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로 논란이 일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이를 규탄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마을로 들어가는 3개 입구에 전투경찰 300여 명과 사복경찰 50여 명 배치된 상태며, 주민들과 지역 정치인들이 몸에 쇠사슬을 묶고 농성을 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도교 등 5개 종단 소속 단체들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기지 건설 중단과 공권력 철수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해군기지 건설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미국의 진출과 중국의 경계로 인한 군사적 충돌 위협은 물론 경제적 손실도 우려된다, 제주도는 제2의 오키나와, 진주만이 될 것이 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4년 동안 주민들과 종교인들은 지속적으로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였는데도 오히려 주민들과 이들을 돕던 사람들을 구속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며 "해군기지 거설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인 행위에 5대 종단 종교인들은 힘을 모아 강정마을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종교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 계속된다"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주경 스님은 기자회견에서 "안보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자연유산을 파괴하고 국민을 적으로 삼고 있다"며 "종교인들이 국가의 사업에 나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나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경 스님은 "국가 권력에 의해 의사를 표현하는 자유가 제한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어 종교인들이 나서는 것"이라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펼치다 구속된 사람들을 즉각 석방하고 강정마을에 투입된 공권력을 즉각 철수 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불교 환경연대 대표 강혜윤 교무는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는 국책사업이고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제주도만의 지역적 사안이 아닌 전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지켰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 그 유치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논란을 지적한 것.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유치는 지난 2007년 4월, 19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87명이 참석한 마을총회에서 투표 없이 참석자들의 박수로 결정됐다. 이는 '120명 이상이 모여야 총회를 열 수 있다'는 마을 향약을 위반한 것으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강정마을 주민들은 유치총회를 열었던 마을 회장을 해임했으며, 마을회는 자체 주민투표를 개최했다. 72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94%에 해당하는 680명이 유치 반대 의사를 표했다.
"강정마을 경찰투입, 제주 4·3항쟁 연상"
이에 앞서 오전 10시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이하 대책위)도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마을 진입로 봉쇄를 규탄했다. 대책위에는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시민평화포럼 등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며칠 전 조현오 경찰청장이 서귀포경찰서 방문에서 해군기지건설을 저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불법행위라고 강조하며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독촉했다"며 "과거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강제진압을 지휘하던 4·3항쟁이 절로 연상되는 대목"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큰 생채기인 4·3이라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강정에서 다시 재연되지 않을까 깊이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조 청장은 지난 21일 제주도를 방문해 헬기로 강정마을을 시찰하고 "불법행위에 단호하게 법 집행하라"고 말하는 등 공권력 투입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항의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시위로 조 청장이 탄 버스가 7분여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책위는 이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공권력 투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강정마을이 공권력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도록 우근민 지사가 즉각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대책위는 오는 8월 6일 오후 5시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촉구 전국민 행동'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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