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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지난해 9월 분당을 시작으로 일산 광화문 등 9곳에 스마트워킹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분당 본사 스마트워크센터.
 KT는 지난해 9월 분당을 시작으로 일산 광화문 등 9곳에 스마트워킹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분당 본사 스마트워크센터.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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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니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늘어나고 운동도 할 수 있어 좋아요."

KT 분당 본사에서 일하는 김정평(40) 차장은 지난 6월 이사를 결심했다. 20평짜리 분당 집 전세 보증금을 5천만 원이나 올려달라고 해 일산에 사둔 집으로 다시 옮기기로 한 것이다. 2년 전엔 24평짜리 일산 집 전세 보증금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오른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 4시간을 각오하면서까지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건 KT에서 지난해 9월부터 도입한 스마트워크(원격근무) 제도 덕분이었다. 김 차장은 1주일에 2~3일은 KT 고양지사에 있는 스마트워킹센터로 출근한다. 일산 백석동 집에서 분당 정자동 회사까지 광역버스로 2시간 넘게 걸리지만 이곳은 걸어서 15분 거리다.

스마트워크 도입 11개월... "출퇴근 시간 줄고 업무 집중도 높아져"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KT 본사 스마트워킹센터에서 만난 안아무개 차장은 김 차장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근무지는 서울 세종로 광화문지사지만 올해 1월부터 1주일에 한두 번은 분당 집에서 가까운 이곳으로 출근한다. 역시 왕복 3시간 넘게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건 물론 업무 집중도도 높아져 앞으로 원격 근무 시간을 더 늘릴 계획이다.

"광화문으로 출근할 때는 아침에 테이크아웃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기 바쁜데 이곳은 집에서 11분 거리여서 오전 업무 집중도가 올라가요. 동료들도 돌아가며 원격근무를 하는데 소통에 큰 문제 없고 오히려 본사 연관 부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지난해 9월 KT에서 스마트워크 제도를 도입한 뒤 김정평 차장이나 안 차장 같은 원격 근무자는 한 달 3천~4천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80% 정도는 재택근무지만 전국 9곳에 마련된 스마트워킹센터를 이용하는 직원도 20%에 이른다. 센터를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9곳을 통틀어 200석 정도에 불과해 자리 선점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실제 이날 오전 KT 본사 1층에 마련된 스마트워킹센터에는 빈 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처음 문을 연 1센터에 있는 19석도 모자라 40석짜리 2센터도 따로 만들었다.

2센터는 좌석들이 칸막이로 구분돼 평범한 독서실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지만 가장 처음 만든 1센터는 시범 케이스 답게 공간을 입체적으로 디자인했다. 19개 좌석 외에 화상회의실과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일할 수 있는 '콰이어트 룸'까지 갖췄다.

굳이 콰이어트 룸이 아니더라도 서로 모르는 직원들끼리 일하다 보니 간단한 전화 통화 외에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어 독서실 같이 조용한 분위기였다.

사진은 지난 19일 분당 본사 스마트워크센터2.
 사진은 지난 19일 분당 본사 스마트워크센터2.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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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고과 부담에 상급자부터 '원격 근무'

시범사업 초기 한 달 100명도 안 됐던 원격근무 이용자도 지난 연말 월 1500명, 4월부터는 월 3000~4000명으로 급증했다. 회사에서 지위고하를 안 따지고 원격근무가 가능한 모든 임직원에게 참여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부터 사내 스마트워크 사업을 진행해온 박숙희 인재경영실 차장 역시 1주일에 이틀 정도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집이 회사에서 가깝지만 '내가 해보지 않고 어떻게 남에게 권할 수 있느냐'는 솔선수범 원칙 때문이다.

박숙희 차장은 "스마트워크 도입 초기 제안 사항 가운데 상급자부터 먼저 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면서 "팀장급과 상무급 임원부터 먼저 하게 한 뒤로 임직원들의 원격근무 참여도가 급속하게 늘었다"고 밝혔다.

박 차장 상사인 정찬웅 팀장도 마찬가지. 대전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아빠'였던 정 팀장은 덕분에 1주일 가운데 2~3일은 대전에서 재택 근무와 센터 근무를 번갈아하고 있다.

남자 직원들은 재택근무보다는 센터 근무를 선호하는 편이다. 실제 이날 스마트워킹 센터엔 남자직원이 여자직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 팀장은 "남자 직원들의 경우 집에서 근무하다 보면 자녀들이나 이웃들이 실직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가까운 센터를 이용한다"면서 "앞으로 날씨가 더워지면 답답한 집보다 센터 근무를 더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무 집중도-생산성 15% 늘고 스트레스 20% 줄어

KT에서 지난 3월 원격근무자 505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의견이 70.4%, 보통이 22.7%였고 불만은 6.9%에 그쳤다. 만족 이유(복수응답)로는 77.9%가 '출퇴근 피로도 감소', 55.3%가 '여유시간 확보'라고 답해 출퇴근 시간 절약이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42.9%가 업무 집중도 향상을, 19.3%가 스트레스 감소를 꼽았다. 실제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보다 업무 집중도와 생산성은 15% 정도 증가했고 스트레스는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KT에서 지난 3월 스마트워크(원격근무) 대상자 설문조사 결과
 KT에서 지난 3월 스마트워크(원격근무) 대상자 설문조사 결과
ⓒ 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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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전 직원 3만2000명 직무를 분석해 사무실 근무가 불가피한 인력 1만2000명, 이미 영업, AS 등으로 모바일 워킹(이동 업무)를 하고 있는 1만3000명을 제외한 4000~5000명 정도를 원격근무 대상자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여직원 2400명 정도를 직무 형태와 상관없이 임신육아 그룹으로 분류했다. 시범사업 초기에는 참여자가 적었지만 원격근무가 가능하도록 근무 유형을 바꿔주면서 지금은 월 400~500명 정도로 늘었다.

또 이 가운데 망설이는 그룹을 대상으로 '육아 케어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1차로 7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부터 2개월 동안 실시했는데 지난 5월 설문조사에선 99%가 보통 이상의 만족도를 보였다. 7월 시작한 2차 프로그램엔 순수 신청자 100명이 참여했다. 덕분에 젖먹이 아기를 둔 한 여직원은 주 3회 재택근무를 하면서 다시 모유 수유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숙희 차장은 "처음에 당신은 육아 케어 대상이다, 월 8회 이상 원격 근무하도록 배려하겠다고 했더니 인사 고과 불이익을 걱정하거나 남자 직원들과 경쟁하기 바쁘다며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상급자들에게 인사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젊은 직원들 원격근무 선호... CEO 의지 맞아떨어져

KT는 애초 지난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마치려고 했으나 참여가 저조해 올해 3월 말까지 시범기간을 연장한 뒤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워크 제도를 도입했다. KT가 스마트워크 도입 1년도 안 돼 이 정도 성과라도 거둔 데는 원격 근무를 선호하는 젊은 직원들의 이해와 정부 정책에 따라 스마트워크를 확산시키려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오는 2015년까지 스마트워크 비율을 현재 1% 수준에서 30%로 늘리겠다는 공언했다

스마트워크 도입 1년도 안 된 걸음마 단계인 만큼 KT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박숙희 차장은 "원격근무 역사가 15년 된 BT(브리티시텔레콤) 컨설팅을 받아 이제 걸음마 단계에 KT에 얹히려 하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스마트워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아래 기업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나마 KT는 원격근무에 필요한 ICT(정보통신기술) 기반이 잘 갖춰져 있고 스마트워킹센터에 필요한 건물 자산이 충분한 게 큰 도움이 됐다. KT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집 안에 업무 공간이 부족한 우리 현실과 재택근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감안해 스마트워킹센터도 지속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다만 당장 원격근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겐 불이익으로 비칠 수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에 KT에선 사무실 근무자의 경우 '유연근무제'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거나 이들의 업무를 분석해 사무실 밖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나 제도, 인프라를 갖추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또 영업이나 AS를 담당하는 이동 근무자들에겐 아이패드와 이동 업무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과 접속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박 차장은 "스마트워크를 장기적으로 정착시키려면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가치 있는 제도로 인식시켜야 한다"면서 "스마트워크 내부 효용을 분석하는 도구를 개발해 10월 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그:#스마트워크, #KT, #스마트워킹센터, #원격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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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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