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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읽고 난 후 순례자들의 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었고 국내 산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내게서 멀게만 느껴지기만 하던  히말리야, 킬리만자로, 안나푸르나...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그리움이 생겼던 것 같다.

문득 문득 떠나고 싶다고 느껴질 땐, 글의 홍수, 말의 홍수, 사람 홍수 속에서 멀미를 느낄 때이다. 빨리 빨리의 우리사회에서 마치 피라미드형의 거대한 막대사탕에 우글거리는 벌레들이 서로 먼저 올라가겠다고 경쟁하고 밟고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삶 속에서, 너도나도 스펙 쌓기에 열광인 사회에서 이대로 좋은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을까. 길 위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해질 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잠들기 전에도, 깨어 일어나서도 이 질문을 붙들고 있을 때, 나는 떠나고 싶어진다.

내가 쏟아낸 말과 글들에서 가끔 환멸을 느낀다. 너무 표피적인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사고의 채에서 고운 가루로 걸러내지 않고 가볍게 쏟아내 버린 말들이 너무 많을 때, 가끔은 숨고 싶어진다. 침묵으로 길 걷고 싶어진다. 너무 생각이 많아 생각의 타래가 얼키고 설켜 있어 마음 복잡할 때 문득 떠나고 싶어진다. 이따금 무얼 잃어버렸을까 두리번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떠나고 싶어진다. 가벼움, 경박함과 얕은 사고와 생활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잃어버리고 살고 있진 않을까, 부쩍 회의하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박범신의 '히말리야에서 보내는 사색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비우니 향기롭다>(랜덤하우스)는 히말리야 산협 사이를 70여 일 동안 걸으면서 그동안 내 집(한국)에서 길들여 살아온 것들을 멀리 두고 바라보면서 자기내면의 혁명을 위한 여행길, 그 길에서 건져 올린 사색의 그물에 걸린 글들이다. 히말리야를 홀로 걸으며 '존재의 가없는 하찮음과 존재의 가혹한 무거움'을 만났던 경험들을 편지글로 써 모은 것이다. '내 안으로 걸어간' 기록이며 '동시에 일찍이 가혹하게 버려져 이제는 유령의 검은 망토를 입고 등 뒤에서 옛 꿈들이 날 원망하며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초상에 대한 애틋한 시술'이다.

'봄엔 봄꽃이 질 때까지 내내 히말리야 설산 밑을 걸었고 겨울녘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올랐던 그가 사는 게 이대로 괜찮은지, 충만하고 향기로운지 돌아보며 맹목적인 경쟁을 통해 달콤하고 안락한 삶만을 좇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사색하고 사랑할 겨를도 없이 내 발의 물집조차 굽어볼 틈도 없이 허위허위 달려오느라 드높은 어떤 것들을 내다 버리진 않았는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기, 내면의 여행기이다.

"그리운 저기와 비천한 '여기'의 가파른 단층에 사다리를 놓고 싶은 열망을 버리는 것은 인생에 대한 유기이자 죄일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히말리야 여행을 통해 '신과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잊고 있던 그에게 죽비로 내리쳐서 그것을 가열차게 깨닫도록 해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색은 달리는 자에겐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머물러 서서 먼 곳을 볼 겨를이 없으니 사색은 점점 멀어지고 그 다음엔 세상이 만든 습관과 관성에 따라 달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깊어져야겠는 절실성을 느낀다. 깊이 없는 사색은 고스란히 내 말에서 글에서 삶 속에서 드러난다. 우린 너무 바쁘다. 바쁘지 않는 것은 곧 능력 없음의 다른 이름이며 바쁜 것은 유능한 것처럼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우린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내며 살아간다. 지나치게 말이 많다. 말의 홍수 속에서 멀미를 느끼면서도 쏟아내고 또 쏟아낸다.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네팔어다. '안녕하세요' 만이 아니라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심지어 '행복하십시오'라고 해석하기도 한단다.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시작이자 소통의 끝이 모두 여기 '나마스테'에 담겨있다. 문득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 당장이라도 여행지로 달려가고 싶어지는 날에 '히말리야에서 보낸 사색편지' <비우니 향기롭다>를 읽으면서 잠시 침묵 속에서 함께 히말리야를 걸었다. 비록 히말리야를 몸으로 가진 못했지만 작가가 보낸 사색편지, 70여 일 동안 홀로 걸으며 건져 올린 사색의 결정체들을 만나 좋은 시간...'나마스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행복하십시오.


비우니 향기롭다 -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박범신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태그:#비우니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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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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