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랑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고생을 좀 하고 있습니다. 입도 벌리기 어렵고, 밥은 더더욱 먹기 힘들고, 게다가 아픈 이빨과 연결된 머리와 눈, 목까지 아프니 이중 삼중의 고생이군요. 치과엘 갈까말까 고민하는 중에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아서 사라다빵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가 아프건 말건 근래 들어 옛날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져서요.
사라다빵. 대다수의 분들이 그러하듯 이건 제게도 추억의 음식입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에 오다가 배가 고프면 시장 어귀 빵집에 들러 사먹던 인기 메뉴였으니까요. 다른 빵들은 가게 안에 정리되어 있어도 사라다빵이나 고로케, 도나스('샐러드빵', '크로켓', '도넛' 이라고 해선 절대 그 느낌이 살지 않죠) 같은 것들은 항상 밖에다 죽 늘어 넣고 진열을 하셔서 우린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들을 사 먹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샐러드' 라고 발음하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발음했다간 '뭐야? 재수없어'하는 소리 듣기 십상이었죠. 하지만 일본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온 나라 안에 퍼져있던 터라 '사라다'가 아닌 '샐러드'가 옳은 발음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쩐지 입에 붙지 않은 말이었죠. 게다가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사라다'란 말을 간만에 몇 번 불러보면 그 시절의 사회 분위기와 추억이 함께 묻어와서 어쩐지 뭉클합니다. 다시 갈 수 없는 소중한 시절, 그곳에는 추억의 사라다빵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첫 가사 실습시간에 만든 것도 사라다빵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사선생님이 출산 휴가 중이어서 서른 살 정도 된 임시 교사분께 가사를 배우고 있었는데, 굉장히 까다롭고 엄격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계신 분이셨죠. 그러던 어느날 가사 실습 주제로 '사라다빵' 이라고 칠판에 크게 적으시고 재료와 만드는 법도 열심히 설명하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실습실에서 우리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손으로 오이를 얇게 썰고, 햄을 깎둑썰기하고, 양배추를 곱게 채치고, 완숙 달걀을 잘게 다졌습니다.
"오이가 너무 두꺼워. 더 얇게!""달걀이 덩어리졌잖아. 안돼!"우리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재료를 다듬어 놓으면 그 선생님은 하얀 조리사 가운을 입은 채탁자 사이를 오가며 썰어놓은 재료들을 검사하러 다니셨죠. 게다가 분필 만지고 머리 쓰다듬던 손으로 우리의 그 소중한 식재료를 마구 주물럭거리면서요. 그래서 우린 선생님의 손이 닿은 부분은 몰래 집어내고 요리를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준비한 채소는 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어 넣은 소스에 비벼져서 사라다가 되었고, 그걸 햄버거빵 안에다 푸짐하게 넣었습니다. 일부 깔끔 떠는 애들은 학교에서 만든 음식은 더럽다며 먹지도 않았지만,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대다수는 두어 개씩 먹고 집으로도 몇 개 싸가지고 갔죠. 저는 때마침 집에 온 이모네 아이들에게 그걸 하나씩 주고 숙제를 하고 그렇게 그날 하루가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가사시간이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잔뜩 굳은 얼굴로 지난 번에 실습한 음식 이름이 뭐냐고 반 전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사라다빵이요'라고 대답했지만 선생님은 화를 내며 그게 어찌 사라다빵이냐며 칠판에다 '샐러드빵'이라고 쓰셨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면서요. 그리곤 가사 노트를 꺼내라고 하곤 한 아이의 노트를 들여다보더니 분명히 '샐러드빵'이라고 적었는데 왜 멋대로 일본어를 썼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그 임시 교사분이 지금 속으로는 얼마나 땀을 흘리고 계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말에 호응을 해드려야 한다고 무언으로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중에 일본어를 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깜빡하신 선생님은 의연 중에 일본식 발음으로 '사라다빵'하고 큼직하게 써놓고 몇 개의 학급을 돌면서 그렇게 수업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반 학생이 지적하는 바람에 뒤늦게 급히 말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많은 가사 실습을 했지만 그때의 첫 가사 실습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사라다빵의 맛과 냄새까지도요. 목련이 차츰 떨어질 무렵 연하늘색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두툼한 체격의 담임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마치고 오시자, 그 임시 교사분은 어딘가로 가셨고, 우린 다들 그 선생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처음 요리를 가르쳐 준 선생님. 하지만 어쩐지 어설펐던 그 선생님. 세월은 무심히 흘러 지금은 연세도 많이 드셨을 텐데, 어디서 무얼하고 계실까요? 그때 그 사라다빵, 너무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