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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외출이 조금 길어질 뿐이잖아! 한 번 해보지 뭐.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가족들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8박 9일간의 해외여행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모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그럴수록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나 대신 집안일을 도맡다시피 할 딸의 고생이었다. 그러기에 딸에게 좀 많이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고1 딸은 내게 선뜻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틈틈이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딸의 말이 흐뭇하게 떠오르곤 했다. 그와 함께 지난해 2박 3일 동안 집을 비웠을 때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루구후 호수 새벽풍경이다. 루구후는 해발 3천 미터 쯤에 위치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긴팔 옷을 입어야 할만큼 서늘했다. 한국은 35도를 웃돈다는 누군가의 말에 더운날 나대신 가족들 밥해 먹일 딸 생각이 먼저 들었다.-2011.7.21.운남성과 사천성 경계 지점에서
 루구후 호수 새벽풍경이다. 루구후는 해발 3천 미터 쯤에 위치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긴팔 옷을 입어야 할만큼 서늘했다. 한국은 35도를 웃돈다는 누군가의 말에 더운날 나대신 가족들 밥해 먹일 딸 생각이 먼저 들었다.-2011.7.21.운남성과 사천성 경계 지점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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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마지막 주 금요일, 세살 터울의 친정 언니와 친정에 갔다. 처음에는 딸을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남편은 예약된 손님 때문에 가게를 닫을 수 없고, 아들도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터라 어머니께서 오며가며 둘의 밥을 챙기겠노라 하셨기에 딸과 오붓한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딸도 외갓집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떠날 날 이틀을 앞둔 날 별다른 이유 없이 가지 않겠다고 했고 몇 번의 설득에도 끝내 가지 않겠노라해 결국 나만 가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 없을 때 고생 실컷 해 봐야 엄마 힘든 줄 알지!'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고, 한편으론 딸이 있어 아빠와 오빠를 챙길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00이랑 00와 함께 있어. 엄마 없으니까 여러모로 힘이 들긴 드네. 엄마는 오늘밤에 정말 오시나?"

그럼 그렇지!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만 해도 별일 없다던 딸은 이틀 밤이 지난 일요일 낮에 전화를 하니 반 죽는 소릴 한다. 말인즉 어머님 댁에 손님이 느닷없이 왔고 며칠째 어머님 댁에 와 있던 시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잤던 것, 게다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둘까지 놀러와 밥을 해먹였다나!

설마 어머님께서 어린 손녀에게 시동생 밥까지 해먹이게 했으랴. 저 좋다고 놀러오라고 한 친구 밥 좀 해먹였다고 무슨 엄살이야싶어 딸의 엄살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언제 올 거냐고, 일요일 밤에는 분명히 오느냐고 거듭 묻는 딸이 안쓰럽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면 빨리 집에 올 것을 재촉하는가 싶어서.

그리고 일요일 늦은 밤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딸의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보며 '날도 더운데 식구들 밥 해 먹인다고 고생을 하긴 했나보다'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몰아쳤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딸에게 수상한 전화가 오기 전까지 내가 없는 동안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 채.

친정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인 화요일 오전 10시쯤, 딸의 핸드폰이 울렸다. 딸은 예전과 달리 내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사춘기 소녀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얼마 후 그런 일이 중복되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캐물으니 친정에서 전화했을 때 함께 있다던 친구의 고모 전화였다.

딸은 그때야 그간의 일을 털어 놓았다. 내가 집을 떠나던 날 3일 전에 친구 둘이 가출을 했고 그 중 딸과 친한 한 아이가 딸에게 그 사실을 말해 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의 친정 나들이를 느닷없이 포기하고 내가 집을 나가는 순간 가출하여 거리를 떠도는 둘에게 전화하여 우리 집에 와서 자게 하면서 집에 들어갈 것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 그리고 내가 언제 집에 돌아오는지 확인했던 이유는 두 친구의 잠자리 때문이었던 것.

해외 여행 둘째날 본 중국 소수민족의 의상과 풍습을 볼 수 있는 공연. 2011.7.17쿤밍(곤명)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해외 여행 둘째날 본 중국 소수민족의 의상과 풍습을 볼 수 있는 공연. 2011.7.17쿤밍(곤명)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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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아이의 설득으로 집에 들어갔지만, 한 친구는 딸과의 약속도 어긴 채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거고 가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 친구의 고모가 1년 전 자주 어울렸던 딸의 전화번호를 다른 아이들에게 알아내 전화를 했던 것. 난 일단 우리 집에 와서 지내라는 문자를 보내게 한 다음 딸과 친구 둘의 가출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길 했다.

둘은 가출 첫날에는 평소 자주 가던 학교 인근 분식집 들마루에서 쪼그리고, 둘째 날에는 인근에 있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잤단다. 게다가 가출 당시 3천원만 기지고 있어서 이틀을 거의 굶다시피 하고 딸의 전화를 받고 우리 집에 올 차비조차 없어서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천 원씩 얻어 왔대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얘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너네는 가출한 애들이 성매매 등에 팔린다는 것도 못 들어봤니? 하늘이 도왔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그럼 엄마가 집에 오게 해서 달래서 집으로 들어가게 했을 것 아냐?"
"00이는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그래서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지."

아이는 내 말에 이처럼 대답했다. 맞다. 그 중 한 아이는 비교적 순진한 편이지만 한 아이는 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소문이 좋지 않은 아이의 행동거지를 아는 딸이 중1때 친하게 지냈던 그 친구를 2학년 때부터 멀리했던 것. 그럼에도 저와 친한 친구와 가출했음에 선뜻 그 아이까지 받아들여 집에 들어가기를 설득했던 것.

"엄마가 무조건 00이(친구B)를 안 좋아 하니? 00이가 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리에서 떠돌다가 나쁜 길로 빠지게 할 순 없잖니. 네가 엄마를 잘못 생각한 거야. 네가 엄마에게 상의했으면 엄마는 협조를 했을거야!"라며 한 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는 그 아이에게 재차 문자를 보내라고 재촉했다.

"말도 마. 11시 좀 못 되어서 아이들이 왔기에 아무래도 뭣 좀 먹여야 할 것 같고 나도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어 치킨 두 마리 시켰거든, 그런데 며칠 굶은 것처럼 어찌나 허겁지겁 먹어대던지 우린 한쪽씩 밖에 못 먹었다니까! 옆에 누가 있는지 쳐다볼 새도 없이 먹더라고."

그날 밤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다. 딸은 아빠에게 아이들이 늦은 밤에 왔다는 사실을 자기가 말하기 전에 엄마에게 먼저 말하지 말 것을  거듭 부탁, 어떻게든지 제 선에서 제 친구들을 설득해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나.

지난해 7월 마지막 주 친정에서 찍은 친정의 참깨꽃. 참깨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딸이 생각이 깊다는 것도 실감했던 친정나들이였다.-2010.7.25. 김제 친정 참깨밭에서
 지난해 7월 마지막 주 친정에서 찍은 친정의 참깨꽃. 참깨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딸이 생각이 깊다는 것도 실감했던 친정나들이였다.-2010.7.25. 김제 친정 참깨밭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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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00이(친구A) 말이야.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지가 엄마 싫다고 나왔으면서 걸핏하면 우는 거야. 밥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TV보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 이러다가 정말 고아 되면 어떡해 해?' 하면서 얼마나 울어대는지 삼일동안 달래고 설득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그럴 거면 뭐 하러 집을 나와. 안 그래? 더 웃긴 것은 그렇게 통곡을 하면서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거야"

친구 A가 가출한 이유는 엄마와 다투면서.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학원을 몇 차례 빼먹자 화난 엄마가 홧김에 "네 맘대로 하려면 나가서 네 맘대로 살아라!"고 했는데 그 곰탱이가 보란 듯이 가출을 하고 만 것. 그런데 그 엄마는 한술 더 떠 해가 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집에 안 들어가겠노라 버티는 딸에게 화가 나 딸의 핸드폰을 정지시켜버렸고 그러자 정말 엄마가 자기를 버린 것으로 알고 그렇게 펑펑 울었던 것.

B의 가출 원인은,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동생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시피해도 아빠와 할머니는 동생만 위할 뿐 자기는 몰라라 한다며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 여하간 딸의 보살핌(?)과 설득 덕분에 친구A는 우리 집에서 이틀을 잔 후 집으로 들어갔고, 딸의 도움 덕분에 친구B도 우리 집에서 이틀을 더 잔 후 집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이의 지갑에서 용돈을 빼고 내가 아끼는 옷을 훔쳐서.

"너도 00이처럼 엄마하고 싸우고 나면 가출하고 싶고 그렇지?"
"내가 집을 왜 나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데. 나는 절대 안 나가. 집에서 싸울 거야."

몇 차례 물어도 딸은 이처럼 대답을 한다. 그럼에도 딸 주변에 가출을 감행했던 아이들이 있음에, 딸이 제 성질 못 이겨 팩! 화를 낸 후 제방으로 올라가고 나면 홧김에 가출이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제방에서 잠든 것을 확인하거나 현관에 놓인 신발을 확인하곤 한다. 여하간 지난 여름 아이의 대견함은 나를 종종 딸 자랑으로 정신 못 차리는 팔불출로 만들곤 했다.

이런  딸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선택한 주부로서는 길다고 할 수 있는 8박 9일간의 여행을 맘 편히 떠나라며 집안일을 선뜻 자청,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딸이 학교에 간 후인 16일 오전 9시에 집을 떠나 꼭 열흘째인 25일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왔다. 딸에 대한 믿음도 있고 시댁이 가까운지라 여행 8일차까지 집이나 가족들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중국어 열심히 공부해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오면 좋겠다는 생각, 지금쯤 저녁밥을 먹고 있겠구나 등 정도의 생각은 가끔 했지만.

딸은, 여행에서 돌아와 배낭을 미처 풀지 않고 둔 엄마의 배낭을 풀어 세탁기에 돌리고 비 오기 직전에 밖에서 걷어 들여 잘 마르도록 널었다.
 딸은, 여행에서 돌아와 배낭을 미처 풀지 않고 둔 엄마의 배낭을 풀어 세탁기에 돌리고 비 오기 직전에 밖에서 걷어 들여 잘 마르도록 널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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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으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힘들었지?"
"아니 괜찮았는데? 아빠가 설거지 다 해주셨거든. 아빠가 계란찜 해주셨는데 정말 맛있다"
"그래? 엄마 없어도 다들 충분히 잘 살겠네? 엄마 다시 여행가고 싶은데 내친김에 시골에 며칠 있다 올까?"
"아니 그래도 당분간 아무 데도 가지마.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네. 엄마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줄 몰랐어. 엄마가 정말 반갑네. 엄마 오니까 정말 좋네."

어제 오늘, 내가 없는 사이 딸이 참 많이 컸음을, 딸의 생각이 많이 여물어졌음을 자주 실감했다. 제 딴에는 이웃집 밭에서 파까지 얻어다 계란말이를 해먹이거나 시장까지 봐다 해먹였단다. 반찬이 마땅하지 않아 있는 계란은 삶아 장조림을 하고 신선한 계란을 다시 사자고 했더니 제가 장을 볼 때 산 거라 신선하단다. 그러면서 계란찜을 해 엄마도 먹어보라며 밥상에 올린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오늘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퍼붓는 빗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뛰어나가다가 멈췄다. 딸이 이미 빨래를 모두 걷어 들여 거실에 놓인 빨래건조대에 걸어놓았지 않은가. 그것도 잘 마르라고 구석에 놓여있던 건조대를 거실 가운데로 끌어내어 놓고 빨래와의 간격을 일정하게 맞춘 채 말이다. 여러모로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된 것 같다. 여행 덕분에 참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중부 지방에 엄청난 폭우가 내려 명동이 물바다가 된 어제(26일) 7시 무렵에 썼습니다.



태그:#공정여행, #청소년 가출, #빨래, #딸,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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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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