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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연 관람

2주 전, 첫째 까꿍이를 데리고 어린이 뮤지컬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고 왔다. 그 전 주 어린이 뮤지컬 <슈퍼영웅 뽀로로> 관람에 이은 두 부녀의 두 번째 공연 관람.

관람의 계기는 그 전 주와 비슷했다. 아내는  9월에 시작하는 공연의 대본을 지난 5월부터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중간 중간 있는 마감 때마다 될 수 있으면 첫째 아이를 내게 맡기고자 했다. 몸 푼 지 50일 밖에 되지 않는 임산부의 몸으로 무조건 나가자고 떼쓰는 첫째와 시시때때로 젖을 빨아대는 둘째를 동시에 상대하며 글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첫째는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나가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아싸~나간다!!! 유후~~~
▲ 나가자! 아싸~나간다!!! 유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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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아빠랑 본 뽀로로 기억나요?" / "네!"
"재미있었어요?" / "네!"
"그럼 이번에는 뿡뿡이 볼까요?" / "네!"
"그럼 나가자!" / "네!"

아빠의 나가자는 소리에 신이 난 듯 연신 소리를 질러대는 까꿍이. 녀석은 당장 동생과 엄마에게 세차게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외친 뒤에 나의 무릎에 올라앉아 신발 신겨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를 갓 낳았을 때만 해도 밖에 나갈 때면 무조건 엄마도 같이 가야 된다며 울던 아이였건만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조건 나간다고 이야기만 하면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렇게 조금씩 커가는 것이겠지.

난 아이를 차에 태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제법 카시트에 늠름하게 앉아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똥말똥 밖을 내다보는 아이. 눈에 보이는 모든 걸 흡수하겠다는 듯 녀석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 한 켠에는 우습게도 되도 않는 대견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런 딸바보 같으니.

까궁이의 마음을 앗아가 버린 포스터
▲ <슈퍼영웅 뽀로로> 포스터 까궁이의 마음을 앗아가 버린 포스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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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아이와 함께 뮤지컬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고 오라는 아내의 제안에 선뜻 응한 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까꿍이의 기억력 때문이었다. 1주일 전에 봤던 <슈퍼영웅 뽀로로>가 인상 깊었는지, 틈만 나면 공연 뒤 얻어온 포스터를 가리키며 뭐라고 혼자 떠드는 아이. 기껏해야 하루 이틀 정도 기억하던 녀석이 1주일 동안이나 그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니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포스터와 문밖을 함께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아빠와 같이 봤거나, 아니면 밖에서 보고 왔다는 의미라는데 어쨌든 그것은 녀석이 특수한 대상에 대해서는 1주일 정도 기억력을 유지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꽤 긴 시간도 기억하기 시작한 20개월 된 까꿍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버지 된 자로서 아이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일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녀석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좀 더 발전하게 될 터, 아이에게 큰 자극이 될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기 위해 기꺼이 나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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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싶은 부모 마음
▲ 저 앞에 서란 말이다 사진을 찍고 싶은 부모 마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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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착한 공연장. 1주일 전 <슈퍼영웅 뽀로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서로 뒤섞여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그런 자식들을 붙잡아 캐릭터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부모들, 그리고 아이들의 환심을 사서 어떻게든 하루 매출을 올리려는 상인들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까꿍이는 그 시장통 풍경이 낯설었는지 몇 번 캐릭터 앞에서 포즈를 잡더니 이내 내게 매달렸고, 난 녀석을 번쩍 들어 안아 곧장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까꿍이가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 할 텐데. 좀 더 크면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겠지?

아직 흥분하기 전의 까꿍이
▲ <방귀대장 뿡뿡이>를 기다리며 아직 흥분하기 전의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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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까꿍이는 <방귀대장 뿡뿡이>가 <슈퍼영웅 뽀로로>보다는 높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인지 영 낯설어 했다. <슈퍼영웅 뽀로로>를 보면서는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유일한 대사인 "이게 뭐야?"를 반복하며 흥분하더니만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면서는 무대 위 배우 대신 자신의 주변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는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이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고 어깨를 들썩이며 가끔 소리도 질렀다. 20개월 밖에 되지 않아 조잡한 움직임이었지만 아이는 우리가 공연장 가서 하는 행위들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었다. 어디서 보고 들은 것도 아닌데 인류에게 춤과 노래는 역시 본능이었던가.

많은 유아들의 사랑을 받는 그 공연
▲ <방귀대장 뿡뿡이> 많은 유아들의 사랑을 받는 그 공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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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푹 빠진 20개월 까궁이. 그러나 정작 문제는 녀석이 아닌 바로 나였다. <슈퍼영웅 뽀로로> 때와 마찬가지로 난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공연이며 아이들이며 모두 소리지르고 시끄러웠지만 난 오직 우리 아이의 안위만을 걱정한 채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눈꺼풀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공연을 본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임을 2주 연속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우뢰매 시리즈 중 다섯 번째
▲ 초등학생 당시 방학만 되면 기다리던 영화 우뢰매 시리즈 중 다섯 번째
ⓒ 서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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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신이 난 까꿍이를 보며 계속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니, 문뜩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청계천 다리 밑 바다극장에서 <우뢰매>를 함께 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1986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나와 유치원생 동생을 데리고 난생 처음 극장에서 <우뢰매>를 보여주셨던 아버지. 아직까지도 그 영화 내용 보다는 영화 내내 졸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는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어떻게 졸 수 있냐며, 역시 우리 아버지는 문화생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며 키득거렸는데 이젠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나중에 까궁이도 꾸벅꾸벅 조는 날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황금 같은 주말에 아이 둘을 데리고 유치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느라고 고생하시던 아버지, 이 못난 아들이 제 자식을 낳고 나서야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까꿍이는 뭐라고 혼자 중얼대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아내의 말대로 공연을 1시간 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겐 매우 자극적인 일이고 그만큼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듯했다.

다음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대뜸 연락이 왔다. 평소 뿡뿡이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가 갑자기 TV에서 뿡뿡이가 나오자 반응을 하더라는 것이다. 짜잔 형이 나타나자 연신 "이게 뭐야"를 읊조리며 자신이 봤던 공연을 되새기는 까궁이. 이것이 부모 된 입장에서 느끼는 보람이려니.

까꿍아. 우리 또 재미있는 공연 보러 가자꾸나. 아빠가 졸지 않고 볼 수 있는 공연을 볼 때까지. 아, 그때 되면 동생 산들이도 데리고 가야겠구나.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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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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