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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천둥소리가 우렁차다. 우렁우렁한 울음소리로 잠든 엄마를 깨우는 어느 사내 녀석이 잠결에 문득 생각난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 그가 울고 있었던가.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어남과 문을 염과 뛰쳐나감에 걸린 시간이 얼마였는지 계산을 해보자면 아마 3초가 채 안 걸렸을 것이다.

 

내가 본디 발가벗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줄창 고수해 온 까닭에 따로 옷 벗는 시간은 필요 없었다. 잠자리에서 문까지는 기합 소리 한 번이면 닿고도 남을 거리밖에 안 되고, 문을 열면 바로 토방이다. 토방에서 마당 사이에 화초가 있기는 하지 만 다리를 찢어지게 벌리고 껑충 뛰면 단 두 걸음에 닿을 수 있는 거리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니 3초가 채 안 걸렸으리라는 나의 추론에 과장은 전혀 없다.

 

이 말을 다르게 변주하자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단숨에, 한숨에 잠자리에서 마당의 빗속까지 뛰쳐나갔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숨 거리도 안 되었다. 과거 한때 단전호흡으로 단련된 나의 한 호흡은 최대 7분까지도 가능했었다. 지금이야 물론 담배연기로 쩔어버린 탓에 3분 정도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빗속으로 단숨에 뛰어 들었다. 나가자마자 우선 한 바퀴 뒹굴었다. 마당에 잔디를 깔아놓으니 이런 때는 이렇게도 좋을 수가 없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빗물이 마당에 고였는데 그 깊이가 발등을 채우고도 남는다. 발등을 채우고도 남는 빗물 속에서 뒹구는 내 몸을 잔디가, 그 여린 풀잎들이 따끔따끔 콕콕 쑤셔준다.

 

 

재주를 부려봐, 재주를 부려봐

 

잔디가, 그 여린 풀잎들이 내 몸을 따끔따끔 콕콕 쑤셔대며 유혹을 한다. 뒹굴지만 말고 다른 이쁜 짓도 좀 해보라는 그 유혹이 나는 반갑다. 반가워서 얼른 물구나무를 서 본다. 말이 좋아 물구나무일 뿐으로, 내 몸은 아직 비보이들의 그것 같은 멋진 물구나무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방에서는 벽에 발을 의지하는 형식으로 제법 오랜 시간 물구나무 자세를 취하기도 하지만, 아무 의지할 곳도 없는 마당에서는, 빗속에서는 그저 머리를 땅에 대고 발가락을 하늘 쪽으로 잠깐, 아주 잠깐 올렸다가 이내 도로 떨어지는 정도의 물구나무밖에 못 선다.

 

그렇다고 실망할까. 천만에 만만에 실망할 일도 없던가 보다. 물구나무 까짓 것 좀 못선다고 실망한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 것이냐. 아니 뭐 그런저런 생각 따위에 내줄 시간조차도 없었다. 두 팔을 한껏 벌리고 날아가는 새가 되어 저만치 달려갔다가 돌아서서 다시 달려갔다가 또 돌아서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바쁘다.

 

어떤 사람은 생각을 먼저 한 다음에 행동으로 들어간다지만 나는 오래 전에 이미 그런 경지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내 몸이 나를 부르면 즉각 응답을 하는 것, 뛰라고 하면 뛰는 것, 그런 뒤에야 비로소 내가 왜 그랬지? 생각을 해보고 입맛을 다시고, 고개가 끄덕거려지면 끄덕거리고 안 그러면 말고, 뭐 그런 것이다.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염치마저 없는 것은 아니어서, 함부로 소리를 질러대지는 못하고 살아왔다. 으아아아아악, 하고, 그렇게, 있는 한껏 소리를 질러보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만일 정말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앞집에서 그리고 뒷집에서 강도나 혹은 도둑이 들었나보다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고, 또한 112에 신고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어서, 목구멍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내뿜지는 못하고 콧노래 같은 것으로 변용시켜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번에는 그런 쓸데없는 변용으로 나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좌륵좌륵 쏟아지는 빗줄기, 우렁우렁 울렁거리게 무거운 것을 내려놓는 천둥소리, 이 세상 모든 단단한 것들을 갈갈이 찢어놓을 듯이 번쩍번쩍 날을 세우고 비스듬하게 빗발치는 번갯불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말하면 불경이라고 단죄를 받을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몸은 이미 그 속으로 녹아들어 버렸다.

 

내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자고 유혹하지 않아도 목구멍이 스스로 알아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어느 세계인지 알 수도 없는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목구멍이 화답을 하는 형국이다. 삼위일체라고 했지만, 사실 말이야 바로 말해서 천둥소리가 압권이요 제일이다. 천둥소리를 빼버리면 너무도 밋밋한, 그저 서정적인 밤의 한 비 내리는 풍경이나 되고 말 것이다. 다소곳한 서정이 좋다고는 해도, 사람이 허구헌날 서정에만 빠져 있다면 그것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반갑게도, 고맙게도 천둥이 계속 몰아쳐준다. 지나가는 일회성의 천둥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뭔가를 확실하게 뒤집어 주겠다는 듯이 연거푸 귀속을 후비고 들어오는 천둥소리, 이러한 천둥소리는, 한 삼천 미터 정도의 거대한 바위산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거나 주저앉을 때나 들림직한, 장대하고 호쾌한 음향으로 나를 흥분시킨다.

 

그런 천둥소리에 흥분한 내 안에서 무엇이 자꾸 뛰쳐나오는데, 그것은 일찍이 한 번도 길들여진 바 없는 늑대들 같기도 하고, 새 중에 새라고 일컬어지는 도요새의 작고 날렵한 몸매 같기도 하고, 한쪽 날개의 길이만도 구만 리가 된다는 전설 속의 새, 그 입에서 나오는 노래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달리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질러야지. 있는 힘껏, 젖 먹던 시절의 그 아득한 힘까지 모조리 불러내서 왁왁왁왁 소리를 질러대며 뒹굴고 뛰고 날아야지. 목구멍에서 무엇인가 찢어져서 피가 쏟아진다 해도 두려워하지는 말자.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그 무엇인가가 염려되고 걱정되어 주저하거나 머뭇거린다면 그 사이를 도둑 같은 권태와 실의와 자포자기 같은 괴물들이 들어차고 앉아서 내가 주인이다, 해버릴 것이다.

 

하도 정신없이 뛰고 뒹굴고 날다 보니 가끔은 비 마중을 나온 두꺼비나 혹은 개구리와 충돌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내 몸이 워낙 날렵하고 신속하게 자리이동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두꺼비나 혹은 개구리들이 깔려 죽는 사태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미끈하게, 혹은 우둘투둘한 감각으로 와 닿는 그것이 개구리거니, 두꺼비거니,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열나게, 미치게 놀았다. 아무 생각없이 마당을 빠져나가서 거리로 진출해 보기도 했다. 가로등이 비 맞은 '중'처럼 처량하게 서 있는, 어쩌면 어디서 자동차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는 거리에서 겅중겅중 걸어도 보았다. 그런데 마당의 보들보들한 잔디 맛을 이미 알아버린 내 몸이 거리의 딱딱한 콘크리트를 싫다 해서 이내 돌아오고 말았다. 어디서 누가 나를 보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그런 것은 아직 끼어들 틈이 없었다. 행사(?)를 종료한 뒤에 생각해보니 그게 또 그렇구나, 불쑥 나타난 자동차 불빛에 나의 알몸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도 있는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든 것일 뿐이다.

 

그런데 천둥에도 리듬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금방이라도 내 몸을 어떻게 해버릴 듯이 바로 옆에서 우르릉쾅쾅 요란을 떨다가도 금방 날 잡아보라는 듯이 멀어지는, 멀어졌다가는 도로 금방 다가와서 어매 잡혔네 하고 까르르 웃어대며 바짓가랑이를 짝짝 찢어버리는 것도 같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천둥의 그 리듬을 가만히 음미해 보니 베토벤의 교향곡 6번 2악장에 등장하는 천둥소리는 이미 아니다. 그보다는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열정 속에 접시를 깨부수는 난타의 그것을 섞어놓은 것 같다.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사방이 아직 안개 속처럼 어슴프레 먼동이 터올 즈음부터 시작된 발가벗고 놀기 행사는 아쉽지만 이제 그만 끝내야 했다. 비는 아직 그치지도 않았는데, 천둥도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계속 쳐대고 있는데 벌써 해 뜨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아랫집의 부지런한 할머니가 빗속을 뚫고 고추밭을 살피러 가던 길에 알몸의 사내를 발견하고 놀라 자빠지기 전에 그만 끝내야 했다.

 

몸에 물기를 닦아내고, 커피 한 잔 끓여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때야 불현듯 아아 이런, 이런 정도의 비라면 농작물 피해가 겁나겠구나 하는 그런 마치 무슨 정신병원이라도 탈출한 뒤의 그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이 거대한 에너지를 어쩔 것인가. 이 상쾌함을, 이 신명남을, 이 펄떡펄떡 뛰는 에너지를 어떻게 마다하고 걱정에나 사로잡힐 것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한 삼 년 정도는, 적어도 삼 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하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일을 만나도, 그 어떤 고약한 상황에 부딪혀서도 머뭇거리나 겁내지 않고 꼿꼿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 미치겠다. 좋아서 미치겠다. 이보다 더 큰, 이보다 더 싼값으로 얻을 수 있는 보물이 인간 세상 어디에 또 있을 것이냔 말이다.


태그:#폭우, #천둥소리, #번갯불, #혼자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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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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