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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 총기사건 발생 이후 국방부와 군은 병영문화 혁신을 위한 교육과 토론회, 실태점검 등의 대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해병대는 사건 직후 유낙준 사령관 주재로 긴급 지휘관 회의를 열고 '병영문화 혁신 100일 작전'과 '구타·가혹행위 병사 삼진아웃제' 등 대책을 내놨고, 김관진 국방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서 앞으로 병사들의 인성검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0일 밤에도 경북 포항의 해병 1사단에서 정아무개 일병이 스스로 목을 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이런 대책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 일병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11일 오전 국방부는 군대 내 사망사고가 줄어들었다는 통계자료를 내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부의 자료가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는 자료에서 지난 1987년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지침'이 시달돼 사망자가 85년 721명에서 90년에는 430명으로 40%가량 줄었으며, 1994년 '군사고 예방 규정'을 제정한 뒤 2000년 자살사고가 두자릿 수로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3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한 것이다.

 

당장 강제징집이나 녹화사업에 따른 군내 의문사가 빈발했던 80년대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국방부의 통계를 보면 최근 5년 사이의 군내 자살자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기자들의 빈축을 샀다.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10만명 당 자살자 수는 2005년을 기점으로 ▲2006년 11.3명 ▲2007년 11.4명 ▲2008년 11.7명 ▲2009년 12.4명 ▲2010년 12.6명으로 증가했다. 군 내 자살자 수는 2005년 64명에서 2006년 77명, 2007년 80명, 2008년 75명, 2009년 81명에 이어 지난해 82명으로 집계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같은 기간에 전체 국민 10만명 당 연간 자살자 수가 23∼31명인 것과 비교하면 군 내 자살자 비율은 낮은 수준"이라며 "군 내 자살자 증가세는 사회 전반적으로 자살이 느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2일 오전 기자와 만난 군 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국방부와 군 당국이 군내 자살자와 전체 국민 자살자 숫자를 비교해 군내 자살률이 낮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미군의 자살률이나 상황이 우리와 비슷한 대만군, 독일군, 이스라엘군의 그것과 비교해 보았느냐"고 반문했다.

 

병력의 대부분을 징병으로 충당하는 우리 실정에 비추어 보면 군내 자살률이 낮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군 당국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것이 임 소장의 지적이다.

 

임 소장은 또 군대에서 가혹행위와 집단따돌림이 원인이 된 각종 사고를 근원적·구조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병사 개인 간의 행위로 치환해버리는 군 당국의 인권의식 부재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임 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해병대에 '상호존중하는 병영문화'는 구호일 뿐"

 

- 지난 4일 해안소초 총기사건 전후로 해병대에서는 가혹행위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자살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군 당국에서도 대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참 한심하다. 해병대에서 내놓은 대책 중에 구타와 가혹행위를 한 병사를 '삼진아웃'시키겠다는 게 있던데, 그럼 두 번까지는 구타와 가혹행위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구타와 가혹행위는 분명히 법률이 정하고 있는 범죄인데, 형법을 세 번 위반할 때까지 가만 두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는 인권의 개념이 군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삼진아웃이 아니라 적발 즉시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휘관들이 '맞은 놈도 (맞을) 이유가 있어서 맞았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군대 내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는 요원하다."

 

- 구타와 가혹행위는 이전에도 군 내에 계속 존재해 왔는데, 이번에 해병대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는가.

"육군이 가장 덩치가 커서 사건 발생 건수로는 가장 많다. 하지만 해병대 해안소초 총기사건의 경우에는 드러난 가혹행위의 정도가 상당히 엽기적이다. 김 상병과 범행을 공모했다고 구속된 정 이병의 경우에는 선임병이 성경책에 불을 붙이는 일까지 있었다. 이것은 신성 모독이고, 사실상 종교 박해 아닌가? 정 이병은 이런 사유로 망명을 하거나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사유까지 된다. 또 다리털을 뽑고 담뱃불로 피부를 지지는 일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육군에서 과거에 이런 사례들이 보고된 적은 있어도 지금 이 정도는 아니다. 해병대 총기사건의 배경에는 이런 정도의 심각한 일들이 있었다."

 

-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총기사건이 해병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총기사건이 난 해병대 2사단은 지난해 참모장 오아무개 대령이 운전병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던 부대다. 올해 3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병대 1사단에 대한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상습적으로 병사들 간에 구타와 폭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시정권고까지 했지만 군 당국은 이를 축소·은폐하기 급급했다. 그 후에도 백령도 해병대 6여단에서 성추행과 구타, 가혹행위가 적발되고 총기 사건이 터졌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해병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우스운 거다. 병사들의 인권에 대한 긴장감이 없는 것이다. 말로는 상호 존중하는 병영문화를 강조하지만 그것은 구호일 뿐이다."

 

-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국무회의 석상에서 총기사건의 원인으로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의 인식처럼 총기사건의 원인이 신세대 젊은이들이 군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는데.

"'극도로 개인화된 신세대 장병들의 이기주의가 문제다'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정말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이다. 구타와 가혹행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군 수뇌부의 치졸함이 숨어 있다. 사회가 바뀐 만큼 군이 바뀔 생각을 하지 않고, 변화한 세상에서 살다 입대한 젊은이들의 변화만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 그렇다면 상습적으로 되풀이 되는 군대 폭력의 악순환을 뿌리 뽑기 위해선 어떤 대안이 있는가.

"이 문제를 군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이 외부 인권단체들과 함께 장병 인권 실태조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독일식의 '국방감독관제'를 도입하거나, 대만식으로 군내에 인권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은 정보요구권과 문서접근권을 갖고 군대 구성원으로부터 청원을 받아 각종 사건을 조사할 수 있고, 사전 예고 없이 부대를 방문해 병사를 면담할 수 있어 실질적 인권감시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에는 군내에 민간인들로 구성된 관병권익보장위원회가 구성되어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가 언제든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가 나와 있는 포스터가 병영 안에 붙어 있다. 만약 이게 되지 않으면 학생인권조례처럼 특별법을 만들어서 강제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는 군 관련 진정사건을 조사하는 조사관이 단 3명뿐이다. 이 3명의 조사관이 65만 군대를 담당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군내 인권에 관한한 도대체 무얼 하는지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어 버렸다."

 

국방감독관이란

 

독일의 국방감독관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연방군 재창설 과정에서 군에 대한 헌법적 통제장치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스웨덴의 군 옴부즈맨(militie-ombudsman)을 본 딴 국방감독관(Wehrbeauftragte)은 군 조직원의 기본권을 옹호하고 의회의 군 통제권 행사를 돕는 헌법적 임무와 권한을 지닌다.

 

의회의 비밀투표로 선출하는 5년 임기의 감독관은 군대 구성원으로부터 청원을 받아 정보요구권 및 문서접근권을 갖고 국방장관·각 군·부대기관·군 요원들을 조사할 수 있다. 또한 사전예고 없이 군 부대를 방문하거나 현지 부대에서 일반 군인을 면담할 수 있고, 군법정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다.

 

국방감독관이 취합한 정보들은 국방부 장관에게 즉각 통보되며 이후 연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데 이 보고서는 대중매체에 비중있게 보도 된다. 국방감독관은 국방부 장관이나 해당 기관에 문제 시정 요구 및 권고를 할 수 있지만 구속력을 가진 명령이나 지시는 할 수 없다. 조사권과 권고권은 있지만 명령권이 없다는 점에서 독일의 국방감독관 제도는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사한 점이 있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은 국방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의회의 영향력이 강한 독일은 국방감독관을 의회 기관으로 소속시켰다. 국방부 안에 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군대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게 협력하는 것을 방지하고 군인의 기본권을 지킨다"는 취지의 국방감독관제도가 유명무실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태그:#해병대, #총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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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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