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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침대위의 책
책표지침대위의 책 ⓒ 이명화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은 저자 정혜윤의 독서편력이다. 여행지를 쏘다닌 여행기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침대 위에 뒹굴면서 만난 책 속 여행이다. 그녀가 침대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행지 등을 글로 일구어 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침대 속에서 백 번도 넘게 여행을 갔고 백 명도 넘는 사람을 만났고 백 번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왔다는 저자의 책 이야기는 한 마디로 '사소한 욕구에 답해주는 책에 대한 글로 보은하려고' 쓴 글이라는데.

나름대로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상에는 정말 책도 많다. 책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내가 아직 만나지 않은 책들이 이 책 속엔 많이 소개된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혹은 '거기 그것이 있었기에' 만났던 책들과 만나지 못했던 책들이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마음에 와 닿은 책들도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하며 읽는 시간.

여행. 장소의 이동만이,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 터. 오히려 상상속의 여행이 더 화려하다던가. 책을 통한 여행, 그 상상의 나래를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렸을 때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상상과 그때의 감정은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도. 해서 그때의 감동으로 다시 읽게 된다는 것도. 내 방에 앉아서 책과 함께 수억 수만리도 갈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 생각들을 경험할 수 있다. 독서여행, 좋지 아니한가. 저자가 침대 위에서 쓴 책을 나는 나의 '존재의 테이블'에 앉아 읽었다.

저자는 '맛 집을 추천하는 책도 있고 술집을 추천하는 책, 와인과 커피와 옷과 자동차와 여행지와 박물관, 온갖 것을 추천하는 책이 있고 나도 그 책들 덕에 인생의 풍요를 좀 맛봤다'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욕구에 답해주는 책에 대한 글로 보은하려고'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소한 욕구에 답해주는 책'엔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걸려올 한 통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추천하며 심신을 안정하라고 말해주겠다. 첫사랑 애인이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고 난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마담 보봐리>를 손에 쥐어줄 것이며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쥐어 줄 것이다. 맹추 같은 남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눈먼 바보에게는 <노트르담의 곱추>를 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읽기 혹은 책 소개의 또 다른 방식을 만난 것 같아 반갑다. 나는 지금 어떤 욕구를 갖고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만나 봐도 좋겠다. 지상에는 수많은 책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고 내가 다 읽지 못하는 책들도 엄청나게 많다. 책 속의 여행을 떠나볼까. 내게로 온 책, 침대 위에서 겉옷쯤은 벗어 던지고 아직 발을 내딛지 않은 책장을 열고 한 걸음씩 걸어가 보는 것이다.

저자는 "침대야말로 인생과 사람을 가장 궁금해 하는 곳"이란다. 거기서 한 장 한 장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의 영혼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하다'고. '나와 같이 가자'고 이끄는 억센 손을 잡고 봄 밤에 담을 넘는 기분'이란다.

"일상의 문제는 스타일이다. 일상의 문제는 깊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p36)라고, 일상을 사랑하는 것은 '나란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속해있다'라고 주먹 불끈 쥐고 어떻게든 고쳐나가려 애쓰는 행위'이며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기'(수잔 손택)임을 환기시켜 준 책이다.

여행이 꼭 그 장소에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듯이, 거창한 경험을 해야 위대한 글과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저자는 자신의 가장 친숙한 공간인 침대 위에서 그녀 자신이 읽고 읽었던 책들을 소개해주고 있어 신선하다. 거추장스러운 겉옷일랑 훌훌 벗어던지고 침대 위에 뛰어들어 책을 펼쳐나 볼까.

"일찍이 니체는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는,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까지 침대 속에서 백 번도 넘게 여행을 갔고 백 명도 넘는 사람을 만났고 백 번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왔으니..."(p56)


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7)


#책#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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