도 옮겨 심지 않았습니다. 진작에 좀 넉넉한 집을 마련해줬어야 하는 것을. 비좁은 화분 흙 속에서 그래도 살아내겠다고 옆으로 발 뻗을 곳이 없어 위로만 발돋움했나봅니다.

제 생긴 모양대로 제 자라지 못하고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상한 모양으로 키만 껑충합니다. 기형적으로 자라서 누가 봐도 이것이 백련초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정말 기특합니다. 제가 마라도 갔다 온 것을 상기시켜 주는 이 어린  녀석이 그 비좁은 화분 속에서 살아내겠다고 온 힘을 다하고 아직까지 죽지 않고 제 존재를 가만 가만히 드러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마음이 짠하더군요. 그래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자, 하고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곧 제 한 몸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제 집과 토양을 넓혀줄 생각입니다. 이 어린 것이 좀 더 자라면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노란 꽃을 피울까요? 백련초는 꽃이 지고 나면 짙은 보라색 열매를 맺는데 우리 몸에도 유익하다고 하지요?

나의 백련초도 죽지 않고 무럭무럭 자란다면 어쩌면 꽃도 보고 열매도 볼 수도 있을까요. 꽃을 안 피우면 또 어떻겠습니까. 잘 자라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감사하지요. 섬 속의 섬 마라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산책길에 만난 백련초꽃 덕분에 늘 가까이 있어도 그림자인 양 잊고 있었던 나의 백련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오늘도 그림자처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제 모양대로 살아가거나 자라지 못하고 기형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마음 눈을 열고 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면 고맙게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엔 백련초꽃이 황홀하게 피었습니다. 곧 열매도 맺겠지요. 오늘은 백련초꽃 소식을 전합니다.


#백련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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