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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은 범죄 및 부도덕한 행위나 사행심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법 제1장 제5조 '방송의 공적 책임'에 명시된 조항들이다.(제3, 4항) 최근 수신료 인상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KBS의 보도·취재 행태가 두 조항을 찬찬히 읽어보게 한다. '국민의 방송'이 권력에 포획된 채 방송의 본령이라 할 공적 책임과 공정성, 공익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 왜 '자사 이기주의'와 '기자윤리 실종'이라는 따가운 비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걸까.

 

KBS의 '수신료 인상 떼쓰기'는 비판을 넘어 절망으로 빠뜨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의 '수신료 대책 회의 도청' 의혹사건의 중심에 선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수신료 대책 회의장 안팎에서 보여준 몇몇 KBS기자들의 행태는 국민의 방송, 공영방송의 기자라기보다는 '조폭 저널리즘' 또는 '보스 저널리즘'의 한 면을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해 언론의 정도까지 저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도청 의혹사건을 일으키고도 자신이 행한 발언의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밝히지도 못한 채 "예정된 일정"이라면서 경찰의 관련자료 제출 요청마저 거부하고 해외로 나가 버린 무책임한 여당 국회의원과 한 통속이 된 듯한 민망한 취재 행태에선 그동안 KBS가 권력의 편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자 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견 역할을 다해줄 것을 간곡히 주문해 온 주인(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이 권력의 시녀 또는 애완견 소릴 들으면서도 제 밥그릇 키우는데 급급한 인상만을 심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시청료 인상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KBS의 취재·보도 행태가 동종업계에 어떤 시각으로 비쳐지고 있는지, 또 방송사 내부의 서로 시각은 왜 나타나고 있는지, 역지사지 정신으로 냉철히 짚어볼 때다.

 

KBS, "특검, 국정조사 해서라도 진실 밝혀야" vs. "도청한 바 없다"

 

언론사 회원들로 구성된 <한국기자협회>가 운영하는 <기자협회보>는 연일 'KBS 도청의혹'관련 속보기사를 인터넷 판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다. 그만큼 많은 회원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좌다. 주말이 시작되는 지난 8일엔 "특검, 국정조사 해서라도 진실 밝혀야"란 제목의 기사를 톱으로 올렸다. KBS 양대 노조가 낸 '기자 압수수색 성명'을 인용한 기사는 "KBS 양대 노조가 성명을 내 특검을 실시하거나 국정조사를 벌이는 한이 있어도 민주당 당 대표실 도청 의혹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리드에서 밝혔다.

 

내부 목소리 중에는 "방송을 통해 '도청 의혹' 결백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이목을 끈다. 이에 앞서 <기자협회보>는 지난 5일에도 ''KBS 수신료' 둘러싼 도청 주체 밝혀내야'란 주장의 글에서 "과연 KBS가 수신료를 인상시킬 자격이 있을까?"라고 물음은 던진 뒤, 잘못된 취재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한 정치부 기자는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내년 총선 때 두고 봅시다'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는가 하면, 또 다른 기자들은 민주당 원내 대표실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출입자를 감시하는 '위압적인 취재'로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공영방송인 KBS가 이런 위압적인 행태를 보이라고 정치부 기자 등으로 보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더니  KBS 정치부의 반격이 시작됐다. <기자협회보>는 11일 "제3자 통해 회의 내용 파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KBS 정치부 입장을 전했다. 기사는 "정치부 특정 기자를 도청 당사자로 지목하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추측성 의혹 제기가 전혀 근거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법적 대응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정치부의 어느 누구도 특정 기자에게 이른바 도청을 지시하거나 지시 받은 바 없다"고 밝힌 KBS 정치부 입장을 부각시켰다. 

 

기사에서 KBS 정치부는 "문제가 된 당시 민주당 회의는 국회라는 공공장소에서 공개리에 시작됐고, 국민 앞에 공표된 여야 합의 사항을 뒤집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진행된 만큼 그 내용 파악을 위해 참석자들을 집중 취재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자의 당연한 의무"라며 "KBS 정치부는 이러한 노력들을 종합해서 회의 내용을 파악했으며 그 과정에 회의에 관련된 제 3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을 부득불 확인한다"고 밝혔다.

 

<조선>, "KBS, 도청 의혹 빨리 털고 가는 게 낫다"

 

그러나 KBS를 바라보는 다른 언론사들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하다. 눈치 빠른 보수신문들도 돌아섰다.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KBS 취재기자 집 압수수색이 예사롭지 않았던지 <동아일보>에 이어 <조선일보>가 연이어 사설에서 강한 톤으로 질타하고 나선 점은 의외다. 종편과 지상파의 경계 쌓기가 시작된 것일까. 영역 다툼이 본격화된 것일까.  그동안 '보수·친여 프레임'의 한 배를 타고 'MB호'를 함께 순항했던 언론사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조언의 수위를 훨씬 넘어섰다.        

 

<조선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그동안 아꼈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KBS, 도청 의혹 빨리 털고 가는 게 낫다'란 제목과 함께 "KBS가 경영상 큰 이해관계가 걸린 시청료 인상과 관련한 정치권 움직임에 대해 불법·비정상적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해 반대편 정당에 제공했다면 이를 공공성 있는 취재 활동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사설은 못 박았다.

 

사설은 이어 '미디어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일요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NoW)>가 지난 7일 과거의 도청을 인정하면서 폐간을 선언한 사례를 들며 "민주국가에선 사실 보도를 위한 것이라 해도 부도덕한 방법으로 남을 감시하거나 도청까지 하는 것은 용납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라며 "KBS는 조속한 내부 조사를 통해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취재 방식 중 고칠 것은 고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조선>이 KBS를 나무랄 수 있었던 것은 루퍼트 머독의 사례가 하필 동시에 발생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설 말미에서 열거한대로 도청 의혹사건의 분위기 반전이 크게 작용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 빠른 눈치가 재차 읽힌다.  

 

"KBS는 지난달 30일만 해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민주당 회의 내용을 입수해 한나라당에 제공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경찰이 취재기자 집을 압수수색한 후에는 'KBS에 대한 모독이자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주말 보도국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했다. KBS 노조는 회사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경영진은 의혹을 빨리 털어내야 KBS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동아>, "한나라당-KBS 모종의 커넥션 있는 것처럼 비쳐 당에 누 끼칠 수도"

 

대세를 일찍 읽은 것일까. <동아일보>는 <조선>보다 빠르게 돌아섰다. 6일 '민주당 도청 진상 확실히 수사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민주당 대표실의 발언 내용을 처음 공개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부터 정확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며 "한 의원이 계속 비협조로 나가면 수신료 인상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KBS가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비쳐 당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신료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KBS관계를 에둘러 지적한 대목이다.

 

또한 사설은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005년 '안기부 X파일'에 담긴 대화 내용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에 대해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며 "'언론의 자유'와 '통신비밀 보호'가 충돌할 때 공익을 위한 보도라도 도청 관련 내용은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결국 사설 말미에선 "도청 범죄수사에 의원이나 언론기관이 성역일 수는 없다. 경찰은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사건의 경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무거운 주문을 던졌다.

 

다른 신문들도 때마침 세계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한 신문이 실종소녀 가족 휴대전화 해킹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결국 폐간 조처됐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면서 KBS의 미온적 태도에 공세를 가했다. 그 중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사설 공세가 연일 매섭다.      

 

<한겨레>, "KBS는 압수수색에도 '도청 모르쇠'로 버틸 셈인가"

 

<한겨레>는 9일 'KBS는 압수수색에도 '도청 모르쇠'로 버틸 셈인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방송은 '경찰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특정 정치집단과 일부 언론이 제기한 의혹제기에 근거해 압수수색을 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며 "하지만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경찰이 기자의 집까지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철저한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경위를 소상히 밝혔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그런데도 이런 노력은 없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다'는 따위의 발표로 의구심만 더욱 증폭시켜 놓았다"며 "압수수색에 대한 한국방송의 유감표명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쏘아 붙였다.

 

또한 "해킹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결국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 등을 주로 다루는 전형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이라며 "여기에 비하면 한국방송은 국민의 시청료까지 받고 있는 공영방송이다"고 연관 지었다. 기어코 직격탄을 사설 말미에서 날린다. "도청 의혹과 한나라당과의 부적절한 거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책임은 김인규 사장 사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 1일 'KBS는 도청사건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도 "한국방송은 지금이라도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도청 의혹 연루 여부를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며 "정말 결백을 자신한다면 '도청사건 연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인규 사장이 옷을 벗겠다'는 선언을 해야 옳다"고 압박했다.

 

<경향>, "KBS는 본질 호도 말고, 지금이라도 진실 말해야"

 

이에 뒤질세라 <경향신문>도 11일 'KBS는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야무지게 비판했다. "이번 도청 의혹 사건의 핵심은 KBS가 민주당 회의 내용을 도청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재하거나 취득해 한나라당에 넘겼느냐는 것"이라며 "경찰이 굳이 수사하지 않더라도 KBS가 의지를 갖고 조사하면 얼마든지 명백하게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일"이라고 사설은 지적했다.

 

사설은 그러나 "KBS는 그동안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무선 마이크를 이용해 몰래 녹음하는 것)은 한 적이 없다'는 등 애매한 태도로 의혹을 증폭시켜 왔다"며 "경찰이 의지를 갖고 국회 폐쇄회로(CC)TV나 압수물 분석, 관련자 소환조사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면 머지않아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도청 의혹 사건은 이미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결코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 이후 첫 시험대인 이번 사건에 경찰의 명예를 걸어야 한다"는 사설은 KBS에 재차 주문한다.

 

"KBS는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다. 만일 도청 등 부적절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전말을 밝히고 대국민 사죄와 함께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수사 결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KBS 경영진은 '국민의 방송' KBS가 결코 자신들의 사유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경향>은 지난달 30일 ''민주당 도청' KBS 연루의혹 반드시 규명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KBS 노조 측이 밝혔듯이 지금 공영방송 KBS의 도덕성은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다"며 "KBS가 어떤 형태로든 연루된 것인지 아닌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언론-정치권 '도청' 역사, 결과는 '유야무야'...이번에도?

 

어쩔 셈인가. 이러고도 KBS는 야당 도청 의혹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가. 이를 우려한 때문인지 <기자협회보>와 <주간경향>은 정치권과 언론사간 도청사례를 다루며 그 결과가 시사해준 메시지를 전하느라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선 <기자협회보>는 6일 '"특종 욕심 때문에…" 기자 불구속 입건·구속되기도'란 제목의 기사에서 "'X 파일' 사건 등 도청과 관련된 특종은 적지 않으나 언론이 직접 도청에 연루된 경우는 드문 편이다"고 전제했다.

 

기사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휴대전화가 도청되고 있다는 루머가 돈 것은 지난 2009년, 당시 청와대가 '행정관 향응 수수 의혹' 사건 뒤 출입기자와 행정관들의 휴대전화를 도청한다는 소문이 난 것"이라며 "브리핑 룸이 있는 청와대 춘추관 주위에 오면 통화가 끊기거나 통화 품질이 갑자기 떨어진다는 게 이유가 됐다"고 전했다.

 

기사는 이어 "청와대는 이를 극구 부인했으며, 대통령 이동 중 일시적인 전파 차단이나 청와대의 지형적 이유가 원인이라고 해명했다"며 "통화품질 개선을 위해 중계기 5대를 추가 설치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덧붙였지만, 출입기자와 출입처 사이에서 도청의혹은 줄곧 제기돼 왔다.

 

국회의원 출신 중에 김원기 전 의원과 도청은 많은 인연이 있다.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도청의 회오리 한 가운데 그가 서 있었다. <경향신문>은 1988년 10월 18일자 1면, '안기부 전화도청'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원기 원내총무는 이날 안기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남산의 안기부 서울분실 내에 있는 기술보안단이라는 황색 5층 건물에서 광범위한 전화도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기부도 인정했다"며 "그러나 안기부는 도청 중단 용의에 대한 적극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그의 출신지역(전북)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의 기자에게 그가 사무실에서 도청을 당하는 사건을 맞게 된다. 2004년 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의장실에선 소형 도청장치가 발견돼 언론계 안팎에 파문이 일었다. 이 도청기는 전북의 신생 일간신문사인 <전민일보> 김모 기자가 설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도청기를 설치했던 김모 기자는 열린우리당 공보실에 도청 시도 사실을 털어놨다. 그 이유는 "특종 욕심 때문에…"였지만 열린우리당이 선처를 요청해 해당 기자는 불구속 입건돼 수사를 받았다. 결국 언론과 정치권의 도청 파문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당시 전북민언련은 성명을 통해 "전민일보의 김모 기자에 의해 벌어진 '도청용 녹음기'사건은 한국언론계에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보다는 기자윤리를 저버리더라도 소위 '특종'을 해야 능력을 인정받고, 또한 그것이 남들보다 '빠른' 보도를 하는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과 풍토가 자리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왜곡된 인식과 풍토가 바로잡히지 않는 한 제2의 도청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 이 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당시 강희락 경기지방경찰청장의 경찰 간부 만찬 자리에 녹음기를 몰래 설치했던 통신사 기자가 구속된 사례가 발생했다. 수원지검 공안부는 2009년 6월 7일 후배기자를 시켜 경찰청장 주재로 열린 만찬장에 소형 MP3를 설치, 도청을 하도록 지시한 <아시아통신> 노모 기자를 통신보호비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MP3를 직접 설치했던 장모 기자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재판부가 상사의 지시가 있던 점,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KBS, '공정한 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돌아와 주길...

 

그럼에도 <주간경향 933호>는 '벽이 도청했단 말인가'란 기획기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청'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색다른 메시지도 담았다.

 

기사는 "미국에선 도청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연상되는데, 한국에선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 우선 떠오른다"며 "92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등이 모여 김영삼 민자당 후보 당선을 위해 관권 선거를 논의한 자리였다. 정주영 후보 쪽의 현대 직원과 안기부 직원이 공모해 도청했는데, 당시 언론은 관권선거보다 도청문제를 부각시켰다"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기사는 이어 "도청 하면 또 연상되는 게 2005년 터진 안기부 X파일 사건이다. 안기부는 90년대 비밀도청팀 미림을 만들어 91~94년, 94~97년 정계·관계·재계·언론계 등을 상대로 불법 도청했다"며 "삼성그룹이 9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사전모의'했다는 것과 검찰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시도한 정황도 녹음됐다. 도청의 내용이 불법·비도덕적이란 점에서 초원복집 사건과 비슷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기사는 사법처리 과정이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건희·홍석현 등 X파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법망을 피했지만, 이를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 떡값 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은 사법처리 됐다"는 기사는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선 이렇게 일갈했다. 

 

"민주당 도청사건과 관련, 연루의혹에 휩싸인 KBS가 30일 해명(?)이란 걸 내놓았다. '수신료 문제와 관련,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이다. 녹음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이른바 벽 바깥에 귀를 대고 취재하는 '벽치기'를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 귀 안에 도청장치'가 달린 '인간 레시버'라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KBS 노조 등 내부에서도 민주당 당 대표실 도청 의혹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사측과 일부 종사자들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혀 대조를 이룬다. 멀리보지 않더라도 최근 3백만 부가 넘는 부수를 발행해 온 1백68년 된 영국의 최대 일요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도청 파문'으로 결국 폐간된 사례를 KBS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은 KBS가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KBS는 지금이라도 주인인 국민 앞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또한 국민이 위임한 대로 공정한 방송, 권력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료를 더 내야 하겠다"는 자발적 동의도 얻을 수 있다.


태그:#KBS 도청의혹, #국민의 방송, #언론과 정치권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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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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