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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원래는 주로 상품을 거래하거나 상담을 하는 지방 상인의 숙소였다고 한다. 우리가 묵게 될 明淸古宅客棧 이다. 족히 400년은 되었다 한다. 평범한 가정집 이었을 이집도 이곳에 관광객이 찾아들면서 객잔이 되었다. 우리네 고향 관광지 민박집들이 그렇게 생겨났듯이.
▲ 객잔(客棧 ) 원래는 주로 상품을 거래하거나 상담을 하는 지방 상인의 숙소였다고 한다. 우리가 묵게 될 明淸古宅客棧 이다. 족히 400년은 되었다 한다. 평범한 가정집 이었을 이집도 이곳에 관광객이 찾아들면서 객잔이 되었다. 우리네 고향 관광지 민박집들이 그렇게 생겨났듯이.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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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여행을 즐겨하던 부류는 아니다. 특히 해외여행이라 해봤자 지난해 직원들끼리 1년짜리 계를 들어 다녀온 일본 패키지여행이 전부였다. 그때는 3박 4일 내내 가이드 깃발만 따라 다닌 기억밖에 없다. 게다가 여행 내내 단체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탐색하느라 피곤했는데, 이번은 참 편한 여행을 하고 있다.

서울을 출발한 지 4일째, 이제 겨우 서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등 친해지려는 참인데, 시간 참 빠르게 지났다. 그래도 이나마 된 것은 공통의 관심사와 여행 내내 현지인은 물론 일행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려는 아름다운 마음들 덕분이었으리라. 다른 패키지 여행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던 그런 분위기다.

일행은 북경 후퉁 거리의 한 식당에서 중국 사람들 먹는 그대로 죽과 간단한 반찬을 곁들인 꽃빵과 만두, 튀김류로 이른 아침을 먹고 400년 역사의 옛 마을 챤디샤(爨底下)를 향해 출발했다.

400년 역사, 챤디샤 마을로 향하다

북경에서 2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고택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된 마을이다. 중국의 아름다운 농촌 2위로 뽑혔다고 한다.
▲ 챤디샤 마을 전경 북경에서 2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고택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된 마을이다. 중국의 아름다운 농촌 2위로 뽑혔다고 한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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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 거리로는 대략 90여km에 불과했다. 그러나 찾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휴게소 하나 없는 골짜기 지방도로와 꼬불꼬불 산길을 족히 두세 시간은 달렸다. 그리고 겨우 챤디샤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400년 전 명나라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이후 청나라를 거치면서 산서성(山西省)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행세하며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워낙 첩첩산중이라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나머지 명나라와 청나라 때 가옥들이 원형 가깝게 보존된 그런 마을이다.

최근에야 이 마을이 중국의 아름다운 마을 2위로 선정되면서 외지인들이 찾아들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챤디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점심을 먹어야 할 곳이 있단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웬만하면 그 사람들이 파는 차(茶) 한 봉지씩은 팔아 줬으면 좋겠단다.

어라, 이거 봐라! 공정여행이라더니 코스에 있는 것도 아닌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식당을 반드시 들러야 하고, 게다가 물건까지 강매하네, 이거 여행 끝 무렵 되니까 슬슬 본색이 나오는 건가? 설마 그럴리가.

물론 그럴 리야 없는 일. 여행 인솔자 최정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유명세를 탄 챤디샤 마을이 비교적 경제적 혜택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비슷한 환경인데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황령서(黃岭西)촌은 전혀 그렇지 못하단다.

이 때문에 점심 한 끼 정도는 팔아주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팔아주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것. 역시 또 한번 공정스러운 여행임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익숙한 반찬들이 나왔다. 특히 공정족들은 상추, 깻잎, 오이와 함께 나온 된장(사진 가운데)의 환상적인 맛에 연거푸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집만의 비법 된장이란다. 중국에도 이런 된장이 있었다니!
▲ 황령서 마을의 점심 오랜만에 익숙한 반찬들이 나왔다. 특히 공정족들은 상추, 깻잎, 오이와 함께 나온 된장(사진 가운데)의 환상적인 맛에 연거푸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집만의 비법 된장이란다. 중국에도 이런 된장이 있었다니!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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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서(黃岭西)촌은 그야말로 백년 정도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래에 소개하게 될 챤디샤에 비하면 볼거리가 빈약하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공정족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의외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곳 식당(老曹家客棧)의 된장 맛이었다.

게다가 중국 땅에 들어와 처음 구경하는 깻잎과 상추에 쌈 싸먹는 그 맛이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사람들은 준비된 된장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추가를 외쳤다.  "도대체 된장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너무 맛있다. 근데, 설마 우리 온다고 한국에서 몰래 가져다 푼 것은 아니겠지?"

시원한 바람, 좋은 사람들...여행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혁명의 구호들. 중국내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않은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오지였는지를 말해준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혁명의 구호들. 중국내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않은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오지였는지를 말해준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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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드디어 챤디샤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와 기다리던 객잔의 주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그의 안내에 따라 여장을 푼 공정족들은 400년 고촌(古村)의 풍경을 즐기기 위해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지명인 찬디샤(爨底下)의 첫 글자인 찬(爨)은 불을 땐다는 의미라고 한다. 항상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마을을 번성하게 한다는 그런 뜻이라고 하는데 주인은 그 글자 덕을 보고 있다는 듯 사뭇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마을을 둘러본 공정족들은 앞산에 올라 전경을 사진에 담거나, 인근 영화촬영지들을 둘러보면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또한 마을 사람이 운영하는 노점에 들러 이들이 직접 생산했다는 꿀이나 녹차, 과일 말린 것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공정족들은 챤디샤 마을 아낙이 차린 노점상에서 여러가지 주전부리를 샀다. 주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가 쓴 돈이 마을 사람에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공정족들은 챤디샤 마을 아낙이 차린 노점상에서 여러가지 주전부리를 샀다. 주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가 쓴 돈이 마을 사람에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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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평생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꼬치를 실컷 먹었다. 입안에서 슬슬 녹았다.
▲ 양꼬치 구이 이날 밤, 평생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꼬치를 실컷 먹었다. 입안에서 슬슬 녹았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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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골 마을에 저녁이 왔다. 여유로운 오후를 보낸 사람들이 저녁을 마치고 하나 둘씩 객잔 앞 길가로 모였다. 마지막날 밤 양꼬치와 맥주를 곁들인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 좋은 사람들, 솔솔 피어나는 양꼬치 향이 어우러지고 술이 몇 순배 돌자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

"노래해, 노래해! 노래를 못하면…."

소중한 이들의 인연은 그렇게 밤새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시댁이나 처가에 선물하려고 내몽골에서 사온 마유주가 각자의 배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발적으로 슬금슬금 나왔다나 뭐라나 ^*^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천으로

그해 여름은 참 공정했네. 챤디샤를 떠나기전 참가자 모두와 객잔 주인 가족들과 함께 찰칵.
 그해 여름은 참 공정했네. 챤디샤를 떠나기전 참가자 모두와 객잔 주인 가족들과 함께 찰칵.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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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난밤의 여운을 잊지 못하는 듯 마주치는 사람마다 연신 눈웃음을 날렸다. 아마도 내가 보기엔 이번 여행 분위기에 취하고 사람들에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이제 북경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여전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8원짜리 두부를 파는 부부의 삼륜 자동차, 녹차를 말리던 아저씨, 야채와 생필품을 늘어놓은 이동수퍼 아저씨, 음악소리를 울리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 노동자들, 손자 녀석의 아침 밥 투정에 진땀을 빼시는 할머니 등등 이른 아침 챤디샤 사람들의 일상도 어김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손두부 1개에 중국돈 8원50전 이라고 한다.
▲ 두부 파는 부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손두부 1개에 중국돈 8원50전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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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찬거리를 사러나온 마을 사람들
 아침 찬거리를 사러나온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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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정족들의 4박 5일 내몽골, 북경, 챤디샤 마을 체험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7월 27일 저녁 우리는 인천공항에 내렸다. 공항 출구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공정족들의 얼굴엔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여행에서 다시 만나자고 서로 약속을 했다.

공정한 여행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울리고 있다.

ⓒ 이정희


태그:#공정여행, #챤디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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