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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들을 만나다 보면 "어디 출입하느냐?"는 질문을 늘 받는다. 국회와 정당을 출입하는 정치팀과 달리, 딱히 정기적으로 오가는 출입처라는 곳이 없는 <오마이뉴스> 사회팀 기자에게는 제법 불편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검찰, 경찰 등 사회 각 분야를 두루두루 다닌다"고 제법 그럴싸하게 눙치곤 한다.

요즘에는 과거와 많이 달라져 굳이 출입처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취재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사회변화에 따라 그토록 완고하던 '출입처주의'의 벽도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출입처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얼마 전 확인했다. '폐쇄성'과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출입처주의'라는 유령이 여전히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저희는 출입기자단에게만 자료를 배포합니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2010년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2010년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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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는 한 선배 기자와 함께 국회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와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일 한 후보자의 과거 부동산 거래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난 2006년 '서울 성동구 행당동 40-40번지' 땅을 팔았는데 매매대금이 약 610만 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부가 발표한 공시지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었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하는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한 후보자가 소유했던 '행당동 40-40번지'의 공시지가는 1㎡당 211만 원이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지분이 12.28㎡이기 때문에 공시지가대로 팔았다면 매매대금은 2천591여만 원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공시지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자신의 땅을 팔았다고 신고했다. '공시지가 이하로 거래되지 않는다'는 통설도 기자의 의심을 부추겼다.

결국 한 후보자가 양도소득세를 탈루하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론을 듣기 위해 한 후보자의 대언론창구인 대검 대변인실로 전화를 걸었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인데요, 한 후보자의 행당동 땅 매매와 관련해서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저희는 유선으로 해명하지 않습니다. 관련내용을 인사청문회 담당자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대변인에게 전달해 검토하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답변을 받을 수 있나요?"
"지금은 근무시간이 끝나서 답변은 내일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단 '한상대 검찰총장, 다운계약서-세금탈루 의혹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한 뒤 오후 7시께 대검 대변인실에서 알려준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냈다. 다음날 오전 답변서가 도착하면 별도의 해명기사를 작성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대검은 이 기사를 출고한 25일 오전까지 기자가 보낸 이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20일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 '행당동 땅 다운계약서-세금탈루 의혹' 기사와 같은 내용이 다음날(21일) 일부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검 대변인실에서도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래서 기자는 그날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 대검 대변인실에 전화를 걸어 해명자료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희는 이미 대검 출입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했는데요."
"그럼 저희는 자료를 받을 수 없는 건가요?"
"저희는 출입기자단에게만 자료를 배포합니다. 그 외 기자들에게는 배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강변하는 대검 대변인실 관계자에게 기자가 이렇게 반박했다.

"제가 무슨 비밀문서를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언론보도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판단해 해명자료를 배포한 것이라면 그런 자료는 널리 배포해서 한 후보자의 해명이 잘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게 한 후보에게도 좋지 않나요?"

"혹시 저한테 자료를 달라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대검 대변인실은 막무가내였다. 기자가 계속 따지자 "그럼 출입기자단 간사에게 전화해서 상의해보라"고 말했다. 출입기자단에서 '허락'하면 자료를 주겠다는 투였다. 아니면 출입기자단에게 직접 자료를 받으라는 '친절한 충고'였는지도 모른다.

대검 대변인실에서 알려준 출입기자단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참으로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출입기자단은 국방부와 대검에 남아 있는 걸로 아는데요, 출입기자단은 일종의 카르텔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배포된 자료를 외부로 유출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출입기자단 간사는 종합일간지 중에서 진보적인 논조를 편다는 K신문 소속의 L기자였다. 그런 신문에서 활동하는 기자가 '폐쇄적 출입처주의'를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 아주 놀라웠다. L기자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일반 국민이나 개별 기자들이 대검에 관련자료를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기자단이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자료를 줄지 안줄지는 대검에서 판단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묻지도 않은 '대검 출입 8년' 경력을 언급했던 L기자는 전화통화 말미에 이런 말을 던져 기자의 심기를 흐트려 놓았다.

"그런데 저한테 자료를 달라는 것은 아니죠?"

아무리 사정해도 자료를 줄 수 없다는 투였다. 할 수 없이 전화를 끊고 다시 대검 대변인실에 전화해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당신이 기자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기자가 아닐 경우) 이걸 악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검 대변인실이 출입기자단만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는 국민들도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대검은 오래 전 퇴장했어야 할 '출입처주의'에 편승해 끝까지 자료공개를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의 불통주의는 여기에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특히 출입기자단 간사가 보인 반응은 기자를 더욱 씁쓸하게 했다. 그가 가장 진보적인 신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지난 시대의 악습인 '출입처주의'를 당연한 제도인 것처럼 말하는 그 당당함 때문이다.


#한상대#출입처주의#대검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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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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