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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과일값 오름세로 과일 사기도 쉽지 않다
 올 여름 과일값 오름세로 과일 사기도 쉽지 않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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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지쳐서 그런지 식구들이 영 기운을 못 차리네. 뭐 보양식이라도 해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장이나 보러 가자."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장보러 가기도 겁난다. 고기고 채소고 과일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잖아. 기왕 가는 길에 양은 조금 많아도 창고형 매장으로 가자. 며칠 전에 수박이랑 삼계탕용 닭, 호주산 스테이크 세일한다고 전단 들어왔어."

창고형 매장을 즐겨 찾는 친구. 대형마트나 동네 슈퍼에 비해 포장 단위가 커서 부담스러운 면은 있지만, 두 세집이 모여 공동구매를 하면 용량에 대한 부담은 덜고, 가격은 저렴하게 구매하는 효과가 있어 나름의 절약 노하우로 창고형 매장을 찾는다.

창고형 매장은 매장 크기는 물론 카트의 크기도 남다르다. 대형 할인마트의 카트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 한 명을 태울 수 있는 정도라면 창고형 매장 카트는 아이 셋을 태우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로, 일단 빈 카트가 주는 공간의 압박이 적지 않다. 커다란 카트, 대용량 포장  때문인지 모 카드사에서 조사한 창고형 매장의 1회 구입액 평균(1회 쇼핑 객단가)은 20만 원 선이라고 한다.

그 많던 '서민식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몇 달에 한 번씩 작정하고 쇼핑을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창고형 매장이 아닌 대형 마트를 찾는다. 전단광고 상품이나, 타임세일 상품, 쿠폰이나 1+1 행사를 잘 이용하면 1회 평균 쇼핑액 5만 원에서 10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일주일 분량의 식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개월 째 물가상승이 지속되다보니 5만 원으로는 이틀치 장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10만 원을 들고 나가도 장바구니는 가볍기 짝이 없다.

제철 과일의 가격조차 급등해 한 때 2만 원 이하로는 만져볼 수도 없었던 귀하신 몸 수박, 전단 세일가라며 1만3천 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크기도 작고 폭우 뒤끝이라 그런지 당도도 떨어진다.

돼지고기 삼겹살 값(100g당) 역시 2천 원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3천 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서민음식으로 사랑받던 돼지고기가 요즘엔 수입 쇠고기 가격을 상회하며 부유층의 식탁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육류가 된 것이다.

돼지고기값이 고공행진을 하니 구이용 수입산 쇠고기 값도 덩달아 상승했다. 지난해만 해도 1600원대면 충분히 구입이 가능했지만 요즘엔 2천 원 대 초반부터 부위별로 3천 원 이상. 등급이 높은 것은 한우가격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닭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삼 복 중에 가장 가격이 높다는 삼계탕용 중닭의 가격은 6천 원에서 9천 원 사이, 토종닭이라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보통 마리당 1만3000원 이상이다.
    
치솟는 물가... 10만 원어치 사도 손이 가볍다

식탁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식탁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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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만 오른 것이 아니다 채소류의 가격 상승 또한 만만치 않다. 쉽게 물러져 김치 담기에는 썩 좋지 않다는 여름배추도 수해의 영향으로 워낙 물량이 달려서인지 한정세일 품목을 제외하면 실한 것은 한통에 6~7천 원은 주어야 한다. 파와 무 값 역시 만만치 않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식탁에서 사랑받았던 고등어나 삼치, 갈치는 더 이상 서민의 생선이 아닌 지 오래됐다. 지난해에 비해 적게는 20% 많게는 40%씩 가격이 상승해서 생물의 경우 살집이 좀 있다 싶으면 마리당 7천 원 이상은 줘야 구매가 가능하고 갈치 값은 더 올라서 크기에 따라서는 한우 쇠고기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모든 품목이 오르다보니 육류를 즐기는 우리 가족의 취향을 생각해 삼겹살과 채소류, 계란과 우유, 시리얼, 포도 몇 송이 정도만 담아도 금방 10만 원을 넘어선다.

이렇게 장을 보고나면 마치 지갑 속의 돈을 도둑맞은 듯 허망하다.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어 놓고 보면 2~3일 먹을 양에 불과한데 지갑은 벌써 바닥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즐겨 찾는 대형마트조차도 이렇게 가격을 올리다보니 어디서 쇼핑을 해야 한 푼이라도 절약하면서 좋은 상품을 구매 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격부담 때문에 날로 부실해져가는 식탁으로 인한 가족들의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카트 공간 메우기 작업에 빠진 나, 어쩌나

친구를 따라 창고형 매장에 가게 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싸게 많은 양을 구매해서 오래 두고 먹으면 그만큼 절약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나의 절제력이 늘 문제다. 창고형 매장을 찾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우는 구호가 있다.

'카트에 빈자리가 보일지라도 절대로 그 자리를 물건으로 메우지 말자. 기회는 또 있다. 생애 마지막처럼 쇼핑하지 말자.'

열 번도 넘게 마음속으로 구호를 외쳤지만 거대한 카트를 밀며 매장에 진입하는 순간 나의 제어력은 안드로메다로 향해 버린다. 언제나처럼 모든 감각을 그저 지름신에게 맡긴 채 카트의 빈 공간 메우기 작업에 전투적으로 몰두하게 되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집에서 떠날 때 분명히 메모지에 구이용 돼지고기 1kg, 국거리용 쇠고기 한 근, 삼계탕용 닭 3마리와 전복 몇 마리, 오이, 양파, 호박과 쌈 채소류, 식용유, 커피, 우유와 식빵, 버터라고 적어 갔음에 불구하고 순식간에 카트는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들로 가득차고 말았다.

"국내산 돼지고기 삼겹살 2150원? 싸다, 동네 마트에서는 2400원 이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쌀 때 넉넉히 사둬야 해."
"닭도 싼데? 두 마리 포장에 9천 원이야. 중복 전에 동네 마트에서 한 마리에 7천 원 했는데 정말 싸네."
"수박도 하나 담고..."
"냉동해산물. 양은 많지만 먹을 만하네."
"오렌지 주스도 대용량이지만 싸니까 사야지."
"어머, 이 과자 대용량이긴 해도 동네슈퍼보다 훨씬 싼데."
"세제랑 섬유유연제도 담아야지."
"피자도 하나 사 들고 가야지. 크기는 두 배에 가격은 반값밖에 안되는데."
"이 소스는 1+1이네. 당연 사야지."

삼성카드가 조사한 창고형 매장 1회 평균 객단가는 20만원
 삼성카드가 조사한 창고형 매장 1회 평균 객단가는 20만원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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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나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카트에 물건을 채워나갔다. 하나 둘 담기는 물건으로 카트 사이의 틈이 보이지 않을 즈음 언제나처럼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산대에 길게 줄을 선다. 계산원의 바쁜 손놀림을 지켜보는 심정은 마치 시험 성적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마침내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

"손님 23만5800원입니다. 할부해드릴까요?"

'뜨아~ 이 십 삼 만 원. 미친 거 아니야?'

"손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시 충격을 받아 멍해진 나에게 재차 할부 여부를 묻는 계산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손가락 셋을 살며시 펴 보인다. 3개월 할부라는 뜻이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하고 두루마리 서한 같이 긴 영수증을 받고나니 걱정이 밀려온다.

장바구니도 필요없는 동네 슈퍼만 이용하련다

23만 원어치 장을 보아오긴 했지만 정작 식탁에 올릴 신선식품류는 일주일 정도 양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간식류와 공산품 그리고 생활용품들인데 일주일 먹고 석 달 동안 할부를 낼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몇 번만 쇼핑하면 가정 경제 거덜내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아, 정말 어쩌란 말이냐 이 부족한 절제력을. 이 엄청난 충동구매 본성을….'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카트는커녕 장바구니도 필요없는 동네 슈퍼만 이용하겠노라고. 싸다고 무작정 사들여 과소비를 하느니 대형마트나 창고형매장에 비해 단가는 몇 십원 비싸더라도 꼭 필요한 물건만 당장 당장 구매하게 되는 동네슈퍼를 이용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절약의 왕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그:#식탁물가급등, #장바구니물가, #소비지물가, #창고형매장, #대형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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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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