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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 중앙대학교 주변 주택가 벽에 원룸과 하숙 전단지가 가득 붙어 있는 모습.
 지난 2월, 서울 중앙대학교 주변 주택가 벽에 원룸과 하숙 전단지가 가득 붙어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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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30여 년(군대 간 2년 제외)을 줄곧 부모님, 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아온 나.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이 된 순간부터 머릿속에 계속 떠나지 않는 생각.

'이제는 좀 독립해 살아보고 싶다.'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우리 할머니의 약간 높아진 언성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잔소리로 느껴지는 순간, '아, 이제는 집안 어른을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독립된 가구를 꾸리고 자주 왕래하며 지내는 게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심적·물적으로 독립하거나, 최소한 부모에게 신세는 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사회가 상식적이라고 본다. 20대를 넘어가면, 세대차는 물론 가치관, 정서·문화적 차이 등으로 부모와의 크고 작은 마찰이 잦아지곤 한다. 마냥 붙어사는 것보다, 다 큰 자녀의 '자기 삶 살아가기'를 부모도 옆에서 돕고 조언하며, 서로의 '독립'을 준비함이 현명하게 가족행복을 도모하는 처사 아닐까.

성인이 돼 홀로서기를 한다는 건, 단지 부모와 따로 살지 같이 살지를 결정하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기주체성을 갖고 '내 삶'을 개척해갈 수 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소수의 정해진 직업(대기업, 공무원 등)에만 열을 올리는 보수성을 띠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로부터의 경제적·정신적 독립이 늦어지는 현상도 한몫하고 있지 않을까. 내면에 깃든 진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보는 순간의 직면일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사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젊은이들과, 사회적인 장치(월세보조금, 낮은 등록금 등)를 통해 스무 살 무렵부터 독립해 '내 삶'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를 경험하는 서구 젊은이들의 미래, 어떻게 다를까?

각설하고, 여하튼 난 독립하고 싶다. 주거비용이 많이 비싸다고들 하나, 어떻게든 마음먹으면 구할 수 있지 않겠어? 부푼 마음만 안은 채, 별 대책은 없지만 차근차근 독립을 꿈꿔보기로 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실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생전 처음으로 집을 알아봤다. 며칠 동안 인터넷, 동네 부동산 등을 샅샅이 살폈다.

[대안1 전세자금대출] '단독세대주는 만35세 이상이어야' 조건에 OTL

첫 번째로 살펴본 건 근로자·서민 전세자금 대출. 이건 그래도 국민주택기금으로 마련된 거고, 이자도 4%로 저렴했다. 서민대책이라며 대출만 남발하는 정부를 욕했었고 지금도 대출요건완화 등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독립을 하고 싶다는 내 욕망이 너무 큰 것을. 내키지 않아도 기회만 있음 잡아야지.

서울의 원룸 전세가격을 알아보니, 싼 곳도 최소 4000~5000만 원은 있어야겠더라. 강남 쪽은 나와 상관없으니 패스. 내가 살고픈 마포구 서교동, 망원동 쪽은 최소 5000~6000은 있어야 자그마한 단칸방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그 돈이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 믿을 건 대출뿐.

연말까지 어떻게든 쥐어짜서 1천만 원 정도 마련하고, 3천만 원 정도 대출 받으면 서른 전에 자그마한 단칸방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대출이율이 4%니, 3천만 원 빌리면 매달 이자가 10만 원. 이 정도면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겠네, 마음이 들떴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항목.

최근년도 또는 최근 1년간 소득(급여)이 3000만 원이하인 고객
※ 신혼가구(결혼예정자 포함)의 경우 3500만 원이하인 고객

사회복지계통의 NGO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나, 월급이 적은 게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싶었다. 여유 있게 충족되는 조건이었다. 안도하던 찰나,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두 번째 조건.

만 20세 이상인 세대주(만35세 미만 단독세대주 제외) 또는 세대주로 인정되는 고객

그래. 어떻게든 세대주는 될 수 있지. 그런데 만35세 미만 단독세대주는 안 된다? 나는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 단독세대주 밖에는 안 되는 상황. 나이제한에서 딱 걸리는구나. 만35세면, 우리 나이로는 거의 37세까지 1인가구로서는 대출이 어렵다는 얘기다.

나는 향후 2~3년은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내가 유별난 놈이라 그런 걸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통계를 보니, 2010년 서울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만32.2살. 나는 4~5년 후에 결혼하면 평균 정도에 수렴한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결혼 안 한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사는 걸까? 자가는 꿈도 못 꾸고, 전세자금은커녕 싼 이자의 대출도 불가능하다. 나처럼 부모 집에 얹혀살던가, 비싼 월세를 부담해가며 곤궁하게 지내고 있다는 해석 밖에는 안 나온다.

억대, 수천만 원대를 오가는 집값·전세값은 나 같은 이들에겐 '인간계'라기보다 '천상계'의 경지에 다다른 듯 멀게만 느껴지는 액수다. 터무니없는 집값을 내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이겠지만, 그것도 요원해 보인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본 대출마저 막혀 있다. 독립을 꿈꾼 젊은이의 첫 번째 시도, 국민주택기금 대출 활용은 시도도 못해보고 싱겁게 좌절됐다.

[대안2 국민임대주택] 공급 물량도 적고, 젊은 단독세대주에겐 바늘구멍

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의 한 국민임대주택 상담센터에서 청약 접수 중인 모습
 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의 한 국민임대주택 상담센터에서 청약 접수 중인 모습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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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알아본 건 국민임대주택. 지금으로선 자가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고, 안정적인 주거공간만 마련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기분. 그런 면에서 값싸게 제공되는 임대주택은 최적의 조건이었다.

부동산, 자동차 등의 자산이 없고, 소박한 소득의 나로서는 기본적인 기준에서 걸릴 건 없었다. 또한 다행히 국민임대주택은 가장 작은 규모(39제곱미터. 약11,8평)에 한해 단독세대주도 나이제한 없이 지원이 가능했다. 12평 정도면 원룸보다 크고, 혼자살기는 딱 적당한 규모 아닌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급되는 주택 자체가 매우 적었다. 올해 서울 SH공사의 국민임대주택 공급계획을 보니, 39제곱미터 크기의 경우 단 241호에 불과했다. 일개 구나 동도 아니고 서울시 전체에서 241호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우선공급을 제외하면 수는 훨씬 더 줄어들 터. 일반공급으로 여기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게다가 국민임대 모집 공고를 보면, 젊은 1인가구를 위한 대책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일단 국민임대는 우선공급 물량으로 신혼부부, 한부모·다문화가정, 3자녀 세대, 장애인, 고령자, 국가유공자 등에 국한해 마련된 게 많다. 일반공급의 경우에도, 가점(세대주 나이, 부양 가족수, 지자체 거주기간, 청약횟수 등)이 높아야만 당첨이 가능하다. 젊은 단독세대주는 가점 받을 사항이 매우 적다. 서울은 더더욱 치열하다고 한다. 

물론 더 사정이 급하거나 안 좋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들을 위한 주거복지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문제는 이제 소수 특정계층 뿐 아니라, 젊은 1인가구를 포함해 광범위한 사람들이 값싼 국민(공공)임대주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4.8%(OECD 평균은 11.5%)에 불과한 수준으로는 턱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국민임대는 모집공고부터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20~30대 초중반의 서울 단독세대주로서는 당첨가능성도 희박하다. '때늦은 독립'을 위한 해결책, 여기도 없었다.
                     
[대안3 월세] 나가는 순간 엄습할 경제적 궁핍, 지레 겁먹다

정부에서 보증·제공하는 대출이나 임대주택을 활용할 수 없다면? 시장에서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남지 않는다. 실제 살펴보니, 젊은 1인가구를 위한 주거공간은 고가의 민간공급주택밖엔 없었다. 그러나 천상계에 있는 것 같은 집값·전세값은 나 같이 평범한 젊은이들로서는 마련할 방법이 없다. 결국 월세를 사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서울의 원룸 월세 수준은 얼마나 될까? 대강은 들어봤지만, 진지하게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지금 살고 있고, 계속 살고 싶은 마포구 쪽으로 알아봤다. 인터넷과 동네 부동산을 돌아보니, 저렴한 5~6평 원룸의 경우 대략 보증금 500~1000만원에 월세 40~50만 원 정도.

이보다 괜찮은 중간 수준 이상 원룸은 엄두가 안 났고, 매우 열악한 쪽방·반지하는 영 내키지 않았다. 이왕 독립하는데 근사하진 않더라도, 최소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보증금 최대 1천만 원, 월세 최대 50만 원' 범위를 기준으로 삼았다. 

보증금은 어떻게든 연말까지는 마련해 보도록 하자. 더 큰 문제는 월세였다. 매달 50만 원이 빠져나가고, 관리비, 각종 공과금까지 하면 10만 원 쯤은 그냥 추가될 터. 급여수준이 낮거나 평범한 편에 속하는 사람으로선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떠오르는 대학졸업장과 맞바꾼 학자금대출 1350만 원. 일부는 갚았지만 여전히 많은 액수가 남아,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는 이 몹쓸 짐이 또 뇌리를 스쳤다. 그 중 학교에서 빌린 500만 원은 당장 내년부터 상환(3년 동안)해야 하는 실정. 은행대출 분의 이자까지 치면, 내년부턴 매달 17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세에 공과금, 학자금대출 상환까지 매달 기본적으로 약 77만 원이 사라진다. 거기다 밥값, 교통비, 통신비 등 꼭 필요한 생활비를 더 보태고 나면? 저축은커녕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즐길 용돈도 남아나지 않겠다는 곤궁한 느낌이 번뜩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떤 선택이 현명할까. 그리 간이 크지 않은 나로서는, 독립의 낭만을 만끽하는 순간부터 내 일상을 파고들 경제적 궁핍과 그에 따를 정신적 피폐함을 감당하기 두려워졌다. 나이 꽉 찬 캥거루가 돼 자괴감에 빠지더라도, 당장 생명을 위협하듯 급한 일은 아니니 그냥 지금처럼 부모 집에 얹혀 있는 게 더 누가 봐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며 출가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현재 내 기분은 그냥 이 상태로 지내는 게, 악몽이 될게 자명한 독립생활보다 낫겠단 판단이 앞선다.

언제쯤 홀로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 살며 "서울에 집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를 것"이라 말하던 한 지인이 생각난다. 서울에 집 놔두고 독립하고 싶다며 투덜대는 모습, 타지에서 힘겹게 자취하는 친구들이 보면 "참 한가한 소리 한다"고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서울에 (부모)집이라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위안삼고 싶진 않다. 20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서른 넘어서까지 홀로서기는커녕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인 최소한의 주거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건, 아무리 따져 봐도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쁜 짓 안 하고 30여년을 착실하게 산 사람들이, 안락하고 넓은 공간은 아닐지라도 단칸방하나 얻기도 까마득한 게 상식적으로 온당한 상황일까?

이번에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의 주거정책은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살다가 결혼하면 독립'하는 모습을 '정상'으로 가정한 설계에서 못 벗어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결혼 전 독립은 '예외'로 보고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은 상황인 듯하다.

그러나 10년 전보다 초혼연령이 2.5세 가량 늦어졌다. 결혼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결혼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조건만 악화되는 상황에서, 스물 후반·서른 너머의 '캥거루족'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비혼이나 성소수자 등 새로운 형태의 가구 등장도 간과할 수 없다. 주거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해보이나, 변화의 작은 조짐조차 요원해 보인다.

대체 난 언제쯤이면 홀로 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태그:#1인가구, #단독세대주, #국민임대주택, #전세자금대출,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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