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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12일은 '금요일'에다가 '3일연휴', 특히 8·15를 앞둔 날이었다. 이런 날에 중대한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들에게는 '상식'에 속한다.

 

한 서울시 의원은 "연휴에다 대통령의 8·15 담화문 발표를 앞두고 이런 중대한 발표를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발표 시기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고, 다른 시의원은 "오 시장이 연휴를 앞둔 금요일에 최악의 선택을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서울 엘리트의 고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핵심 메시지는 '대선 불출마' 아닌 '주민투표 성사'

 

그런데도 오 시장은 '이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그 이유를 "제 거취문제가 무상급식 주민투표 자체의 의미를 훼손하고 주민투표에 임하는 저의 진심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왜 오 시장이 '3일연휴를 앞둔 금요일'에 그런 중대한 발표를 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자신의 대선행보의 일환으로 추진해왔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은 치밀한 준비 속에서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기자회견 사실이 전날(11일) 저녁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통보된 점이나 '중대한 발표'치고는 기자회견문의 호소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는 오 시장을 급하게 만든 '무언가'가 있음을 방증한다. 이와 관련, 오 시장이 야 5당이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수리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재판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급하게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련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희용 서울시의원은 "가처분 신청을 심의하고 있는 판사가 '늦어도 16일까지 심의를 끝내겠다'고 말했다"며 "오 시장은 이러한 가처분 신청 판단을 앞두고 재판 결과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 시장의 메시지는 '대선 불출마'가 아니라 '주민투표 성사'였다. 밋밋한 기자회견문 속에서 도드라진 것은 '주민투표를 꼭 성사시켜야 한다'는 오 시장의 강한 의지였다는 것이다. 이는 "(주민투표의) 숭고한 의의 앞에 저의 대선 불출마는 하나의 개인적 결정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대목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보통 대통령의 담화가 나오는 8·15 이전에는 중요한 발표를 잘 하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오 시장이 오늘 기자회견을 감행한 것은 가처분 신청 판결을 앞두고 시장으로서 '주민투표 성사'라는 메시지를 법원에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주민 투표에서 여당이 서울시와 힘을 합쳐 어떻게든 이겨줬으면 하는 희망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말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오 시장의 기자회견이 청와대와 교감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친박계 지원 이끌어 내기 위해 대선 불출마 선언?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주민투표 성사를 위해 기자회견을 감행했다면 왜 오 시장의 승부수가 '서울시장직 사퇴'가 아닌 '대선 불출마'였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그가 지난해 지방선거를 전후해 "임기중에 대선에 출마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수차례 공언해왔다는 점에서 의문은 커진다. 

 

이와 관련, 오 시장이 내놓은 답변은 '한나라당과 협의문제'였다. 시장직을 사퇴하려면 사전에 당과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충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 내부의 '반대여론'도 그에게 큰 부담이다. 그가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 당협위원장들과 국회의원들은 저의 서울시장직 사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면서 자신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합리화한 것도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오 시장에게는 서울시장직 사퇴보다 대선 불출마 선언이 더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대선 불출마 선언은 구속력도 크지 않고 충격파도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친박계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인 오 시장이 스스로 대권경쟁에서 물러나주면 주민투표와 관련해 친박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한 의원은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으로 친박계 지원마저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이 오 시장을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세우려고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런데 이날 오 시장이 시장직 사퇴 여부와 관련해 '여운'을 남긴 것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여론을 살피고 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결심이 서면 주민투표일 전에 입장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시장직 사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대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시장직 사퇴'라는 두번째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오 시장 주변에서도 "주민투표일 3-4일 전에 시장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는 점에서 '2단계에 걸친 승부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의 반대여론, 정치적 효과 등을 헤아릴 때 오 시장이 '시장직 사퇴'까지 감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사 시장직까지 사퇴한다고 해도 대선 불출마 선언 이상의 효과를 보기도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투표율이 제고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오 시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오 시장 주변에서조차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의 덫에 걸렸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태그:#오세훈,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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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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