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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 출신인 김진숙 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185일차(7월 9일 기준). 이를 두고 '여자의 몸'으로 극한의 외로운 투쟁을 전개한다고들 얘기했다. 모두가 한 여성 노동운동가의 입신에 주목하고 칭송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잠시 딴생각을 했다.

'그렇게나 오래 집을 비워도 괜찮은 거면 결혼을 안 했거나 했어도 아이가 없거나 아니면 친정엄마가 옆에 있나 보다.'

갈까 말까... 이틀치 국을 끓여놓고 집을 나섰다

얼추 적중. 52세 김진숙은 비혼이다. 그 사실을 알려준 친구가 덧붙인다. 아마 김진숙 정도의 인물이 남자였으면 그의 옆에는 헌신하는 여성이 필시 있지 않았겠느냐고.

지난주 김대리의 대출광고 스팸문자를 압도한 문자 메시지가 있었으니, '희망버스 타자'는 불온한 속삭임이었다. 또 다른 '여자의 몸'은 고민했다. 남편 1인 자식 2인의 삼시세끼 보급투쟁을 날마다 치르는 전사, 하필 생리 주기가 딱 걸린 생물학적 존재에게 1박2일 부산행은 번잡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갈까 말까.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이 커져갔다. 뭘까. 나를 흔드는 이 느낌, '심장의 나태'를 집단적으로 일깨우는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지상에 발 묶인 여성은 고공에 매달린 여성을 연민하고 동경했다. 이틀치 국을 끓여놓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8일 오후 1시. 시청 앞 재능노조 농성장. 희망버스 집결지다. 이주노동자 소모뚜씨도, 게이활동가 김조광수씨도 만났다. 나는 노들장애인야학과 동행했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 등 소수자가 타는 차에 배정됐다. 일명 무지개버스 16호차. 바퀴 달린 동료들을 보자 궁금했다. 저 덩치 큰 휠체어를 어떻게 싣고 간담.

잠시 후 대형트럭이 왔다. 탑승 시작. 인도에서 차도로 전동휠체어가 '덜커덩' 낙하했다. 활동보조인 세 사람이 장애인을 안아서 버스에 앉혔다. 1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 그것을 또 건장한 청년들이 들어서 트럭에 차곡차곡 실었다. 그러니까 장애인의 부산 나들이는 '외출'이 아니라 '이사'였다. 우리 차는 오후 2시 반이 돼서야 출발했다.

"지금 상황이 슬프고 안타깝기보다는 많이 설렙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합시다." (이은정 천주교인권연대 활동가)
"전자주민증 반대에 사람들이 관심이 적어서 저희가 외롭게 싸우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외로운 투쟁을 하는 김진숙씨에게 힘을 보태드리려고 갑니다."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
"어젯밤 김진숙씨가 쓴 <소금꽃나무>를 읽다가 너무 슬퍼서 그냥 덮었어요. 막상 희망버스 타니까 MT가는 기분이 들고 좋네요." (정민경 진보넷 활동가)
"만 명이 모이는 그 자체가 울컥합니다. 연대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구속노동자 후원회 활동가)

1차 희망버스를 탔는데 너무 재밌어서 또 신청했다는 희망버스 단골손님, 만날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던 고등학교 1학년 조카와 함께 간다는 개념 이모, 희망버스 타기 위해 며칠 야근도 안 하고 가족에게 잘했다는 워킹맘,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에 간다는 학생, 내가 힘을 얻고 싶어서 간다는 시민 등 제각각 사연을 밝혔다. 1983년 하반신 마비로 중도장애인이 된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20년 만에 고속버스 타고 부산에 간다'는 벅찬 소회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빗속 행진, 이미 잔치는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10일 오후 부산 중구 태종로 앞에서 열린 '2차 희망버스 마무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찾사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10일 오후 부산 중구 태종로 앞에서 열린 '2차 희망버스 마무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찾사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유성호

오후 7시 30분 부산역 도착. 폭우가 쏟아진다. 광장을 메운 1만여 명의 함성. 우산과 깃발이 춤춘다.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 이미 잔치는 시작됐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서는 부산지역 장애인단체에서 준비한 천막을 쳤다. 임시대피소. 뒤늦게야 트럭이 도착하고 휠체어를 내렸다. 주인을 찾은 휠체어. 우비를 덧씌운다. 활동보조인이 함께 선다. 광장으로 한 대씩 나아갔다.

존재와 존재가 일사불란하게 분리-장착되는 장애인 투쟁이 문득 신비롭다. 무대 조명, 가로등 불빛, 형형색색 우비가 빗물 웅덩이에 반사되어 온통 번들거린다. 우주정거장처럼 낯선 공간. 김진숙과 결합하기 위해 모인 거대한 군중. 희망버스 사건 자체가 SF적이다. 돈만 아는 저질들에겐 스릴러 공포물일지도 모를 일.

오후 9시 40분 행진 시작. 문정현 신부, 백기완 선생이 앞장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휠체어 부대가 뒤따랐다. 그림 좋다. 시민 만여 명이 영도대교를 건너 걸었다. 신발이 첨벙첨벙 빗물 위를 떠갔다. 여기가 부산인지 서울인지. 2008년인지 2011년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무렵 바다가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 조선소를 700미터 앞둔 지점. 봉래로터리 8차선 도로에는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 차벽을 쌓고 기다렸다. 5분 거리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으나 다가가지 못한다. 인도 쪽 일부 참가자는 생수병을 던지고 두드려가며 끈질기게 진입을 시도했다. 건물 옥상에는 카메라 방송기자 20여 명이 매달려 역사를 기록했다.

"힘내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새벽 1시 40분.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 통화가 성사됐다.

"여러분을 한 달 동안 목이 메도록 기다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게 두려운가 봅니다. 힘내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대형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생생한 목소리.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권위 있는 음성. 짧은 통화가 침묵의 밤을 열어 밝힌다. 그 와중에 수건으로 찜질방 양머리를 한 일군의 젊은 친구들이 애교 돋는 구호로 응답한다. "우윳빛깔 김진숙~ 사랑해요 김진숙~"

그녀의 말이 더 나올 것 같은 스피커에서 귀를 떼지 못하는데 <직녀에게>가 흐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운명적인 전언. 20년 전 노조에서 간부수련회를 갔다. 이 노래를 좋아하던 나는 악보를 수첩에 지니고 다녔다. 기타를 든 그가 연주해 주었다. 너무 좋은 곡이라면서 밤새 연습하고 불렀다. 그날도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날 그 노래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연을 점지하는 노래. <직녀에게>를 들으며 나는 김진숙과 영혼 층위에서 꽁꽁 묶였다고 느꼈다.

빗물 마른자리엔 눈물이, 눈물 마른자리엔 최루액이

새벽 2시 30분. 오작교와 노둣돌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희망벽돌쌓기가 시작됐다. 뒤에서부터 벽돌과 모래주머니를 든 행렬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벽돌을 나르려고 뒤로 갔다. "우리 줄 서서 전달합시다!" 누군가의 말에 징검다리처럼 대오를 정비했다.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옆으로 옆으로 벽돌을 날랐다. 갑자기 "뒤로 빠져" 고함이 들린다. 하얀 물과 파란 물이 번갈아 분사. 최루액 한 방에 시민들은 일순간 뒤로 밀렸다. "천천히 천천히" 구호를 외치면서 후퇴. 빗물이 마른자리에 눈물이. 눈물이 지난 자리에 최루액이. 얼굴이 벌개져 너도나도 철퍼덕 주저앉았다.

 10일 오전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입구에서 경찰 여러명이 집회 참가자의 목덜미와 팔을 잡고 꼼짝못하게 한 뒤, 얼굴을 향해 최루액(캡사이신 성분)을 조준 발사하고 있다.
10일 오전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입구에서 경찰 여러명이 집회 참가자의 목덜미와 팔을 잡고 꼼짝못하게 한 뒤, 얼굴을 향해 최루액(캡사이신 성분)을 조준 발사하고 있다. ⓒ 권우성

소금꽃나무 효과, 3차 희망버스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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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버스

2차 희망버스는 오후 3시 30분 해산했다. 3차 희망버스를 기약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했다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다. 나도 그랬다.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의 삶을 통과했고 나는 감염됐다.

삶에서 집중해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홀가분함. 그리고 고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한 여성의 몸은 귀가와 동시에 생생한 집 안의 폐허를 목도했다. 날씨가 더워서 국은 다 상해 버렸다. 바닥엔 머리카락과 먼지가 엉켰다. 건조대 빨래는 말라비틀어질 지경이다.

그런데 시지포스의 형벌 같은 이 사태가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희망 없이 삶을 사랑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는 그녀에게 배운 소금꽃나무 효과다.

덧붙이는 글 | 수유너머 은유 선생님의 기고글입니다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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