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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저와 비슷해서인지는 몰라도 오세훈 서울시장님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소속 정당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런 제가 다른 분들 이상으로 시장님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얼마 전 <나는 가수다>가 논란이 됐습니다. 탈락자는 무대를 떠나기로 한 원칙을 번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방송을 중단시키고 책임 PD를 사퇴하게 만든 사유로, 시청률이나 출연자와의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적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칙'입니다.

 

7일간의 주민투표 청원 서명부 열람기간이 끝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희가 나름대로 검증작업에 참여한 결과 강서구의 총 3만7120장 청원 서명부 중에서 9429장이 대필이나 조작이 의심되는 서명부로 파악됐습니다. 전체의 25%가 넘습니다. 한눈에 드러나는 연속된 동일 필적 중심으로 확인했으니 25%의 수치는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80세가 넘는 노인분의 글씨체가 10대 소녀의 귀여운 글씨체인 경우처럼 이상한 서명부도 많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어 이의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주민번호를 색연필로 지웠다고 하지만 지우지 않았거나 식별이 가능한 서명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까지 포함했다면 그 수는 더욱 많겠지요. 그렇다면 본인이 작성한, 제대로 된 서명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주민투표 청원 서명부에 연속 동일 필적 300건 이상 발견  

 

서명부 열람 과정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동일인으로 보이는 글씨체가 연달아 50장이 나왔는데 바로 그 글씨체와 동일한 글씨체가 전혀 다른 묶음들에서 141장이 더 나왔습니다. 결국 동일 인물의 글씨체로 보이는 서명부 191장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하므로, 그 동일 필적이 다른 곳에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희는 이러한 연속 동일 필적 사례를 300건 이상 찾아냈습니다.

 

적게는 5장에서 많게는 100여장까지 연속된 사례들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량으로 연속되어 있지 않은 대리 서명은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강서구에서만 이만큼이면 서울의 25개 자치구에는 얼마나 많은 동일필체가 나올까요? 이 정도면 거대한 조직이 청원 서명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조직 운영에 소요됐을 자금도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시장님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한나라당의 현역 국회의원들과 한나라당 당직자, 서울시 산하 공무원들이 주민투표 청원 서명에 동참했다는 의혹부터 막대한 조직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서명을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이번 주민투표에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적사항과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제3자가 자유롭게 열람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범죄이기 때문에 앞으로 고소·고발이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시장님은 이런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41만8천 명의 유효 서명부만 갖춰지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시장님은 원칙과 정의를 어겨도 본인의 목적만을 달성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시민은 사과하는 자세 없이 혐의들을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시 당국의 이런 모습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치 선진국이라면 이러한 조작 서명이 몇 건만 드러나더라도 모든 절차가 즉시 중단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정치 후진국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오세훈 시장의 사과와 주민투표 추진 중단이 해답

 

 

저는 2주 전에 이번 주민투표는 불법이므로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주민투표법에서 정한 4가지 '원칙', 즉 다른 단체의 권한 및 예산에 대한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과 관권을 동원하거나 특정 정당이 참여해 선거운동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을 어겼다는 이유였습니다. 검증을 마치고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주민투표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법원이 판단하겠지만 이번 서명부 검증을 통해 파악된 의혹들은 형사적으로 수사의 대상이 될 문제들입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범법자를 양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10일까지 서울시에 접수된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원 서명부 이의신청은 모두 13만4600여 건입니다. 오세훈 시장님은, 실제로는 어느 정도까지 이를지 알 수 없는 대량의 주민등록번호 도용 의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습니다. 시장님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초유의 주민등록번호 대량 도용 의혹 사태는 시장님의 본의와는 다르게 진행됐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장님은 이러한 결과에 이르게 한 원인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장님께 부탁드립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가 야기된 것에 대해 사과하시고 주민투표를 즉시 중단해주십시오.

 

중단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하셨지만 시장님의 결단이면 가능합니다. 이 방법 외에는 시장님이 지금의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님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신기남 기자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이며, 15~17대 국회의원입니다.


태그:#무상급식, #주민투표,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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