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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할 무렵 우리 집안의 경제 살림을 언니가 도맡아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오빠는 군대에 입대를 해야했고 엄마는 오래 전에 허리를 크게 다쳐 이미 일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사는 게 힘들어서인지 엄마답지 않게 넋을 놓고 있을 때도 있었고 비록 우리집에서 산다고 해도 경제 형편이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빠가 군대에 가는 날, 나는 오빠가 잠시 출근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빠 갔다 와."란 짧은 인사를 했습니다. 안 그러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오빠가 보게 될테고. 식구들에게 나는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현이는 오빠가 군대 같다가 내일 오는 줄 아는가보다."
"그러게..."

언니가 울먹이며 짧게 대답을 했고 엄마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몇 년간 헤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엄마로서는 몹시 힘들었을까요? 아들이지만 엄마는 오빠를 남편처럼 의지하며 살고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소녀가장이 된 언니
소녀가장이 된 언니 ⓒ 장다혜

그때부터 내 입학금이며 등록금, 생활비 등은 언니가 벌어오는 돈으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언니는 내 등록금을 회사 동료에게 이자를 물어가며 빌려 왔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할 때, 나는 6학년 때 한반이며 회장이었던 친구 숙라의 언니가 입던 교복과 교과서를 물려받아 사용했습니다. 체육복이며 그림물감 같은 것은 사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사달라고 했으면 어떻게 하든지 사줬을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집안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체육복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겹치지 않으면 다른 반 친구에게 체육복을 빌려서 입곤 했지만 체육시간이 겹치는 날은 체육복 빌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학현이가 집에서 체육복 살 돈을 받아서 써버리고 체육복을 사지 않았대."
"삥당치게 안 생겼는데 너무하네."

나는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나는 소문의 출처를 캤습니다. 미영이란 아이의 입에서 처음 나온 소리였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미영이란 아이는 나를 괜히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괜히는 아닌 것도 같습니다. 총각이면서도 잘 생긴 수학선생님이 전근을 오셨고 수학이 떨어지는 내 옆에서 다정하게 지적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미영이는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학선생님이 내게 잘해주자 질투가 났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나는 우리 반에서 나쁜 아이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고 억울해서 견딜 수 없어 담임선생님께 사정 얘기를 하고 미영이와 담판을 짓기로 했습니다. 증인으로 서너명의 아이도 참석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너 내가 체육복 살 돈으로 다른 데 쓰는 거 봤어?"
"아니! 하지만 체육복 없는 얘가 어딨어?"

나는 거기서 말이 막혀 버렸습니다. 차마 체육복 살 돈이 없다는 말이 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미영이네는 아버지가 인하대 교수였고 잘 사는 집 아이였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형편을 이해할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봐 아무 말도 못하잖아."

선생님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학현이가 그 돈으로 딴 데 쓰는 걸 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흘러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선생님이 내 편을 들자 미영이는 얄밉다는 듯이 한 마디 더 내질렀습니다.

"치 울기는 왜 울어 할 말이 없으니까 괜히 울고 야단이야."

담판을 짓고 억울함을 풀려고 했던 내 수고는 허사로 돌아가고 아이들은 나를 여전히 삥당이나 치는 나쁜 아이 아니면 조금 이상한 아이로 대했습니다. 선생님만이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담임 선생님은 다행스럽게도 언니가 영훈중학교에 다닐 때 언니의 담임이었는데 오류중학교로 전근을 오셔서 내 담임을 맡으셨기 때문에 우리집 사정을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성적은 상위권 안에 들어가 있어 내게 함부로 대하는 아이는 없었지만 웬지 나를 기피한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미술 시간에는 그림물감이 없어 미술 선생님께 그림물감이 없다고 말하자 나를 앞으로 불러내 선생님이 쓰는 탁자에 앉게 했습니다. 

"오늘은 학현이가 모델로 서고 모두들 학현이를 그려 보도록 한다."
"어려워요. 어려워요."
"어렵긴 뭐가 어려워, 자기가 그리고 싶은 느낌 그대로 그리면 되는거야. 어서들 시작하도록."

미술시간 체육시간이 되면 나는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내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언니는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게 저려옵니다.

담임선생님은 생물과목 담당이었는데 담판이 있던 날 나를 불러 생물실험교실에서 나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선생님이 채집한 것을 따로따로 분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다 되었을 때 선생님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 뒤에 나를 앉게 하고는 페달을 밟아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자두를 한 봉지 가득 사주었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엄마랑 언니랑 나눠 먹어라, 친구들 주지 말고."
"예."

나는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두를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엄마랑 내가 먼저 먹고 언니 것은 남겨두었습니다. 언니는 야간학교에서 늦게 돌아왔으니까요.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학교에 다녀야 했던 언니는 당시 우리집 소녀가장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소녀가장이 된 언니#최초의 거짓말#연재동화#학현이#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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