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처럼 나도 해봐서 아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좀 싱겁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 이름이 왜 '윤수'인지를 물어봐서 압니다. 시골에서 자랄 때는 윤수는 나 혼자 뿐일 줄 알았는데 중학생 때 전학을 가면서 또 다른 윤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이름 '윤'자는 윤달에서
반이 같았으면 출석을 부를 때마다 엄청 헷갈렸을 건데 다행스럽게 같은 반은 아니었습니다. 윤수와 함께 있을 때 "윤수야"하고 누군가 불러 뒤돌아보면 "너 말고 윤수"하는 놀림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에게 "내 이름을 왜 윤수라고 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던 설명은 지금 생각해봐도 싱겁기 그지없습니다. "'수'자는 돌림자이고, '윤'자는 네가 태어나던 해에 윤달이 들어서 그냥 '윤'자를 넣어 윤수가 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한학을 공부한 집안 어른이 동환(東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같은 항렬의 형들 이름에는 돌림인 '수'자가 다 들어가 있는데 막내가 될게 뻔한 아들 이름에서 돌림자를 빼면 왠지 외톨이가 되는 것 같아 '수'자를 넣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래서 '동수'로 하려고 했는데 같은 항렬 중에 동수라는 이름을 가진 형이 있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결국은 태어난 해에 윤달이 들었다는 것에 방점을 두어 '윤수'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확인해 보니 1960년에는 음력으로 6월이 윤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름에 사용한 한자는 윤달 '윤(閏)'자가 아니고 윤택할 '윤(潤)'자여서 그 이유도 물었지만 엄마는 그것 까지는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못하니 나름대로 '윤'이라는 음은 태어난 해에서 결정됐지만 글자만큼은 의미를 고려해 '윤택할 윤'으로 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해봐서 아는 '단맛'쌀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는 것도 해봐서 압니다. 쌀밥을 오랫동안 씹으면 단맛이 난다는 것을 배우던 날, 그게 정말일까 하는 궁금증에 맨쌀밥을 의도적으로 오랫동안 씹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때까지는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느낄 수 없었던 달달함이 정말 밥에서 우러났습니다.
어찌 되었건 엄마에게 물어서 이름이 왜 윤수가 됐는지를 알게 되었고, 배가 고프면 그냥 먹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밥이 오랫동안 씹으니 단맛이 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름이나 밥맛만 그랬던 건 아닙니다. 꽃에 담긴 꽃말을 알면 꽃말을 마음으로 새기게 되고, 선물에 담긴 의미를 알면 선물에 담긴 의미로 가슴이 채워진다는 것도 해봐서 압니다. 모르거나 궁금했던 것을 안다는 것은 단맛처럼 달콤하고, 새긴다는 것은 진주처럼 가치를 더해줍니다.
일상에서 무시로 접하게 되는 동식물은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고, 왜 그렇게 부르고 있는지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책에서는 그런 궁금증, 무심코 부르고 있는 동식물 이름이 어떤 어휘 변천사를 거쳤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왜?'하고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나 질문에 대한 답이 월간 <자연과 생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주희 기자가 쓰고, <자연과 생태>에서 펴낸 <내 이름은 왜?>에 나옵니다.
"은행(銀杏)은 은행나무의 열매다. 모양이 은빛이 도는 살구를 닮았다고 해서 은 '은(銀)'자와 살구 '행(杏)'자를 썼다. 은행나무는 공손수(公孫樹) 또는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부른다. 전자는 할아버지 대에 심으면 손자 대에 가서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은행나무를 심고 나서 열매를 맺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붙은 이름이다. 후자는 은행나무 잎 모양이 넓적한 물갈퀴가 있는 오리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내 이름은 왜?> 81~82페이지."서양에서는 은행나무를 'Ginkgo'라고 쓰고 '징코' 또는 '긴코'라고 읽는다. 그런데 막상 '-kgo'부분의 철자가 영 어색하다. (중략) 은행나무를 긴쿄라고 부르기로 했다면 'Ginkyo'라고 표기되거나 독일식 철자법으로 'Ginkjo' 또는 'Ginkio'라고 표기되는 것이 옳았다. 아니면 적어도 'k'와 'g'의 자리를 바꾸어 'Gingko'라고 표기 했어야 철자법이 어색하지 않다." - <내 이름은 왜?> 85페이지. '실수로 지어진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은행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동식물 이름이 실수로 만들어 지는 재미있는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봄이면 산허리마다 붉은 색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 노란 개나리는 물론 여성의 성기와 너무 흡사해 그 이름 '개오지' 하나를 짓는데 꼬박 여섯 달이나 고민을 하는 과정이나 의미가 단맛과 함께 알록달록하게 스며있습니다.
풀과 나무, 젖먹이동물과 새들 이름, 도마뱀이나 지렁이처럼 땅과 물속에 사는 동물들 이름까지 그 이름 하나하나가 어떤 어휘 변천사를 거쳐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으며, 그 이름에 담긴 뜻과 의미까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동식물 이름에 담긴 의미, 여기에 답 있다 메마른 옹달샘을 만날 때 느끼는 갈증처럼 동식물 이름에 담긴 뜻과 어휘 변천사가 알고 싶거나 궁금했다면 <내 이름은 왜?>가 옹달샘을 채워주는 석간수가 되고, 석간수를 떠 마실 수 있는 표주박이 되어 갈증과 같은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갈시켜 줄 것입니다.
배를 불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밥이지만 꼭꼭 오래 씹었더니 단맛이 우러났듯이 그냥 부르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동식물 이름에 단맛과 같은 뜻, 진주와 같은 의미를 <내 이름은 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식물을 보는 눈을 밝게 해주고, 동식물 이름에서 느끼는 의미를 깊이 맛보게 해 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내 이름은 왜>┃이주희 지음┃펴낸곳 자연과 생태┃2011.07.20┃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