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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째 간직하고 있는 5만원권 지폐 두장
 일주일째 간직하고 있는 5만원권 지폐 두장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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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벌써 일주일째 내 점퍼 안쪽 주머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돈을 써야 하는 건지,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몰라서입니다.

아이들이 내게 용돈을 줬습니다

일주일 전, 정확히 어떤 일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평소와 같이 퇴근 후 술을 한잔 하고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빠, 나 좀 잠깐 보면 안될까?"

고3인 딸아이가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부릅니다. '나 지금 고3이잖아. 그런데 아빠라는 사람이 공부하는데 도움은 못줄 망정 만날 술만 마시고 오면 어떻게 하냐!' 딸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면서 순간 머리를 스쳐간 생각입니다.

"잠깐 여기 기다리고 있어. 동생 불러올게."

'헐~ 제대로 걸렸구나. 지 혼자 내게 잔소리를 퍼부으면 위력이 약할 것 같으니까, 이제 고1인 동생까지 불러오겠다고 하는구나.'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앞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단히 훈계를 듣겠다' 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녀석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아들 녀석도 들어오고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아빠, 직장생활 하면서 힘들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하는 줄은 알겠는데, 몸 생각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서 이거 우리가 아빠한테 주는건데 받아!"

녀석들이 내게 건넨 것은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씩, 모두 10만 원. 녀석들의 말투에 기가 죽은 나는 사양하지도 못하고 물었습니다.

"이 돈을 왜 날 주는데?"
"실은 이번 학기 끝나면서 우리 둘이 각각 장학금을 50만 원씩 받았어. 그래서 엄마 일부 드리고, 우리 용돈 챙기고 용돈으로 아빠에게 10만 원을 주는거야."

참고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받은 세뱃돈이나 장학금은 녀석들의 몫으로 관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 녀석은 역시 남자라 내게 용돈을 주고는 얼른 제 방으로 건너갔는데, 제 엄마를 닮은 딸은 한마디 더 합니다.

"아빠 우리가 준 용돈을 어떻게 써도 상관없지만, 술 마시거나 담배를 사면 안 된다."
"두 부녀가 뭔 이야기를 그렇게 다정스럽게 하냐?"

반쯤 열린 문을 밀며 집사람이 들어옵니다. 순간 딸아이는 내게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갑니다. 이 상황에서 집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용돈 준게 언젠데, 아이들에게 그 돈을 받냐, 이리 내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응, 다음주에 휴가 가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 좀 하느라고."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집안의 모든 경제권을 집사람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물론 내게 용돈을 주는 것도 아내의 권한입니다.

"나 돈 좀 주지?"라고 말할 때마다 용돈 준 지가 언젠데 벌써 다 썼냐는 둥,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당신 알기나 하느냐는 둥 온갖 잔소리를 다해대며 달라는 금액보다 늘 적게 줍니다.

이 돈, 어떻게 써야 하나요?

지난해 6살 정도 된 친구의 아들이 아빠를 찾아 사무실로 왔는데, 아이의 행동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에게 1만 원을 쥐어주며, "아빠 말 잘 듣고 맛있는 거 사 먹어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왜 나한테 이 돈을 주는데요?"
"어, 그건 말이지. 네 아빠께서 옛날에 아저씨 아들이 어렸을 때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녀석은 내가 준 돈을 던지듯 건네며 "그럼 이 돈 우리 아빠에게 주세요!"

아이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용돈을 거부하는데 부끄럽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용돈을 받아버린 겁니다. 꼭 딸애가 용돈의 용도를 말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받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꼬박 일주일을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점퍼 안쪽 깊숙이 넣어 다니고는 있지만, 아마도 한참 더 시간을 쓴 뒤에 이 녀석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5만 원권 모두를 1만 원짜리로 바꿔서 폼 나게 용돈으로 되돌려 줘야할까 생각 중입니다.


#신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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