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둔 지난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둔 지난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검찰수사가 진행되기 7개월 전인 지난 2009년 2월 이국철 SLS그룹 회장을 뒷조사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 회장 쪽은 이를 "특정기업인을 겨냥한 불법사찰"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 재판자료들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관계자가 지난 2009년 2월 SLS조선소가 위치한 통영에 내려와 김아무개 전 SLS조선소 사장에게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는 이국철 회장에 관한 정보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조사에 앞서 진행된 이국철 회장의 뒷조사가 사실이라면 SLS그룹 사건은 '청와대발 기획수사'였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국회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지난 2009년 SLS그룹 검찰수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편 대법원은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진의장 전 통영시장 사건을 지난 4월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객관적 물증이 없다"는 이유였다.

2009년 2월 민정수석실 "이국철은 블랙리스트... 정보 달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국철 회장 뒷조사 의혹과 관련,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재판자료는 세 가지다. 지난 2010년 3월 12일자 김아무개 전 SLS조선소 사장의 증인신문조서와 전날(3월 11일) 유아무개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 같은 해 8월 24일 작성된 유씨의 증인신문조서다.

김 전 사장은 대우중공업(대우조선해양) 출신으로 SLS SP 전무와 SLS 조선소 대표를 지냈고, 유씨는 대우자동차 출신으로 SLS조선소의 전신인 신아조선을 운영했던 유아무개씨의 아들이다. 두 사람은 이국철 회장과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다. 

2010년 3월 12일자 김아무개 전 사장의 증인신문조서과 유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2009년 11월 13일 오전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2009년) 2월 민정수석실에서도 (나를 찾아) 왔다"며 자신을 찾아온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국철이는 악덕기업인이며,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대로 놔주어서는 안되니 김 사장이 (이 회장에 관한) 정보를 달라."

이에 김 전 사장은 "(민정수석실에서 그렇게) 요청했으나 '(나는 SLS조선소에서) 녹을 먹었으니 할 말이 없다'라며 돌려보냈다"고 전하면서 "(이국철 회장이) 자기 대신 무고한 나를 감옥 가라 하는데 더는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대검 프로파일(범죄자 관련정보)"을 거론했다. 

"대검 프로파일에 이국철이라고 치면, ① 탄현부동산 사기사건으로 대검 중수부 3회 조사받았음 ② 용산 골프연습장에서 일반인 폭행, 사촌형 구속 등 여러 건이 있다. 아는 기자가 있으면 이국철의 죄상을 밝혀 달라."

이러한 내용은 2010년 3월 11일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진술서와 2010년 8월 24일자 유씨의 증인신문조서에도 똑같이 나와 있다. 다음은 2010년 8월 24일자 유씨 증인신문조서 중 일부다. '문'은 이국철 회장에게 2만달러를 받았다는 진의장 전 통영시장 변호인, '답'은 유씨가 한 것이다.

진의장 전 통영시장 뇌물수수 사건의 증인신문조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지난 2009년 2월 통영에서 김아무개 전 SLS 사장을 만나 이국철 회장을 뒷조사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진의장 전 통영시장 뇌물수수 사건의 증인신문조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지난 2009년 2월 통영에서 김아무개 전 SLS 사장을 만나 이국철 회장을 뒷조사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문: 김○○가 "2009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이국철이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국철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취지로 요청하였다"고 말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2009년) 11월 13일에도 (김○○이) 그런 말씀을 했고 그 전에 9월 23일 통화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그런 통화를 했는데 자기는 SLS에 몸을 담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고 돌려보냈다는 취지로 여러 번 말씀을 했습니다.

이처럼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재판자료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관계자가 김 전 사장을 찾아와 이국철 회장과 관련된 정보를 요구했음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민정수석실의 뒷조사 대상이 이 회장이었다는 얘기다.

'연루 의혹' 권재진 전 수석 "민정수석실서 기획한 수사 아니다"

권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간인 사찰 개입설'에 대한 추궁을 받으며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권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간인 사찰 개입설'에 대한 추궁을 받으며 입을 꽉 다물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이전에 SLS그룹건을 검찰에 넘겼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 상태다. 하지만 '기업인 사찰이 아니라 정상적인 비리정보 이첩이었다'는 것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의 주장이다.

이국철 회장은 지난 7일 국회기자회견에서 "2009년 11월 초에 내 변호사인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권재진 수석이 내 앞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으며, 당시 권 수석은 '총장님, 최○○가 우리쪽에 첩보를 하여 다 확인하고 대검으로 내려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권재진 후보자 쪽은 이국철 회장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통화했던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해명했다.

"당시 임 전 총장쪽의 의뢰인이 민정수석실의 기획수사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해당사안은 전임자(정동기 전 민정수석) 때 검찰로 이첩해 수사가 진행됐고, 민정수석실에서 기획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국철 회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람이 통영에까지 직접 내려와 '이국철은 블랙리스트에 있다, 이대로 놔주어서는 안 되니 정보를 달라'고 김 전 사장에게 얘기한 걸 보면 이것은 기업인을 불법사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저와 SLS 관련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민정수석실에서는 금융위나 검찰청이 아닌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국민권익위, 공정거래위 등으로 통보하는 등 '진실 외면하기'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특정개인을 내사, 감찰, 사찰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국철 회장과 관련기업을 타깃으로 했다면 명백한 민간인 사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증인신문조서 등을 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국철 회장을 타깃으로 비위사실을 조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것은 민정수석실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재판자료들에 나오는 내용은 권재진 후보자의 해명과도 어긋난다.

권 후보자는 지난 8일 열린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그 회사가 비자금을 조성해서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그 회사 관계자의 제보가 있어서 신빙성 확인을 거친 뒤에 검찰로 통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직자가 주요 내사대상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09년 2월 통영에 내려왔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관계자의 발언은 뒷조사 대상이 '이국철 회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특히 이 관계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니 이 회장 정보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데서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어느 정도로 이국철 회장을 뒷조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를 만났다는 김 전 사장마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캐나다로 이민 갔다"고 전했다.  

'비자금 조성'으로 출발했지만 '허위공시' 혐의만 남아

한편 창원지검 특수부는 지난 2009년 9월 '400억 배당한 뒤 횡령해 열린우리당 자금책 역할 및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를 한 혐의'로 SLS그룹을 압수수색했고, 같은 해 11월 이국철 회장을 소환했다.

검찰은 이 회장을 대상으로 '열린우리당 자금책 역할'을 추궁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뇌물을 준 열린우리당 의원 3명을 불어라"고 압박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출신인 이아무개씨를 SLS중공업 이사로 영입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씨는 9일 기자와 만나 "부산상고를 나오긴 했지만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다"며 "월남전도 참전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진보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 개월에 걸친 강도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검찰은 이 회장에게서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로비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특히 400억 원을 배당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확인돼 검찰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회장에게 떨어진 혐의는 두 건의 '허위공시'뿐이었다. 이와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태그:#이국철, #SLS그룹, #청와대 민정수석실, #권재진, #정동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