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요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 노조 지도자들은 남유럽 사람들에게서 적어도 한 가지, 즉 낮잠을 모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7일(현지 시각) 영국 언론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독일노동총동맹은 점심 직후 기력을 회복하기 위한 짧은 낮잠(시에스타)이 건강에도 좋고 업무 능률도 올린다며 낮잠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노동총동맹 집행위원인 아넬리 분텐바흐는 <타게스짜이퉁>과 한 인터뷰에서 "오후의 짧은 낮잠은 심장마비 위험을 줄여주고 (신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낮잠의 효능은 연구로 입증되고 있다. 하버드대학과 아테네의학대학의 연구자들은 그리스 노동자 중 지속적으로 낮잠을 즐긴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관상동맥 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37%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UC버클리 연구진은 지난해 건강한 젊은이가 오후에 낮잠을 즐기면 그날의 업무를 배우는 데서 더 높은 성취도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레겐스부르크대학의 생물학 및 심리학 교수인 위르겐 줄리는 "낮잠을 짧게 자면 신체 반응이 더 빨라지고,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며, 사물을 더 잘 기억하고,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건강에도 좋고 업무능률도 올린다"... "퇴근 시간 늦어질 것" 우려도 <가디언>은 "(낮잠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독일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BASF, 오펠, 루프트한자 같은 대기업들도 노동자에게 "특별한 방"을 제공하고 있고, 고용주들이 "직원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생산성이 높아져 이익을 봤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낮잠 도입에 반대하는 노동자도 있다. 베를린의 한 전기 기술자는 "우리는 이미 아침식사 때 30분, 점심 때 30분 쉬고 있다"며 "낮잠 때문에 휴식 시간이 길어지면 집에 가는 시간도 늦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노동자는 "독일은 스페인·이탈리아와 다르다. 그 나라들은 날씨가 매우 더워서 낮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긴 독일이다. 우리에겐 제대로 된 여름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한낮의 재충전 기회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를린의 한 보건 노동자는 "때때로 정말 낮잠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일터에서 자본 적은 없다"며 "만약 오후에 잠깐 동안 누울 공간이 일터에 있다면 정말 굉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낮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폭염이 이어졌던 2006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일부 의원이 '유례없는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시에스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과 중 낮잠'이 독일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독일인들도 낮잠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에도 숙련공이 노동 과정을 자체적으로 통제하던 때에는 낮잠 문화가 있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대자본을 중심으로 노동 과정이 재편되면서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서 낮잠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낮잠 문화를 상징하는 남유럽에서는 시에스타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지난 20여 년간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페인 정부는 2005년 12월 공공기관에서 시에스타를 공식 폐지했다. 그에 앞서 스페인 재계는 '시에스타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적 관습'이라며 폐지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이와 달리, 시에스타는 일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건실하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독일 노동자들 사이에서 최근 경제 위기로 휘청대는 남유럽의 시에스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