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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현지 시각)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열린 '100만인 시위'에 모여든 이집트 시민들을 보도한 <알 자지라>.
 7월 8일(현지 시각)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열린 '100만인 시위'에 모여든 이집트 시민들을 보도한 <알 자지라>.
ⓒ <알 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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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현지 시각) 금요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100만인 시위'가 열렸다. 1월 25일 혁명 이후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지만 국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 상태에 들어가는 8월 라마단과 9월 총선을 앞두고 열린 시위여서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또한 이날 이집트뿐만 아니라 예멘, 시리아, 리비아 등 주변의 아랍 국가들에서도 동시에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 혁명과 리비아 사태 이후 주춤했던 아랍권 민주화의 열기가 다시 불붙을 것인지도 관심을 모았다.

이번 시위에 시민들이 참여한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에 대한 불만, 지난 혁명 때 붙잡힌 무바라크 정권 시절의 관료들과 경찰들에 대한 빠른 처결 촉구, 실업 문제 해결 요구 등이 그것이다.

정권 이양 이전의 과도기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군 최고위원회가 시민들의 요구만큼 과감하거나 빠르게 무바라크 정권 시절의 관료들을 처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 역시 아직도 병원에서 요양 중이며 다른 관료들도 재판을 받기는 했지만 심한 처벌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내각에서 일하던 고위 관료들은 상징적인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정부 관련 기관장들은 유임되었고,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정치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도 불만 사항이다.

헌법 개정 문제 제자리걸음... '9월 총선 불가능' 예측도

정부 관료들과는 별개로 혁명 때 붙잡힌 경찰들 역시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고 있어 시민들의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혁명 때 발포 명령을 거부한 군부와 달리 일선에서 시민들과 대치했고 그동안 시민들을 상대로 온갖 권력 남용과 폭력을 저질러온 경찰이었기에 시민들의 반감은 더욱 크다.

지난 7월 2일 수에즈 지방법원은 혁명 때 시위 참여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구속된 경찰들을 보석금 10000파운드(약 200만원)에 석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수에즈는 가장 과격하고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한 지역이고, 혁명 이후 수에즈 운하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진행하는 등 반정부 분위기가 강한 곳이다. 수에즈 지방법원의 이런 판결에 항의하여 수에즈 지역에서 희생된 이들의 가족들이 그 다음날인 7월 3일 수에즈-카이로 간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9월로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을 뿐더러 총선거보다는 헌법 개정이 먼저라는 것도 시민들의 주요 요구사항이다. 무슬림형제단과 기존의 집권 정당인 NDP(National Democratic Party, 무바라크 시절 여당)가 연합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고 두 당 간의 연합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음에도 그러한 것들을 견제할 수 있는 헌법적 조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의 무능력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이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계속되는 시위와 사회 불안정, 군 최고위원회의 소극적인 자세, 제자리걸음인 헌법 개정 등이 맞물려 9월 총선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어 라마단을 전후하여 대규모 시위가 더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군 최고위원회가 혁명 과업 추진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에 실망한 이집트 시민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다시 천막을 치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도한 <알 자지라>.
 군 최고위원회가 혁명 과업 추진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에 실망한 이집트 시민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다시 천막을 치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도한 <알 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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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내는 시민들... 치안은 불안해져

혁명 이후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혁명이 끝난 직후에는 시위만 하다가 사회 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회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수에즈 운하 노동자 파업, 카이로 지하철 노동자들의 선로 점거, 대학교 교직원들의 임금 인상 요구, 종교 간의 충돌 등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과도기적 현상이지만 매우 잦은 이러한 시위들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치안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경찰과 군인이 혼재해 있는 상황이 오히려 치안을 책임지는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혁명 이전에는 거의 칸 칼릴리 등 관광지에서만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일어났으나 이후에는 주택가 골목길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혁명 이후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주로 젊은이들인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행인의 가방을 빼앗는 등의 범죄도 저지르고 있다. 또한 밤이면 이러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모여 도로를 질주하기도 한다. 통행금지는 오전 두 시에서 오전 다섯 시로 완화되었지만 해가 지면 여성들이 단독으로 외출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라마단이 다가옴에 따라 물가도 조금씩 오르고 있어서 사회 불안이 더 가중될 위험도 있다.

이번 7월 8일의 '100만인 시위'에 모인 사람들은 일단 해산하였지만 7월 12일 화요일 오후 다섯 시에 다시 시위를 하기로 예정된 상태다. 주로 휴일인 금요일에 시위가 일어났던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이후 약 5개월이 지났다. 계속되는 사회적 불안과 시위 등을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이해하던 시민들도 뚜렷한 비전 없이 정국을 운영하는 군 최고위원회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다. 전국이 일시적인 기능 정지 상태에 들어가는 라마단인 8월이 지나면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9월이다. 민주화 혁명으로 얻은 결실인 민주 총선거와 헌법 개정, 대통령 선거 등 일련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라마단 정국'을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태그:#이집트, #시민혁명, #아랍 민주화, #무바라크,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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