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도선생과 카사의 행복한 한 때
 박도선생과 카사의 행복한 한 때
ⓒ 진천규

관련사진보기


'나비'의 죽음 이후 내게 반려동물은 없었지만...

30년 전인 대학 1학년의 봄.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나비'가 툇마루 아래 꾸며 준 보금자리에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나비'는 새끼를 낳느라 기진해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조차 입에 넣지 못하고 푹 꺼진 배에 매달린 젖을 새끼들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새끼를 낳느라 힘들었으니 미역국 먹고 힘내라는 내 말에도 아랑곳 않고 숨을 헐떡이며 젖을 빨리던 '나비'. 그리고 한 순간 마치 제 새끼를 부탁한다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어미가 숨을 거둔 마당에도 품을 파고들어 젖 빨기를 멈추지 않는 새끼들을 강제로 어미 몸에서 떼어 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픔이 커서였을까 '나비'의 죽음 이후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반려동물은 없었다. 하지만 '나비'에 대한 애틋함이 컸던지 지금도 길가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조차 그대로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마음 한구석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노신사와 '차도고'(차가운 도시의 고양이)가 함께 지낸 6년 이야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기도 한 소설가 박도(66) 선생이 두메산골 안흥에서 고양이 '카사'와 함께 지낸 6년간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았다. 고혹적인 눈빛으로 독자를 노려보고 있는 <카사, 그리고 나>의 표지를 보는 순간 30년 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내 고양이 '나비'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내 고양이 '나비'는 동네 골목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길냥이과의 잡종 고양이였지만 박도 선생의 고양이는 청회색의 짧은 털이 매력적인 러시안 블루다. 한눈에도 도도해 보이는 차도남(차가운 도시의 남자) 카사.

성급한 마음에 책을 읽기도 전에 혹시 '카사'의 새끼라도 한 마리 분양받을 수 있을까 잠깐 가슴이 부풀었지만 이내 실망했다. '카사'는 수컷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거세까지 한.

아쉽지만 '카사' 대한 개인적 사심을 버리고 책장을 넘겼다. 두메산골이라는 안흥 말무더미 산골 집의 분위기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끔한 노신사 박도선생과 노신사보다 더 도도한 차도고(차가운 도시의 고양이)의 시골살이 이야기는 뭔가 부조화스러운 둘의 모습만큼이나 재미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사료만 먹고 자란 귀족 고양이 카사. 강남 부유층 사모님의 품속에서 그녀의 긴 손톱에 털을 쓸리고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카사'가 처음으로 쥐를 잡던 날을 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카사란 놈이 봉당 뒤꼍에서 생쥐 한 마리를 물고서는 의기양양하게 "응응'거리며 거실에 나타났다. 생쥐는 그때까지 산 채 '찍찍' 거렸다. (중략) 우와! 우리 카사가 쥐를 다 잡았네." 아내의 칭찬에 카사는 그제야 고양이로서 체면을 차린 것을 과시라도 하는 듯 연거푸 "야옹,야옹"소리를 질렀다."(본문 중)

잘 때도 도도한 자태를 잃지 않는 '카사'
 잘 때도 도도한 자태를 잃지 않는 '카사'
ⓒ 박도

관련사진보기


'고양이와 쥐 사이'라는 말도 있지만 쥐 잡을 일없는 도시에서만 자란 고양이에게 겁 없고 덩치 큰 시골 쥐는 공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귀족 고양이도 고양이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 법. 자랑스럽게 쥐를 잡아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 '나비'도 그랬다. 할머니가 '나비'에게 "나비야, 넌 쥐도 못 잡는 게 무슨 고양이라고 야옹거리냐. 쥐 좀 잡아봐"라고 말한 다음날 '나비'는 할머니의 고무신에 쥐 한 마리를 잡아다 놓았었다.

자칫 단조롭거나 무료할 수 있는 시골 살이. 더구나 예순을 넘긴 부부가 단 둘이 살다보니 사이가 좋다 한들 뭐 그리 할 말이 많을까 싶다. 그저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무덤덤한 날들 속에 '카사'가 들어 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거나, 목욕을 시켜주고 발톱을 깎아 주면서 고양이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차가운 도시의 고양이였던 '카사'는 두메산골 안흥에서 박도 선생과 함께 6년을 살면서 터프한 시골고양이로 변해 갔다. 쥐들에게도 무시당하던 도시의 고양이가 산으로 들로 다니며 맷새를 잡고 청솔모나 다람쥐까지 잡는 터프 고양이로 변신한 것이다.

아파트로 옮기면서 이별

잠자고 있던 고양이의 본성이 깨어나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할 즈음 '카사'의 주인인 박도 선생이 안흥 집을 정리하고 원주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지난 6년간 허락된 자연 속에 자유를 누려왔던 '카사'에게 아파트는 강금과도 같은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답답한 아파트 생활에 힘들어 하는 카사를 보다 못한 선생은 '카사'에게 자유를 주기로 작정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화백에게 '카사'를 부탁한 것이다. 화백의 집이라면 안흥 시골집처럼 '카사'가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겠기에 떠나보내는 서운함도 카사에 대한 미안함도 많이 덜수 있을 듯 했다.

"떠나기 전날은 새 방석 겸 침대를 사서 시집보내는 딸의 혼수처럼 챙겼다. 미리 제 밥과 화장실에 깔 모래도 고양이 밥집에서 넉넉히 주문하여 지참케 했다. 그동안 써오던 카사의 이런저런 짐들을 차곡 차곡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내는 우리 집에서 마지막 목욕을 시켰다. 그날 밤 나는 목욕이 끝난 그놈을 내 방으로 데리고 와 서로 눈을 맞추며 이별연습을 했다. '카사야,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구나." (본문 중)

비록 박도 선생의 품을 떠나긴 했지만 다행인건 언제나 보고 싶을 때면 달려가  '카사'를 볼 수도 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사, 그리고 나>에는 고양이 카사와 박도 선생의 알콩달콩 이야기 외에도 시골마을 안흥살이 이야기 '흙집 글방을 꾸미다'와 노신사 박도 선생의 눈에 비친 세상 사는 이야기 '기다리는 기쁨'이 포함되어 있다.

카사, 그리고 나 표지
 카사, 그리고 나 표지
ⓒ 도서출판 <오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저자 소개

박 도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다. 30여 년간 교단생활을 마무리한 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1994년 장편소설『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로 등단하다. 작품집에는 장편소설『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제비꽃』 산문집『비어있는 자리』,『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일본기행』,『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근현대사 유적답사기로『항일유적답사기』,『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영웅 안중근』 그밖에 엮어 펴낸 사진집으로『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나를 울린 한국전쟁100 장면』,『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한국전쟁∙Ⅱ』,『일제강점기』등이 있다.



카사, 그리고 나

박도 지음, 오래(2011)


태그:#카사, 그리고 나, #박도, #러시안블루, #고양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