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닥터 헨리 노먼 베쑨(Dr. Henry Norman Bethune(白救恩) : 1890. 3. 3.~1939. 11. 12.)의 전기이다.
너무 많이 알려진 이름들은 그 유명세 때문에 제대로 그분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드문 것 같다. 나도 베쑨을 들어서 알고 있는 듯 착각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베쑨을 더욱 잘 알고,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
베쑨은 평범한 의사였으나 한편 특별했다. 나는 자신을 희생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고 또한 사회의 의사노릇을 한 베쑨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만날 정권잡기에 바빠 민중을 살피는 것에 게으르고 부정부패만 저지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베쑨이 살던 1930년대는 정부도 가난하고 그만큼 경제도 발달하지 못했으며 병의 발병율도 매우 높았던 때였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베쑨의 많은 좋은 의견들(무상의료, 재활치료, 보편복지 등)이 실현되지 못하고 묻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4대강 사업, 한반도 대운하, 동계올림픽유치 등을 할 만큼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발병률도 낮아졌으며 새로운 치료기술도 매우 좋아졌기에 베쑨이 못 다한 꿈을 가능할 여건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베쑨이 살던 시대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지금은 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베쑨이 제안한 정책들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스웨덴이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많은 부분이 비슷한 스웨덴의 경우, 암이 생길 경우 정부에서 소득의 80%를 지원하고, 암을 치료하는 비용이 50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 그에 비해서 한국은 암 치료를 한 번 하는 데에 약 3000만원 가까이 든다. 왜 차이가 날까?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만든다면,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무상치료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치료하는 큰 의사 베쑨1890년 캐나다의 퀘벡 지방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흉부외과의사가 된 노먼 베쑨. 그는 치료를 하는 도중 부자들은 손가락이 다쳐도 병원을 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병이 걸려도 병원을 찾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무료로 치료하며 가난한 자들과 고통을 나누고 사회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이런 생활을 7년 여 이어갔을 때 베쑨은 결핵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지금이야 수술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당시의 결핵은 치료가 어려운 암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베쑨은 한 요양원으로 가서 휴식을 취한다. 거기서 보내는 몇 개월 동안 그는 자신이 돈을 위해서만 달려왔다는 것을 느끼고 나가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까닭인지 그는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베쑨은 요양소에서의 약속을 지킨다!
베쑨은 가난한 자들을 돕던 도중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환자들이 때를 놓쳐 조금만 더 일찍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었던 병을 그대로 방치하여 악화되고, 결국은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바로 '가난'이라는 질병 때문이었다. 이후로 그는 사회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 이외에도 사회의 가난과 파시즘이라는 질병을 치료하기로 결심하고, 그 노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만인을 돕는다는 공산당에도 가입한다.
어느 해, 베쑨은 당시의 캐나다보다 훨씬 의료 선진국이었던 러시아를 보러간다. 러시아에서는 막 사회주의가 시작되던 때라 무상치료와 건강보험, 회복자 사회진출 등이 활기를 띄며 잘 굴러가던 때였다. 그는 그런 러시아의 의료시스템에 감명을 받고 캐나다 정부에 재활사업, 무료치료, 건강보험 등을 건의했으나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자유 스페인으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스페인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원을 받은 파시스트들이 독재정권을 수립하려고 민중을 핍박하고 있었다. 민중은 그에 반해서 민주 정부를 세워 스스로 총과 칼을 들고 자유 스페인을 지키고 있었다. 베쑨은 이들의 사정을 듣고 스페인을 돕기 위해 떠난다.
베쑨은 민주 정부를 돕기 위해서 전선을 다니며 부상자들에게 바로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하는 기동 수혈부대를 운영한다. 자신이 직접 전선까지 가서 부상병들을 수술해주었으며, 급하면 자신의 피를 뽑아 사용했다. 환자들을 위해 자시의 목숨까지 내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베쑨은 그저 의학 활동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정치활동도 했다. 외국으로 나가 많은 이들과 언론에 스페인의 실상을 알림으로서 여러 나라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베쑨은 만인의 의사라고 불리었고,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노력으로 전선에서 죽는 부상병의 수가 75% 가까이 감소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민주정부가 힘을 얻고 싸울 수 있었으며, 결국 민주정부는 졌지만 그의 정신과 명성은 바래지지 않았다.
아무도 자유를 지키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돕지 않았으나 베쑨은 달랐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는 지금 기업인들에 맞서서 김진숙 노조위원장이 크레인 위에서 고공투쟁을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순이익의 1.5배에서 2배까지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면서 회사가 어렵다고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강제퇴사 시켰다. 이런 현실에 반발하여 김진숙 위원장이 고공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조마저 기업인들 편을 들며 투쟁하는 이들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 수 있을 텐데 무시하고 물대포만 쏘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이다.
중국에서 '만민의 동지 백구은'으로 불리다한편, 우리와 이웃인 중국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즈음 많이 어지러웠다. 민중은 탄압받고 있었고, 그 탄압에 맞서기 위해서 공산당이 창당됐다. 그러나 공산당은 무기 하나, 의사 하나도 없는 당이였다. 베쑨은 중국 민중을 위해 중국 공산당을 돕기로 한다.
그는 중국에서 하루에 100명을 수술할 만큼 열심히 환자들을 위해 일했고, 그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았다. 월급을 받긴 했지만 그 돈마저 모두 부상병들을 위한 담배기금을 조성하는 데 썼다.
공산당 정부의 승인을 받아 자신의 돈까지 쏟아 제대로 된 의료 인프라가 없는 중국을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환자들과 부상병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당시 공산당 측에는 의료 인력이 없었는데, 그는 병원을 세워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학을 설립하려고 했을 정도로 의사를 키우기 위해 많은 열정을 쏟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수술을 했다. 수백 미터밖에 적이 있어도, 자다가도 어딘가에서 부상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받으면 밤이라도 달려가 수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스에 손을 찔렸고, 다친 손은 감염으로 고름이 잔뜩 생겼다. 엎친데 덮쳐 옛날 치료를 마쳤던 결핵까지 재발하기에 이르러 결국 그는 이름 없는 시골에서 생을 마친다. 중국 민중은 너무나 슬퍼했으며, 공산당의 지도자 모택동마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현대에서 보는 베쑨베쑨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의사로서 수혈과 조기 개흉술, 사회의 의사로서 무상치료제도와 미술학교 건립을 했다. 그러나 그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넘어 사회까지 치유하는 큰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업적, 돈을 버리고 떠나 가난한 자들을 돕고, 치료할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 치료를 베풀었다. 그것에는 100시간이나 수술을 해내는 체력과 남다른 의지가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 라 했다. 내 생각에는 베쑨은 큰 의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전선에서 수천만 명, 여러 병원에서 수백만 명이 살아났다. 보통의 의사가 한 일이라고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돕고자 한다면, 그런 생각만 있다면 베쑨처럼 수천만 명을 살리진 못해도 적어도 단 한 사람을 살려낼 수는 있을 것이다. 더욱이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정치인과 부자라면 훨씬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권력과 돈을 가지고도 가난한 이들과 나눌 줄 모르는 이들이라면 베쑨을 보고 부끄러워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훌륭하신 분들도 많이 계셨다. 나는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의료제도와 복지제도가 시행된 것이라고 본다.)
그간 한국사회는 좌우대립이 심각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무조건 빨갱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무찔러야할 존재라고 가르쳐왔다. 공산주의자들이 해낸 무상복지, 무상의료와 같은 민중, 무상적인 많은 업적을 평가해주지 않았다. 이념이 다르더라도 인류를 위한 이런 역할에 대상서 그 장점을 보며 닮고자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간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해왔다.
현재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4대강 사업에는 수십조 원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필요한 의료사업은 안 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약이 없어 죽어가고, 병을 놔뒀다가 키우고 있다. 1930년대가 아니라 2010년대에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 소득액이 2000만원이며, 1년 평균 저축액은 60만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암이 생기면 골수이식의 경우 3000만원이 든다. 보통 사람일 경우, 연봉의 1.5배를 모아야 하고, 평균 저축액 기준으로, 50년간 저축을 해야 골수이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만 원 이하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전체의40%)은 평균 저축액이나, 평균 소득에 못 미치므로, 치료는 거의 불가능 하다. 중산층, 즉 연봉이 2000만원~4000만원인 사람들 (전체의38%)도 50년 가까이 저축을 해야 하니, 우리나라의 80%는 암이 걸릴 경우 뒷감당을 못 한다. 이런 구조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
제도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훌륭한 의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서양의학의 선구자, 히포크라테스, 아이들을 사랑한 마더 테레사, 오지로 가서 선교활동을 한 슈바이처 등과 동양의학의 대명사 허준이 대중에 알려졌으며, 비 제도권에서는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 가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와 허준이 동, 서양의 의학체계를 수립했다면 슈바이처는 의사로서 부귀영화를 버리고 한평생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선교와 무상치료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 전제하에서 단지 의료사업만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슈바이처는 서양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노먼 베쑨은 만인을 평등하게 생각했으며, 모두 평등하게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의료범주 뿐만 아니라 사회의 평등, 의료제도의 개선 또한 주장한 사람이다.
위대한 개인이 사회를 더 좋게 할 수도 있지만 생각이 있는 개인이 모여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작은 한 사람으로서도 분명 할 수 있는 있으리라 믿는다. 돈과 권력을 먼저 가진 뒤 그것을 나누겠다는 생각보다 당장 자기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해야겠다. 나부터도 당장!
나는 베쑨을 보면서 생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존재,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토록 크게 쓰인다니... 베쑨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위해서 의사가 되어 이라크나 소말리아로 가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나도 베쑨처럼 나아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 <닥터 노먼 베쑨>(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씀, 실천문학사 펴냄, 1991년)
*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