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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김수현(49)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혁명정부 건설부 장관'을 꿈꿨다. 그는 대학생이던 80년대 초 서울 곳곳의 판자촌과 쪽방으로 들어간 후, 그 후 20년을 오롯이 빈민·철거민 운동에 바쳤다. 신혼시절도 판잣집에서 보냈다. 2003년 그의 인생은 반전을 겪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다.

 

부동산 시장 개혁에 대한 꿈이 컸다. 노무현 대통령, 이정우 정책실장과 뜻이 맞았다. 토지공개념 기반 위에서 보유세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주요 개혁 과제로 추진했다. 하지만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다. 김수현 교수는 "개혁 과제에만 집중하다보니, 과잉유동성과 같은 상황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김 교수에게는 '부동산 정책 실패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 그가 최근 책 <부동산은 끝났다>(오월의봄 펴냄)를 내놓았다. 김 교수가 내놓은 부동산 문제 해법은 진보 성향 학자들의 생각과 달랐다. 전세대란 해소를 위해 다주택자를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벌써부터 논란을 예고한다.

 

김 교수는 "청와대에 있으면서 어떤 정책 '한 방'으로 부동산 시장을 개혁할 수 없다는 것과 모든 정책은 강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한 방'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분위기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보유세 늘려 복지 재원 마련? 쉽지 않다"

 

책을 보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탄생 비화가 눈길을 끈다. 사정상 출간하지 못한 책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비사>에서 원고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2003년 9월 종부세 설치를 확정한 후 2004년 12월 국회 통과까지 당시 재정경제부의 연기 요청, 지방세-국세 논란, 여야 정치권의 반대 등의 과정이 생생히 담겼다.

 

- 이명박 정부 들어 종부세가 무력화됐다.

"국세청 기준시가 6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한 종부세 부과와 세대별 합산으로 인해 다주택자가 많은 세금을 냈다. 전체 주택에 대한 보유세 강화 로드맵도 함께 내놓았다. 보수언론의 보도처럼 고가주택에 대한 징벌적 세제가 아니었다. 보유세 강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 종부세 무력화에 국민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종부세 무력화는 부자 감세인데도, 당시 국민들이 무기력하게 동의해줬다. 국민들은 감세를 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자 감세를 해도 서민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당에서도 종부세 환원론이 나온다."

 

- 종부세 논란 당시로 돌아가면, 무엇을 다시 하고 싶나?

"당시의 교훈은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부세를 만들 당시 진보개혁성향 국민들은 보유세 강화 원칙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자신의 세금이 늘어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꼈다. 종부세에서  경험했듯이, 탄탄한 사회적 합의 없는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무너진다."

 

보유세 강화는 최근 복지국가 논쟁에서 주목받고 있는 주제다. 보유세를 올려 복지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에 김수현 교수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유세 실효세율은 0.2%다. 0.5%를 목표로 한다고 해도, 10년간 매년 20%씩 올려야 한다. 고가주택보다 실효세율이 낮은 저가주택 세금도 많이 올라가야 한다. 국민 저항이 클 것이다. 복지재원 마련이 아닌 '거래세 인하, 보유세 강화' 원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거래세를 인하한 만큼 보유세를 인상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주택자를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로 인정해야"

 

전세대란에 대한 해법이 궁금했다. 김 교수는 다주택자를 용납하자고 했다.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00%에 달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임대주택을 활용해 전세난을 해소하자"고 말했다.

 

- 진보 진영의 공통된 전세대란 해소 해법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다.

"참여정부는 어느 정부보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늘렸다. 매년 9만 가구씩 늘렸다.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1700만 가구 중 100만 가구(건설 중 포함)다. 임대주택 거주율이 약 6%인 것을 감안하면, '20%까지 확대'라는 진보진영의 주장은 실현되기 어렵다. 10%가 현실적 목표다. 현재 도시화율이 매우 높아 도심과 가까운 곳에는 땅이 없다. 막대한 돈도 든다."

 

- 그렇다면 서민들은 불안정한 민간임대 시장에서 고통 받아야 하나?

"독일은 서구 선진국 중에서 특이하게 공공임대주택(10%) 비율이 낮고 민간임대주택 비율(49%)이 높다.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 주거 안정이 이뤄지고 있다. 세입자는 자동으로 계약을 갱신할 수 있고, 집주인은 일정 수준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한다."

 

- 야당에서는 자동계약갱신제와 임대료 상한제를 추진하고 있다.

"등록제가 선행되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아들이 살아야 하니 나가달라'고 하고, 다른 세입자를 더 높은 임대료를 받고 들일 수 있지 않겠나."

 

- 현재 다주택자 중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이 거의 없다. 어떻게 설득할 수 있나?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제도를 폐지해주는 대신,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양도세 중과제도는 제대로 작동을 안한다. 등록제를 하면 임대소득세를 걷어야 한다. 세입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데, 민간 임대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과세를 10년 동안 늦추면 된다."

 

"선출직 안 나가... 이미 정치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인구와 산업구조가 고도성장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40년 간 꿈쩍 않던 '부동산 불패론'에 균열이 생겼다"며 "이제는 집값이 떨어지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집값 상승에는 억누르는 처방을 내놓으면 안 된다, 집값에 떠밀리는 부동산 인질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만 붙잡고 있다. 김 교수는 "토건 경제 연착륙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통한 토건경제 부양, 공공임대주택 반 토막 등 과거 패러다임을 반복하고 있다"며 "차기 정부가 그 후과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동산 전문가이자 준정치인이다. 그는 6개월의 환경부 차관 시절을 제외하면 참여정부 내내 청와대에 있었다. 그 어떤 실세보다 청와대에 오래 몸 담았다. 빈민 운동, 청와대, 학계 경험을 두루 갖춘 그는 참여정부 비서관 시절부터 국회의원 출마 제의를 많이 받았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내년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나?

"정책 제언도 하고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정책본부장을 하는 등 사실상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출직에 나갈만한 자질을 갖추진 못했다. 선출직에 나갈 생각은 없다."


#김수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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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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