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깔깔깔 희망의 버스> 표지
 <깔깔깔 희망의 버스> 표지
ⓒ 후마니타스

관련사진보기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고서도 첫 장을 펼치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이 책의 처음 3분의 1 정도가 김진숙의 글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순전히 <소금꽃나무> 때문이다. 예전에 그의 책 <소금꽃나무>를 내게 권해준 사람은 "절대 지하철에서 읽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나는, 모두 지루한 표정으로 맨송맨송하게 실려가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남몰래 이를 악물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때처럼, 그의 삶이 전하는 지독한 리얼리티를 다시 만날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럼 안 읽으면 그만인데, 그렇게도 할 수 없었다. 이 책에는 김진숙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쓴 글과 함께 '희망의 버스'를 만든 이들, 그 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만나고 온 이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버스를 준비하는 이들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그래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절한 투쟁 소식을 듣고 '뭐라도 해야겠어서' 모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전하는 것이, 김진숙을 위해 '무엇도 한 게' 없는 내가 할 일 같았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김진숙의 눈'

김진숙과 희망의 버스에 대한 기록을 모아 만든 책, <깔깔깔 희망의 버스>. 언론에서는 김진숙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나 '한진중공업 해고자'라고 소개하지만, 지금은 그저 '소금꽃'이라는 말로 수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책에 실린 김진숙의 글을 읽으면 왜 그녀를 소금꽃이라는 '노동하는 삶의 애상과 치열함의 상징'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오늘 정리해고 명단 발표 소식을 들었습니다. 290명, 가족까지 1200명, 하청까지 수천 명. 그중에는 아빠가 빨리 일을 다시 시작해,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은 딸내미도 있을 것이고, 다시 태권도를 배우고 싶은 아들내미도 있을 것이고, 이제나저제나 우리 아들 직장을 걱정하는 늙으신 부모님도 계실 것이고, 수십 년 새벽밥을 했던 마누라도 있을 것입니다."

회사는, 정부는, 언론은 정리해고 규모를 숫자로 가늠하지만, 김진숙은 그 숫자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읽는다. 열이면 적고 천이면 많다는 식으로 '셈'하지 않고, 그런 숫자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결을 제 살갗에 난 상처를 보살피듯 들여다보는 거다. 경제학자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숫자 속에서 인간을 읽는 '김진숙의 눈'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시작한 김진숙의 싸움이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크레인을 오르며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라고 한 말이 진심이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35미터 상공의 크레인 위에서 늘 죽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눈물 훔치고 용기를 얻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도닥였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공장으로 복귀하는 조합원들이 생기고, 남아 있는 조합원들은 당연히 동요했다. '쪽수가 생명'인 파업 현장. 점점 작아지는 파업 농성장을 내려다보면서,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시렸을까. 그녀도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이 싸움에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순간 상상하기 힘든 허탈함을 느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제 마음보다 '남은 이'들과 심지어 '돌아선 이'들의 마음까지 먼저 챙겼다.  

"등을 보이며 돌아선 동료에게 우리마저 등을 돌릴 게 아니라 가슴을 내밉시다. 밤중이고 새벽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아예 걸어 잠그진 맙시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진솔하고 기발한 소통

이 책에 실린 김진숙의 글은 모두 크레인 아래에 있는 조합원들이나 자신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내온 먼 곳의 벗들을 향해 쓴 글이지만, 딱 하나, 대상이 다른 글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잠시 책장을 덮고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바로 농성 123일째, 어버이날에 쓴 글이다.

"첫 월급. 그 눈물 나는 돈을 받아 엄마 쉐타 사고 법랑냄비 사니까 없더라. 그걸로 내가 지은 죄 갚았다고 생각했어. 다. 엄마 유품 정리하는데 그딴 게 구석구석에서 나오데. 쉐타는 반다지에서, 냄비는 선반 위에서 박스 채로, 중학교 때 신문 배달해서 사준 털신은 농 안에서…. 왜 그딴 걸 하나도 안 쓰고 죽었냐. 이누무 이상한 엄마야. (줄임) 살면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날보다 엄마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은 날이 더 많았네. 근데두 엄마. 보고 싶을 때가 있어. 한 번만. 잠깐만이라도, 안 되면 먼발치에서라도."

쇳덩어리처럼 단단하게 크레인 위를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도, 30년 전 임종도 보지 못하고 보낸 엄마를 그리워한 시간이 있었다. 병 때문에 배에는 복수가 차고 평생 체중이 40킬로그램을 넘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를 자전거에 태우고 바람에 쓰러질까 한 손으로 등을 받치고 다니던 딸. 그녀는 그때 엄마를 받치던 손으로 지금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야만의 칼바람을 맞으며 '인간'이라는 깃발을 받치고 있다. 

서글프게도, 고공농성이란 방식은 노동자들의 싸움에서 흔하다. 하지만 김진숙의 싸움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간 것은 그녀가 트위터를 통해 보여준 진솔한 '소통' 덕분이다. 특히 그녀의 탁월한 낙관과 허를 찌르는 '개그감'은 사람들을 김진숙의 팬으로 만들었다.

"저는 사실 여기 올라온 순간부터 정리해고 철회보다는 이 크레인을 마징가제트로 개조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근데 자기 전에 꼭 이 크레인 아래서 외치고 가는 아저씨가 계세요. '절대 딴생각 하지마이! 아랐쩨?' 저 아저씬 도대체 어떻게 아셨을까요?"

이게 35미터 고공에서 농성 중인 50대 노동자의 말이라니. 잔뜩 걱정이 돼서 들여다보는 이들에게 오히려 "깔깔깔" 웃음을 돌려주는 그녀,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은 그녀의 낙관에 전염돼갔다. 트위터 멘션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찾아 읽기 어렵지만 다행히 이 책에 여섯 쪽 정도 그녀의 트위터 멘션들이 실려 있다.

희망을 만든 것은 평범한 이들의 '부끄러움'

지난 20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96일째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한진중공업 사측은 이날 오후 같은 규모의 84호 크레인을 끌고와 로프로 연결해 놓았다.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크레인이 85호 크레인이고 뒤에 보이는 크레인이 84호 크레인이다. 두 크레인의 거리는 50미터 정도다.
 지난 20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96일째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한진중공업 사측은 이날 오후 같은 규모의 84호 크레인을 끌고와 로프로 연결해 놓았다.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크레인이 85호 크레인이고 뒤에 보이는 크레인이 84호 크레인이다. 두 크레인의 거리는 50미터 정도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그 뒤로는 희망의 버스를 만든 이들의 글이 있고, 이어서 김진숙의 낙관에 전염돼 희망의 버스를 함께 탄 이들의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학생, 주부, 한의사, 빵집 주인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1박 2일 동안 김진숙이 지키고자 하는 삶의 가치, 인간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돌아갔다.

"노동자 수백 명이 정리해고가 되든 말든 난 오늘도 따뜻한 밥 먹으면서, 시원한 진료실에 앉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고 싶은 것 다 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던 한 의사는 "언론은 우리더러 폭도라 한다. (줄임) 어쩌면 소환장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떳떳할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당당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다짐하는 '투사'가 됐다.

그리고 올해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을 도와주지 못해서 마음으로 진 '빚' 때문에 고민 끝에 혼자 왔다는 한 홍익대 졸업생은, "악덕 자본가 조남호 때문이 아닙니다. 이명박 때문도, 노무현 때문도 아닙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나 때문이었습니다. 김진숙 님 말씀대로, 연대하지 않은 우리 때문입니다"라는 절절한 자기 반성을 하며 돌아갔다.

사람들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진 것은 바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었다. 그것이 바로 '현장의 힘'이라고 할까. 희망의 버스를 탄 사람들 가운데 김진숙의 싸움에 대한 글이나 사진을 못 보고 간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재벌 회사에 맞서서, 혈혈단신 몸뚱아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김진숙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줬을 거다.

"1박 2일 동안 너무나 많이 울었습니다. 1년치는, 아니 몇 년치는 다 운 것 같습니다. (줄임) 벌이는 적어도 난 가족과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움도 힘이 되고, 미안함도 힘이 된다. 2차 희망의 버스에는 1차 때의 열 배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먼저 희망의 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만나고 온 이들이 느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바로 그런 기적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김진숙에서 희망의 버스로 흐른 감동의 휴먼드라마

하지만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물론 수많은 '일반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희망의 버스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부터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연대해 온 '노동자'들이야말로 희망의 버스가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든" 이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노동자의 글은 딱 한 편밖에 없다.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이 투쟁하며 만든 그 길로 날라리 외부 세력과 '레몬트리 공작단'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거친 길을 만들고 길을 개척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 우리 그것을 느끼자."

노동자로서 유일하게 글을 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창근의 글이다. 희망의 버스에 함께한 모든 이들이 희망의 버스를 만든 주인공들이지만, 우리는 이 '희망의 길'을 닦아온 노동자들의 존재를 너무 쉽게 잊는다. 재능교육, 유성기업, 발레오공조, 콜트콜텍 등 힘들고 긴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희망의 버스에 오른 그들. 그들이 느낀 감동은 또 달랐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은 참 아쉽다.

이 책을 기획한 지 열흘 만에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책을 '희망의 버스 자료집'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노동조합 자료보관용 캐비닛에 꽂혀만 있을 책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부산 영도의 크레인 위에 외롭게 피어 있는 소금꽃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얼굴을 어루만지기 위해 일상의 행복을 버리고 기꺼이 '외부세력'이 된 수많은 이들의 살가운 손길을 본다.

이 책은 인간과 노동이라는 가치를 위해 먼저 죽어간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로부터 김진숙으로 이어진 마음이, 희망의 버스를 탄 만 명의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셀 수 없이 더 많은 이들의 가슴으로 어떻게 흘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휴먼드라마다.

고공농성 200여 일. 세 번째 희망의 버스가 출발을 앞두고 있다. 이 책은 또 더 많은 이들을 그 희망의 행진에 함께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김진숙이 웃으며 크레인을 내려오고 우리가 그것을 노동운동사의 감동적인 한 순간으로 돌이켜 이야기하는 그 어느 날에도, 우리의 손에는 분명히 이 책이 들려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깔깔깔 희망의 버스>(깔깔깔기획단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 2011년, 10000원)



태그:#김진숙, #희망의버스, #깔깔깔희망의버스, #희망버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